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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와 장승 & 벅수


'장승'과 '벅수'가 서로 다른 이유 [참한역사신문 - 황준구의 '장승문화'이야기]
 알자고    | 2023·02·24 00:16 | 조회 :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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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NK1 : http://ichn.co.kr/hjg/3


  • 황준구 

    1946년에 태어나, '홍익대학'과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광고 디자인'을 전공하였고, '선경그룹'과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하였다.

     2000년,'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은<'장승''벅수''솟대'>를 공부하고 있다.

    https://blog.naver.com/9339june 

    '장승'長栍이란 것은, '역참제도' 때 ‘길라잡이' 역할을 하였던 '푯말'(이정표)로, ‘나라’(乘輿司)에서 세우고 ‘나라’(察訪)에서 ‘관리’를 하였으며, ‘조선시대'의 끝 무렵에는 '역참제도'가 폐지(1895)되어, '장승'은 이미 우리 땅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장승'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놈들에 의해 또다시 들추어졌고,  미신迷信의 ‘문화’로 나눔이 된 ‘수호신’ 기능의 '벅수'法首(‘大將軍’문화)와 강제로 합쳐 졌다.  

    그들은 '언문 철자법 통일안'(1912)이라는 것을 만들어, 오래전에 소멸된 '장승'이라는 표현을 다시 찾아내어, 억지의 '표준말'로 지정하여 ‘공표’를 하였고, ‘벅수’를 '장승’으로 ‘왜곡'하여 '변질'시켰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장승'(長承,長丞)이라는 표현은 ‘일본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진 1) 1883년, '독일'의 외교관 “막스 폰 브란트" Max von Brant(1835-1920)가 '仁川府 鳥洞面 淡方里 ‘別離峴'(지금의 인천시 만수동 '별리고개'의 옛 '장승배기')에서 남몰래 훔쳐서 가져간 큰’장승'으로, "베를린 민족학 박물관"에 기증(ID; 12214)된 것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점(基)만 남아 있는 귀중한 '길라잡이' 기능의 큰'장승'(大堠)으로, 1895년 ‘역참제도’는 폐지되어 ‘장승’은 임무를 마치고 자연 소멸하여, 우리 땅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우리 '조상'들은 본래 '장승'과 '벅수'를 새로 만들어 세운 이후에는 완전하게 썩고 넘어진 다음에야 다시 세우는 뿌리깊은 '전통' 때문에, 우리 땅에는 지금까지 남겨진 참 모습(實體)의 '장승'을 만나 볼 수가 없었다.  인천 만수동 '장승배기'의 옛 '장승'은 2015년 ‘장승’과 '벅수'를 공부하고 있는 '황 준구'(그래픽 디자이너)가 '독일'의 '박물관 도록'에서 찾아 내었고, '사진'과 함께 그 '장승'의 '유래'(내력)를 옮겨와 확실한 '장승'의 실제 모습이 처음으로 우리 땅에 알려지게 되었다.   '장승'의 가슴에 쓰인 글귀(銘文)와 전체의 모습이 확실하게 밝혀진 조선시대' 본래의 '장승'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장승’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장승’이다.  ('장승'이란 무엇인가?. 검색 참고)


    (사진 2) 1895년, '독일'의 골동품 ‘수집가'로 알려진 “모리스 샨즈" Moritz Schanz가 '수집'하여, 1897년 또다시 “베를린 민족학 박물관"에 기증(ID; 16399)된 '벅수'(서낭)다.  인천 만수동의 옛 ‘장승배기’가 ‘역참제도’의 폐지(1895)로 ‘장승’은 소멸하여 사라졌고, 그 이후 ‘장승배기’ 옛 터는 ‘마을’의 '신성'한 ‘장소’를 뜻하는 ‘당산’堂山(서낭당)>으로 변화되어, 장승’(길라잡이)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하늘’ 아래 제일 위대한 ‘장군’으로 표현하여 세워놓은 '벅수' ‘天下苐一大將軍’을 남몰래 뽑아서 또 다시 훔쳐간 것이다. 

