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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전 한민족을 위해 크게 힘쓰신 국조의 업적을 되세기고 그 참뜻을 널리 알려요~~!


원효대사
 관리자    | 2008·06·23 03:42 | 조회 : 1,493


원효대사 [](617 - 686)
신라의 승려, 617년 경북 경산 출생, 성은 설(薛), 설총의 아버지, 29세에 황룡사에서 출가, 불교의 종합과 실천을 통한 대중화에 힘 씀, 법화경종요, 대승기신론, 화엄경소 등 저술

원효대사의 일생
원효는 진평왕 39년 출생. 그는 항상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노력하여 유학, 불교, 도교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이 믿고 있던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 15,6세에 불교의 진리를 담고있는 삼학에 능하게 되었다. 화랑으로 여러 전투에 참가하면서 많은 죽음을 본 그는, 사는 것에 대한 깊은 반성과 속세의 삶에 대한 허무감 때문에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여 황룡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에서 "모든 깨달음은 마음속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참선을 계속하면서, 그가 깨달은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애썼다. 그는 남루한 옷을 입고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중생을 구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불교는 백성들 사이에 널리 전파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다. 그는 한 때 파계하여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기도 하였으나, '무애가'를 지어 부르며 백성들 속에 파고들어 불교를 전파하였다. 또한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을 왕과 고승들 앞에서 강론하여 존경을 받았고, 참선과 저술로 말년을 보내다 입적하였다. 그는우리 나라 불교 사상 가장 훌륭한 승려로 추앙 받고 있다.

시대적 상황
당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으로 몹시 시달림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인재 양성과 국력 증강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시 불교는 왕과 귀족들의 종교였으며, 승려들은 산속에 들어가 참선을 하여, 일반 백성들이 불교를 접하기는 힘들었고 교리도 너무 어려웠다.


원효대사의 불교 사상
원효는 승려가 산 속에서 파 묻혀 참선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 일반 백성 속에 파고들어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우쳐 주는 것이 부처님의 참 뜻이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지 사물 자체에는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백성들에게 전파하려고 한 불교의 진리는 다음과 같다. "신분의 높고 낮음,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불교의 진리에 가까이 갈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제로는 하나로 합해질 수 있다."


원효대사의 업적
당시 신라사회는 원광(圓光)과 자장(慈藏)의 교화에 큰 영향을 입었으나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불교와 일반 서민불교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가 있었다. 이러한 때 혜공·혜숙(惠宿)· 대안(大安) 등이 일반 서민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그들에게까지 불교를 일상생활화시켰다. 원효 역시 이들의 뒤를 이어 당시의 승려들이 대개 성내의 대사원에서 귀족생활(그들은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혀 민중은 무지와 나약 때문에 어떻게 해도 석가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 애써 민중을 외면했다.)을 하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지방의 촌락, 길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며 무애호(無碍瓠; 이상한 모양의 큰 표주박으로 두드리면서 無碍歌를 불러서 붙여진 명칭)를 두드리고 〈화엄경〉의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도다"라는


구절로 노래(무애가無碍歌=모든 것에 걸림이 없다는 뜻의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가무와 잡담중에 불법을 널리 알려 일반 서민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이는 불교의 이치를 노래로 지어 세상에 유포시킴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식한 대중에까지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노래에 담겨있는 무애사상은 원효의 사생활에도 잘 나타난다. 그는 거사들과 어울려 술집이나 기생집에도 드나들고 혹은 석공들의 쇠칼과 쇠망치를 가지고 다니며 글을 새기기도 하고, <화엄경>에 대한 해설서를 지어 그것을 강의하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여염(보통사람이 모여있는)집에서 유숙하기도 하고 혹은 명산대천을 찾아 좌선하기도 하는 등 어떤 일정한 틀에 박힌 생활태도가 없었다.


이와 같이 행적도 뚜렷한 규범이 없었고, 사람들을 교화하는 방법도 일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효의 이러한 행적은 귀족중심의 불교를 대중에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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