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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성삼문成三問 선생
 운영자1    | 2008·07·15 02:27 | 조회 : 1,621




성삼문 [, 1418~1456]

본관 창녕(). 자 근보()·눌옹(). 호 매죽헌(). 시호 충문(). 사육신의 한 사람. 1438년(세종 20)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급제, 1447년 문과중시()에 장원, 집현전 학사·수찬 등을 역임했다. 그후 왕명으로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두()》를 편찬하고 경연관()이 되어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1442년 박팽년()·신숙주·하위지·이석정() 등과 삼각산 진관사()에서 사가독서()를 했고, 한글의 창제를 위해 정음청()에서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강희안()·이개() 등과 함께 랴오둥[]에 유배되어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에게 13번이나 내왕하면서 음운()을 질의하고 다시 명나라에 건너가 음운 연구를 겸하여 교장()의 제도를 연구, 그 정확을 기한 끝에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을 반포케 했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예방승지()로서 아버지 승()·박팽년 등과 같이 단종의 복위를 협의했으나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礩  )이 성사가 안 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밀고, 이개·하위지·유응부 등과 함께 체포되어 친국()을 받고, 군기감() 앞에서 거열형()을 받았다. 이어 아버지 승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극형에 처해졌고, 삼빙()·삼고()·삼성() 세 동생과, 맹첨()·맹년()·맹종()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도 모두 살해되었다.

1676년(숙종 2) 홍주() 노은동()에 있는 그의 옛집 녹운서원(), 1681년 육신묘()가 있는 노량진의 민절서원() 외에 영월의 창절서원(), 의성의 학산 충렬사(), 창녕의 물계세덕사(), 연산()의 충곡서원() 등에 6신과 함께 제향, 1758년(영조 34)에는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문집에 《성근보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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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절신(節臣)으로 꼽힌다. 본관은 창녕. 자는 근보(謹甫)·눌옹(訥翁), 호는 매죽헌(梅竹軒).

 
출신 및 관직생활

아버지는 도총관 승(勝)이다. 외가인 홍주(洪州) 노은골에서 출생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 하고 묻는 소리가 3번 들려서 삼문(三問)이라 이름지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1435년(세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 식년시에 응시하여 뒷날 생사를 같이 한 하위지와 함께 급제했다. 집현전학사로 뽑힌 뒤 수찬·직집현전을 지냈다. 1442년 박팽년·신죽주·하위지·이석형 등과 더불어 삼각산 진관사(津寬寺)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독 禮記大文諺讀〉을 편찬했다. 세종이 정음청(正音廳)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을 만들 때 정인지·신숙주·최항·박팽년·이개(李塏) 등과 더불어 이를 도왔다. 특히 신숙주와 함께 당시 요동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黃瓚)에게 13차례나 왕래하며 정확한 음운(音韻)을 배워오고, 명나라 사신을 따라 명나라에 가서 음운과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해오는 등 1446년 훈민정음 반포에 큰 공헌을 했다. 1447년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1453년 좌사간, 1454년 집현전부제학·예조참의를 거쳐 1455년 예방승지가 되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김종서 등 어린 단종의 보필세력을 제거하고 스스로 영의정이 되어 정권·병권을 장악했다. 이때 정인지·박팽년 등 36명과 함께 집현전 관원으로서 직숙(直宿)의 공이 있다고 하여 정난공신(靖難功臣)의 칭호를 받았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국새(國璽)는 옮겨졌지만 주상(主上)이 아직 계시고 우리가 있으니 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하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고 다짐하며 단종복위운동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후 받은 녹봉은 월별로 표시하여 별도로 쌓아두고 손도 대지 않았다. 단종복위운동은 그를 포함하여 집현전 출신 관료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세조의 집권과 즉위에 이르는 과정에서 많이 등용되고 배려를 받았던 그들이 복위운동에 나섰던 것은, 단종에 대해 충절을 지킨다는 유교적 명분이 깔려 있기도 했지만, 관료지배체제의 구현을 이상으로 삼았던 그들로서는 세조의 독주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세조가 즉위 직후부터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실시하는 등 왕의 전제권을 강화하려는 조치를 취하자 집현전 출신 유신들은 크게 반발했다. 마침내 성삼문은 아버지 성승, 박중림(朴仲林)·박팽년·유응부·권자신(權自愼)·이개·유성원·윤영손(尹鈴孫)·김질(金礩) 등과 함께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웠다. 1456년(세조 2) 6월 세조가 상왕인 단종과 함께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위한 향응을 베풀기로 한 것을 기회로 삼아, 왕의 운검(雲劒 : 큰 칼을 들고 왕을 시위하는 것)을 맡은 성승과 유응부로 하여금 세조와 측근을 처치하도록 계획했다. 그러나 거사 당일 갑자기 한명회의 제의로 세자와 운검의 입장이 폐지되자 거사를 중지하고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거사가 탄로날 것을 두려워 한 김질이 세조에게 이를 밀고하는 바람에 다른 모의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다음날 달군 쇠로 다리의 살을 뚫고 팔을 잘리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세조의 불의를 나무라고 신숙주의 불충(不忠)을 꾸짖는 기개를 보였다. 6월 8일 성승·이개·하위지·유응부·박중림·김문기·박쟁(朴崝) 등과 함께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능지처형(凌遲處刑)을 당했다. 거사 관련자 70여 명은 각각 죄명에 따라 혹형·처형·유배 등을 당했는데, 그중에서도 성삼문은 멸문(滅門)의 참화를 당했다. 아버지 승을 비롯하여 동생 삼빙(三聘)·삼고(三顧)·삼성(三省)과 아들 맹첨(孟瞻)·맹년(孟年)·맹종(孟終) 등 남자는 젖먹이까지도 살해되어 혈손이 끊기고 아내와 딸은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가산은 몰수되었다.


신원과 추모

성삼문은 대역죄인으로 처형을 당했으나 그의 충절을 기리는 움직임은 사림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김종직·홍섬·이이 등이 그의 충절을 논했으며, 남효온(南孝溫)은 〈추강집 秋江集〉에서 그를 비롯하여 단종복위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6명의 행적을 소상히 적어 후세에 남겼다(→ 〈육신전〉). 이후 이들 사육신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꼽혀왔으며, 그들의 신원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 마침내 1691년(숙종 17)에 관작이 회복되었으며, 1758년(영조 34)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문(忠文)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791년(정조 15)에는 단종충신어정배식록(端宗忠臣御定配食錄)에 올랐다. 성삼문 등 사육신의 처형 후 그들의 의기와 순절에 깊이 감복한 한 의사(義士)가 시신을 거두어 한강 기슭 노량진에 묻었다 하는데, 현재 노량진 사육신 묘역이 그곳이다. 또 처형 직후 전국을 돌면서 사육신의 시신을 전시할 때, 그의 일지(一肢)를 묻었다는 묘가 충청남도 은진에 있다. 장릉(莊陵 : 단종의 능) 충신단(忠臣壇)에 배향되었으며, 강원도 영월의 창절사(彰節祠), 서울특별시 노량진의 의절사(義節祠), 충청남도 공주 동학사(東鶴寺)의 숙모전(肅慕殿)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매죽헌집〉이 있다.

 

출처: 다움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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