    '벅수'法首라는 것은 우리 '마을'과 '절집' 그리고 '성문'을 지켜주는 기능을 가진 '수호신'이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대부분의 ‘벅수’들은 '음'과 '양'陰陽을 따져 2개(基)로 만들어져 한 쌍을 이루고 있지만,  '남자'와 '여자'로 나눔이 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몇몇 '씨알머리' 없는 '민속학자'들에 의해, '수염'이 그려져 있거나 없는 표현 만으로 '남자'와 '여자'로 나눔이 되어졌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그릇되게 표현이 되어 졌다.  참으로 남부끄러운 일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보존'이 되고 있는 돌‘벅수’의 대부분은, 그 무렵에 '중국땅'에서 생겨나 '조선땅'으로 번지기 시작한 '잡귀'雜鬼와 '유행병'(疫病)들을 막아내기 위해 중국 ‘전설’ 속의 무섭게 생긴 '왕'(皇帝)이나 '장수'將帥들을 '조선땅'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임명하여  만들어진 '두창痘瘡(천연두) 벅수'들 이였다.  우리 '조상'의 모습이 절대로 아니였다. '벅수'의 가슴에 쓰인 글귀(銘文)에서 확인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토종 ’벅수’로 알고 있는 ‘天下大將軍’과 ‘地下大(女)將軍’은 ‘대한제국' 때인 1900년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을 하였고, ‘상고시대’의 역사책 ‘태백일사’太白逸史가 공개된 '때'와 같다.  기껏해야 130여 년 전의 일이다.



    '장승'長栍과 '벅수'法首는 서로의 '역할'이 완벽하게 달랐다.  이른바 우리 '민속학자' 1세대들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며, 그들에 의해 우리의 '민속학'이 정립定立되었고 만들어졌다.   그들이 쓴 '책'과 '논문'에는 '역참길'(驛道)을 안내하는 '길라잡이' 기능의 '장승'과 ‘마을'과 '절집'(寺刹) 그리고 '읍성'의 성문城門을 지켜주는 '수호신' 기능의 '벅수'들을 확실(明確)하게 서로 '나눔'하지를 못하였고, '조선총독부' 놈들의 뜻대로 모두 '장승'長承(長丞)으로 만 '통합'하여 표현하고 기록을 하였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장승' 이라는  '실제의 모습'(實體)을 그들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민속학자'는 없었다.  '장승'은 "역참驛站제도”의 폐지(1895)로, 이미 오래전에 우리 땅에서 완벽하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민속학자' 1세대들은 '장승'과 '벅수'에는 애당초부터 아예 관심이 없었다.


    '조선총독부'의 '학무국' 놈들이 1912년에 공표公表를 한 '언문철자법'諺文綴字法(‘훈민정음’을 그들 마음대로 '보완?'을 하고,'일본말'을 가르치기 위해 애벌(草案)로 만든 '언문철자법'을 공표(1912) 하였고, 우격다짐으로 조선어학회에  떠넘겨(1930) 강제로 만들어진 것이 ‘언문 맞춤법 통일안’(1933)>이라는 것이다.)에는 '벅수'와 '서낭'과 ‘수살' '액막이' 등, 우리 '민속신앙' 현장의 '목소리'(사투리)들을 모조리 '미신'迷信의 문화로 딱 부러지게 '판단'하여 '폄하'하였고, 이미 우리 땅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는 '장승'이라는 옛 표현을 다시 찾아내어 '벅수'와 억지로 합치고 뒤늦게 '표준말'로 지정을 하여 왜곡을 시켰다.  그러나 우리 고전古典의 옛 '판소리'에 표현된 '노랫말'에는 '댱승'(장승)과 '법슈'(벅수)는 확실하게 서로 나눔이 되어져 있었다. ( '변강쇠 타령'과 '적벽가'赤壁歌 그리고 '흥부가'興夫歌로 알려진 '박타령'의 노랫말  참고)


