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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근님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46대 보을(普乙) 천왕(天王)의 역사
 알자고    | 2017·06·23 13:19 | 조회 : 158

조선(朝鮮) 제46대 보을(普乙) 천왕(天王)의 역사


[번조선왕 해인(解仁)이 연(燕)나라 자객에게 시해당하다]

서기전341년 경진년(庚辰年) 12월 번조선왕(番朝鮮王) 해인(解仁)이 연(燕)나라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당하니 오가(五加)가 다투어 일어났다.
해인은 번조선의 제68대 왕이며, 일명 산한(山韓)이라고도 한다.
연나라가 자객을 보내어 번조선왕 해인을 시해한 것인데, 이에 번조선의 오가들이 번조선왕이 되기 위하여 다투어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인의 아들 수한(水韓)이 서기전340년에 제69대 번조선왕이 되었다.


[연나라의 기습과 단군조선의 역습]
서기전339년 임오년(壬午年)에 연(燕)나라 사람 배도(倍道)가 쳐들어 와서 안촌홀(安寸忽)을 공격하여 노략질을 하고 또 험독(險瀆)에도 들어오니, 수유 사람 기후가 자제 5,000인을 데리고 와 싸움을 도왔다. 이에 군세가 떨치기 시작하더니 곧 진조선과 번조선의 병력과 함께 협격하여 이를 대파하고, 또 한쪽으로 군사를 나누어 파견하여 계성의 남쪽에서도 싸우려 하니, 연나라가 두려워하며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므로 공자(公子)를 인질(人質)로 삼았다.
배도(倍道)는 서기전365년에도 요서(遼西)지역을 함락시키고 운장(雲障)까지 기습한 사실이 있다. 이때 번조선의 상장 우문언이 명을 받아 방어하였으며, 진조선과 마조선에서 군사를 보내어 복병작전으로 연나라와 제나라의 군사를 오도하(五道河)에서 격퇴하고 요서의 모든 성을 수복하였던 것이다.
서기전339년에 연(燕)나라의 배도(倍道)가 안촌홀(安寸忽)과 험독(險瀆)을 공격하여 들어왔는데, 안촌홀은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으로서 단군조선의 번한(番韓) 요중(遼中) 12성(城) 중 하나인 탕지(湯池) 지역이 된다. 안촌홀(安寸忽)은 “안 말 고을”이며 안시성은 “안 벌 재”로서 안시성은 안촌홀에 축조한 성(城)이 되는 것이다. 탕지 또는 안촌홀, 안시성은 패수(浿水)가 되는 지금의 난하(灤河)의 바로 서쪽으로 중류지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한편, 험독(險瀆)은 당시 번조선(番朝鮮)의 수도로서 패수(浿水)의 동쪽에 위치하였는데, 번한의 요중(遼中) 12성의 하나로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성이 되며, 단군조선 초기에 번한의 수도로서 동경(東京)이 된다.
번한, 번조선에는 5경이 있었는데 이를 오덕지(五德地)라 하며, 동경(東京)은 험독(險瀆), 서경(西京)은 한성(汗城), 남경(南京)은 낭야성(琅耶城, 可汗城), 북경(北京)은 탕지(湯池), 중경(中京)은 개평(蓋平)이 된다. 개평을 안덕향(安德鄕)이라고도 하고 탕지를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고도 한다.
서기전339년 연나라의 침입 때 수유(須臾) 사람 기후(箕詡)가 자제 5,000인을 데리고 와 싸움을 도왔는데, 기후는 번조선의 읍차(邑借)이며, 이후 군사력을 기반으로 서기전323년에 번조선왕이 된다. 기자(箕子)의 후손을 수유족(須臾族)이라 하는데, 기자의 이름이 서여(胥餘)로서 수유(須臾)라는 말과 유사한 바, 서여를 수유라고 부른 것이 될 것이다.
계성(薊城)은 연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데, 서기전339년 당시 연나라의 수도는 북경의 서남쪽이 되는 곳으로서 지금의 탁수지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읍차(邑借) 기후(箕詡)의 군사와 진조선과 번조선의 군사가 협공으로 연(燕)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한편으로 군사를 나누어 연나라의 수도인 계성의 남쪽까지 가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하려 하자, 연(燕)나라가 겁을 먹고 화해를 청한 것이 된다.
이리하여 연나라는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고 공자(公子)를 번조선에 인질(人質)로 주었는데, 여기 공자(公子)는 후대 연(燕)나라 장수가 되어 번조선을 침략함으로써 28년간 인질로 잡힌 데 대한 복수를 한 진개(秦開)가 분명한 것이 된다.