    우리가 그들에게서 '해방'되어,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행정부'('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국립 민속박물관)와 모든 '백과사전' 그리고 '초등학교'의 '교과서'와 '참고서'에는 '벅수'가 모조리 '장승'으로 만 기록되고 표현되어져 있다.  우리의 '민속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지금의 '공무원'(학예사)들과 ‘민속학자’들은 모두가 뼈속까지 '친일파'들 이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때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지금의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의 '후손'後孫들 에게는 반드시 우리의 고유한 '전통민속문화'와 관련되어 왜곡되고 변질된 우리의 '말'(言語)과 '글'을 모두 찾아내어, 확실하고 올바르게 고쳐서 제대로 알려야 한다.



    '장승'長栍이란 것은, ‘신라’ 21대 ‘소지왕’炤知王이  나라의 '큰길'(官路)을 '합리적'이며 '과학적'으로 관리를 할 목적으로 "역참驛站"을 설치(487)하였다.  '역참길'(驛路)을 안내하는 '길라잡이'(이정표) 기능의 '돈대'墩臺('흙'과 '돌'로 쌓은 '팻말')를 세우기 시작을 하였으며, '역참'(역마을)과 '역참' 사이의 간격(距離)을 정확하게 표시하여 알리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여행을 떠난 '나그네'와 '나랏일'(公務)로 출장 중에 있는 '벼슬아치'들에게 좀 더 빠르고 안전한 '역참길'을 '안내'하기 위해, '댱승'(쟝승)을 만들어 세웠다.  좀 더 쉽게 표현을 하면, '암행어사'와 ‘벼슬아치’가 '밥'을 먹고, '잠'을 자며, '말'馬을 빌려 탈 수 있는, ‘주막’酒幕과 ‘숙박시설’(院)이 있는 ‘곳’이 "역참"이다.  '역참’(역마을)이 있는 ‘곳’을 미리 알려주는 기능을 한 것이 '장승'이였다.  


    ‘장승'의 ‘가슴’에는 현재의 '위치'와 ‘이웃마을’ 혹은 ‘주막'이나 '원’院의 '이름'과 '간격'(里程) 그리고 '방향'을 꼼꼼하게 표시를 하여, '역참길'의 5리 또는10리 마다 촘촘하게 '나라'(乘輿司)에서 세우고 '나라'(察訪)에서 관리를 한 것이 ‘길라잡이’(이정표) 기능의 '후'堠 (쟝승,후 또는 돈대,후)이며, '후'로 쓰고 '쟝(댱)승’으로 읽었었다.  ('조선시대'의 '堠'는  '역참길'의 mileage('里程')를 기록하여, '흙'과 ‘돌’로 쌓은 ‘돈대’墩臺를 ‘쟝승.후’堠라고 하였다.  ‘최세진’崔世珍이 '어린이'들 에게  '중국'글자(漢文)를 가르치기 위해  ‘훈민정음’으로 만든 책, ‘訓蒙字會’(1527)에 표현되어 있는 ‘글자’字다).


    '장승'은 본래 한 쌍이 아닌, 단 '하나'(憺) 만으로 세워졌으며,  '장승'의 표정은 무섭게 생긴 '장군'(장수) 또는 '치우'蚩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을 하여 세웠고, ‘몸통’(가슴)에는 '역참길'의 정보를 꼼꼼하게 기록하여, '도로'의 가장자리에 세웠었다.  그 ‘장승’이 세워진 곳을 우리 ‘조상’들은 ‘장승’이 박혀있는 곳이라 하여 ‘장승배기’, '장승박이', '장승거리'라고 하였으며, 지금도 우리땅 '옛길'에는 1200여 곳의 '장승배기’ 옛 ’터'가 조사되어 남겨져 있다.


    ‘장승’에게 지내는 ‘제사祭祀의식’은 없었다.  ‘장승’은 '수호신'이 아닌, '역참길'을 안내하는 단순 기능의 ‘길라잡이'(이정표) 이였기 때문이다.  1876년 '개화기' 때 ‘우편제도’(郵政局)가 도입이 되었고,  '갑오개혁'으로 1895년에는 ‘역참제도’가 그 기능을 다하고 폐지되어, ‘임무’가 끝난 ‘장승’은 우리 땅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뒤에는 ‘일제강점기’가 시작이 되어, '문화적'으로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조선총독부'의 ‘마음’이 바르지 못한 '학자'들에 의해, 이미 우리 땅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는 '장승'의 '본질'과 '기능'을 조작造作하여, '수호신' 역할의 '벅수'에 '장승'의 기능을 억지로 포함을 시켰다.  그리고 '벅수'를  미신迷信의 문화로 '가치'와 '쓸모'를 깎아내렸고, '장승'으로 부르고  쓰도록 '왜곡'하고 '변질'시켜 '장승'이 '표준말'이다 라고 '지정'하여 교육을 시켰다.


    '벅수'法首란 무엇인가? '불교'의 근본이라는 "화엄경"華嚴經에는  '법수보살'法首菩薩로 표현되어, '수행자'修行者로 그려져 있다.  우리 '마을'과 '절집'(寺刹) 그리고 '성문'城門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법수'는 '벅수'로 변음變音(음운변동)이 되어 '조선시대' 때 우리 '민속문화'에 흡수가 되었고, 그리고 '민속신앙'의 '뿌리'가 되었다.   전라북도 ‘부안’ 땅, ‘내소사'의 역사책 “내소사지"來蘇寺誌에는 '1770년 ‘내소사’의 들머리에 있는 '입암마을'의 '서낭당’에 ‘벅수法守(法首)를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석가모니 후불탱화’後佛幀畵(1780)의 기록(畵記)에도 '법수보살'法首萻薩과 ‘서방법수보살'西方法首萻蕯이 표현되어 있다. 그 곳에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법수’다.


    1520년 일십당 ‘이맥’李陌이 목숨을 걸고 쓴 '상고시대'의 역사책, "태백일사"太白逸史의 '개국신화' 내용에 의하면, ‘태백일사’는 ‘중국’을 자극 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책'이라 하여, ‘나라’에서 금지된 '책'으로 지정을 하였고, 깊숙하게 숨겨져 왔었다.  ‘개화기’ 때 ‘이맥’의 후손, 해학 ‘이기’李沂에 의해 350여 년 만에 그의 ‘제자’들에게 공개되어 이 '세상'에 알려졌다. 


    '벅수’라는 것은 ‘선인’仙人 혹은 ‘신선’神仙을 뜻하며, ‘백아강’白牙岡에는 ‘선인왕검’仙人王儉이 살았고,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곧 ‘선인법수’仙人法首다 라고 기록 하였다.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는, 하늘 아래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天下大將軍’이라 하였고, 지하 세계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地下大將軍’이라 한다 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벅수’法首를 뜻하는 말이다.  즉 ‘벅수’란 것은, ‘단군 할아버지’를 '뜻'한다.   ‘백아강’白牙岡’(地上樂園)이란 것은, ‘왕검성’王儉城으로 추측이 되며, ‘몽골’의 ‘셀렝게’ Selenge강江 기슭에 남아 있는 ‘고을리’(고구려)의 '옛성'城을 뜻한다.  그 곳에는 '고을리 칸'(고구려의 왕)으로 불리는 '훈누 촐로'(法首)도 존재를 하고 있다.  ('올란바아타르' 대학의 '몽골학자',- '발단 도르지' 교수).  ('돌하르방'의 ‘조상’이라고?/ '몽골'의 수호신,- '주몽' 벅수. 검색 참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벅수’들의 표정은, '장승'과는 다르게 '중국'에서 '떼'(무리)를 지어 몰려오는, '잡귀'雜鬼와 '유행병'(疫病)으로 부터 '조선땅'을 지키고 '보호'를 하기 위해, '중국땅'에서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전설' 속의 '왕'(皇帝)이나 '장수'將帥들을 '조선땅'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임명'하여, '周將軍' '唐將軍' 또는 '南正重' '火正黎' '鎭西大將軍' '逐鬼大將軍' '天子封木' '媧柱成仙' '補護東脈' 등, '중국신화'神話속의 중요 인물로 표현을 하거나, ‘도깨비’나 ‘치우’蚩尤의 표정을 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불교’佛敎의 ‘사천왕상’四天王像과도 서로 닮아 있다.


    '중국' 사람들도 무서워 하는 '중국'의 힘쎈 '왕'이나 ‘장수’들의 '모습'을 '흉악망측'凶惡罔測하게 과장誇張을 시켜서 표현을 하고, 무서운 '벅수'로 만들어 세워서, '중국땅'에서 만들어진 '역병'이나 '잡귀'가 '조선땅'에는 '접근' 할 수 없도록 거꾸로(逆) 이용을 한 것이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벅수'들의 험악한 ‘표정’은, 절대로 우리 '조상'의 '모습'이 아니다.   '벅수'의 가슴에 쓰여있는 글귀(銘文)로 확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나눔을 하는 것은, 더더욱 가당찮은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 쪼졸한 '쪽발이'들에 의해 '왜곡'되고 '변질'이 되어, '쓸모'와  '중요성'이 줄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벅수’들은 본래,  '남자'와 '여자'로 나눔이 되어 한 쌍으로 만들어진 ‘벅수’는 단 하나도 없었다.  ‘개화기’ 때 ‘음양오행’의 잘못된 해석으로, 지금의 ‘벅수’들은 모두 '남자'와 '여자'로 잘못된 나눔을 하여, 한 쌍으로 표현이 되어졌다.  그리고 '의혹' 투성이의 ‘女將軍'이 탄생된 것이다.  비록 ‘얼굴’의 모습은 ‘여자’로 표현이 되었어도 '이름'(銘文) 만은 ‘女將軍’이 아닌, ‘大將軍’이라고 하였어야 옳았을 것이다.  심각한 '성'性차별 이다.  아니면 '天下大將軍'을 "天下男將軍"으로 표현을 바꾸었어야 옳았다.



    '역참驛站제도'의 폐지(1895)로 '조선땅'에서 ‘길라잡이'(이정표)의 임무를 마치고 완벽하게 사라진 '장승'에 ‘벅수’를 억지로 포함을 시켜서, ‘장승’으로 쓰고 부르도록 왜곡을 한,- '조선총독부' 놈들은 <'장승'이 '표준말'이다.>라고 지정指定(1912)을 하였고, 강제로 교육을 시켰다.  그 이후 ‘해방'이 되어, 8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우리는 아직도 '수호신' 역할의 ‘벅수’를 ‘장승’으로 부르고 있다.   확실한 '일제강점기’의 '찌꺼기'다.   '소갈머리' 없는 '행정부'와 '민속학자'들의 '무능함'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조선총독부’ 놈들은 ‘고려시대’ 때 '절집'(寺刹)에서 ‘서민’庶民들을 상대로 하여 운영을 하였던, ‘사채놀이’(利子돈 놀이)로  ‘장생고’長生庫(長生錢,長生布)와 '절집'의 ‘경계’를 표시하는 ‘말뚝’ 역할의 ‘장생표주’長生標柱(國長生,皇長生)가 ‘장승’의 밑바탕(根本)이라는 ‘뚱딴지’ 같은 '억지'를 부렸다.  우리 '민속학자' 1세대들은 이와 관련하여 한마디 '반론'이나 '반박'을 하지 못하였고, 그대로 받아 들여져 지금도 우리 '문화재청'과 '국립 민속박물관'과 ‘교과서’ 그리고 모든 '백과사전'에는 '절집'(寺刹)의 ‘장생고'長生庫(사채놀이)와 ‘장생표주'長生標柱(말뚝)가 ‘장승’의 유래由來라고 기록이 되어 있고, '보물'로 지정이 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야말로 한심寒心하여 '눈물'이 나는 '이야기'다.  '장승'과 '벅수'에는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관심이 없다 라는 ‘증거’다.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 우리의 '민속학자'들은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지방자치 단체' 들은 '역참길'을 안내하는 '길라잡이' 기능의 '장승'을 복원復元하여 세워야 할 '장승배기' 옛 터에,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기능의 '天下大將軍'과 '地下女將軍'이라는 엉뚱한 '벅수'(수호신)를 만들어 세워 놓고, '장승'이라고 우기며 매년 정定해 진 날에  '장승 제사'를 많은 '돈'과 '정성'을 들여 지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장승'(이정표)에 '제사'를 지냈다 라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명백하고 확실한 '음사'("淫祀"=不淨한 鬼神에게 지내는 ‘헛제사’)다.   그 대표적인 곳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장승배기·장승제"와  충청도 '청양 땅'의 "칠갑산·장승대제"다.  그리고 경상북도 ‘영주’의 “죽령·장승제”도 있다.   상식常識밖의 '짓'들을 '나랏돈'으로 부끄러움 없이 호화스러운 '헛제사'를 지내는 '곳'들 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지내는 '제사의식'은, '장승제'長丞祭가 아니라 '마을제사'(洞祭), 혹은 '벅수고사'法首吿祀라고 하여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사'를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청'이 앞장을 서서 '보증'을 하고, '광고'까지 하여 주고 있다.  '나라꼴'은 '한심'하고 '조상'들에게는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장엄'하고 '엄숙'하여야 할 ‘마을 제사의식'(洞祭)을 '정부'政府에서는 가벼운 '놀이문화'(관광상품)로 취급을 하고 있어, '일제강점기' 때를 연상聯想시키고 있다. (상도동 '장승배기'의 진실. / 칠갑산 '장승대제'에는 '장승'이 없다. 검색 참고)


    자라나고 있는 우리 '후손'들 에게는 '왜곡'하여 '변질'된 부분을 확실하고 바르게 고쳐서 알려야 한다.  ‘장승’長栍과 ‘벅수’法首는 서로의 역할이 다른 것이라고,---   ‘장승’이라는 것은 '개화기' 때 '역참제도'가 폐지(1895)되어, 우리 땅에서 임무를 끝내고 완벽하게 사라졌다. 지금 우리 땅에는 '장승'이란 것이 '보존'(보호)되거나 남겨진 것이 없다.  맨 '벅수'들 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600년 된 돌’장승’으로 추정이 되는  고방실 ‘장승배기’의 돌’장승을 ‘문화재청’과 '구미시청'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놈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와 ‘이정표석’이라고 부르며, ‘장승’으로 인정認定을 하지 않고 행길가의 ‘쓰래기장’에 그냥 내버려 두고(放置) 있다.  '이정표석'이 왜, '장승배기' 옛' 터'에 세워져 있었을까?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정부'다.  (‘장승’의 뿌리, 고방실 ‘장승배기’ 돌’장승’ 검색 참고)


    '조선시대'의 '장승'과 '벅수'가 우리 '백성'들에게 호감好感을 받지 못한 이유는,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99%가 '글'을 모르는 '까막눈이'(文盲者)들 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승배기'나 '서낭당'에 세워진 '장승'과 '벅수' 앞을 지날 때에는 너와 나 없이, 모두 ‘벅수’와 ‘장승’에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고 다녔다 라는 '설화'說話와 '기록'이 남아있다.  왜 '괄시'(푸대접)를 하였을까?.


    ‘장승’과 ‘벅수’가 우리 ‘백성’들에게 중요한 가치價値를 제공할 수 있는 ‘신격화’神格化된 진정한 '대상물’ 이였다 라면, 우리 ‘조상’들이 특별하게 '취급'하여 '보존'을 하였거나 '기록'으로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옛 ‘풍경화’(山水畫)나 ‘민화’民畫 또는 '풍속화'風俗畫들 속에는 귀중한 '장승'과 '벅수'가 꼭 표현(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역참제도' 때 '찰방' 벼슬을 지낸 사람들은 대부분 유명 '화가'들 이였다.  단원 '김홍도'도 그 중에 한 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장승’과 ‘벅수’가 그려진 옛 ’그림’은 단 한 점도 찾을 수가 없다.  너무나 모순적矛盾的이다.  


    '아이러니컬'(ironical)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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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장승'이란 무엇인가? [황준구의 '장승문화'이야기]
    공지  솟대와 장승에 대하여
    55  제천 능강 솟대문화원의 솟대
    제천 능강 솟대문화원의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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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10
    조회 : 749
    54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의 솟대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의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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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1·24
    조회 : 723
    53  전남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장승
    전남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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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1·24
    조회 : 526
    52  전남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솟대
    전남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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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1·24
    조회 : 575
    51  갓바위 가는 길에서 만난 솟대들
    경산시 명마산 글자바위 찾아가면서 대구 갓바위를 지나치며 만난 장승과 솟대들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명마산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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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3·25
    조회 : 1272
    50  갓바위 장승
    경산시 명마산 글자바위 찾아가면서 대구 갓바위를 지나치며 만난 장승들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명마산 글자바위 답사...
     알자고
    17·03·25
    조회 : 689
    49  갓바위 장승
    경산시 명마산 글자바위 찾아가면서 대구 갓바위를 지나치며 만난 장승들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명마산 글자바위 답...
     알자고
    17·03·25
    조회 : 689
    48  용담서해안로 방사탑
    제주를 여행하보니 이러한 방사탑이 해안가에 많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육지에서는 솟대의 개념을 제주에서는 방사탑이 그 ...
     관리자
    13·07·29
    조회 : 1184
    47  제주 동글동글 돌솟대
    제주에서 하룻밤 묵었던 모텔에서 특별한 공간을 조성해 놓았더군요. 동글동글한 돌들로 특이한 솟대를 쌓았기에 한 컷 했...
     관리자
    13·07·29
    조회 : 1336
    46  제주 솟대 박물관의 솟대들
    제주 솟대 박물관의 외부에 설치된 솟대들입니다.박물관장님과 차를 마시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참 좋은 시...
     관리자
    11·12·24
    조회 : 2145
    45  제주 솟대 박물관의 솟대들
    제주 솟대 박물관의 솟대들입니다.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으로 모두 담지를 못했네요...^^자세한 사항은 답사...
     관리자
    11·12·24
    조회 : 2025
    44  제주 솟대 박물관
    제주도 솟대 박물관 입니다.작품성 있는 솟대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제주 여행하실 때 꼭 들러 보세요....^^자세한 사...
     관리자
    11·12·24
    조회 : 1529
    43  태백산 성황당 장승
    태백산 성황당 장승
     운영자1
    10·12·10
    조회 : 2200
    42  성불암 솟대
    성불암 입구에 세워진 솟대입니다. 다른곳과는 달리 솟대에 고래가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솟대에도 음,...
     성미경
    10·04·04
    조회 : 2265
    41  하동 구제봉 장승
    개인적으로 청암장의 웃음이 마음에 든다.....ㅎㅎㅎ
     운영자1
    10·01·28
    조회 : 2030
    40  하동 구제봉 장승
    지리산 삼성궁으로 가던 길에 만나게 된 장승 군락이다. 장승들의 표정이 모두 각각인데, 모두 재미있다. 천하대장...
     운영자1
    10·01·28
    조회 : 2029
    39  마이산 석탑군
    전북 진안군 마이산 석탑군
     운영자1
    09·09·24
    조회 : 1819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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