[백두산 천지 물이 넘치다]
서기전338년 계미년(癸未年)에 백두산(白頭山)이 밤에 울고 천지(天池)의 물이 넘쳤다.
이때 아마도 백두산이 폭발하기 직전에 마그마가 끓어 오르는 상황이었던 것이 되며, 마그마가 천지에 분출되어 물이 끓어 오르면서 물이 밖으로 넘쳐 흐른 것이 된다.


[황충(蝗蟲)과 흉년]
서기전327년 갑오년(甲午年)에 황충(蝗蟲)이 밭곡식을 다 먹어 버렸다.
황충은 메뚜기의 일종으로 밭곡식을 절단냈던 것이 되는데, 당시 벼를 논농사로 지었는지 밭농사로 지었는지 불명하나, 이양법(모내기)이 시행되기 이전이라고 보면 밭농사로 벼농사를 지은 것이 될 것인 바, 황충이 먹어 치운 것은 벼와 그 외 곡식이 될 것이다.


[읍차(邑借) 기후(箕侯)가 번조선왕(番朝鮮王)이 되다.]
서기전323년 무술년(戊戌年) 정월에 번조선왕 수한(水韓)이 죽었는데 후사(後嗣)가 없으므로 이에 기후(箕詡)가 명을 받아 번한성(番汗城)에 머물며 군령을 대행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는데, 이에 연나라는 사신을 보내 이를 축하하였다.  
이때 연(燕)나라가 왕(王)이라 칭하고 장차 쳐들어오려고 하였으므로, 번한성에서 군령을 대행하던 읍차(邑借) 기후(箕詡)도 병력을 이끌고 험독성(險瀆城)에 입궁(入宮)하여 자칭하여 번조선왕(番朝鮮王)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윤허(允許)를 구하므로, 보을(普乙) 천왕은 이를 허락하시고 굳게 연나라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이때 연나라는 마조선(馬朝鮮)에 사신을 보내와 함께 기후(箕詡)를 치자고 하였으나 마조선왕(馬朝鮮王) 맹남(孟男)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번조선의 읍차 기후(箕詡)가 명을 받고 군령을 대행하던 번한성(番汗城)은 당시 번조선의 수도인 험독(險瀆)이 아니라 서쪽에 있던 번조선 5덕지(五德地)인 5경(京) 중에서 서경(西京)에 해당하며, 번한 요중(遼中) 12성의 하나인 한성(汗城)이 될 것이다. 단군조선의 한성(汗城)은 고구려의 요서(遼西) 10성의 하나인 한성(韓城)이 된다.
읍차 기후가 번조선왕의 자리를 대신하여 군령을 대행할 때,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축하인사를 하였는데, 이는 연나라가 장차 스스로 왕이라 칭하려 하는 의도에서 같은 처지라고 여기며 축하를 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연나라는 서기전323년에 스스로 왕이라 참칭을 하였으나, 번조선왕이라 자칭한 기후(箕詡)는 보을 천왕께 사후윤허(事後允許)를 받았던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한편, 연나라는 마조선(馬朝鮮)에는 번조선을 치자며 유혹하였는데, 이는 연나라의 번조선 침공을 위한 전략전술에서 나온 것이 된다.  


[주(周)나라 제후국들의 칭왕(稱王) -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는 서기전334년에 선왕(宣王)이 왕을 칭하였고, 진(秦)나라는 서기전324년에 혜문왕(惠文王)이 왕을 칭하였으며, 연(燕)나라는 서기전323년에 이왕(易王)이 왕을 칭하였고, 한(韓)나라는 연나라와 같은 해에 선혜왕(宣惠王)이 왕을 칭하였으며, 위(魏)나라와 조(趙)나라는 서기전320년경 위(魏)의 애왕(哀王)과 조(趙)의 무령왕(武寧王)이 각 왕을 칭하였다.  
한편, 초(楚)나라는 서기전980년경 주(周)나라 목왕(穆王) 시절에 이미 왕을 칭하였다가 서기전741년 웅거(熊渠)가 본격 왕을 칭하였으며, 오(吳)나라는 서기전515년경에 합로왕(闔盧王)이 있어 이때 왕을 칭한 것이 되고, 월(越)나라는 서기전494년에 월왕 구천(勾踐)이 있었다.
위에서 왕(王)을 자칭한 연(燕), 제(齊), 진(秦), 한(韓), 위(魏), 조(趙), 초(楚) 나라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부르는데, 오(吳)나라는 서기전474년에 월(越)나라에 일찍 망하였고, 월(越)나라는 서기전334년에 초(楚)나라에 일찌감치 망하였다.
서기전770년부터 서기전403년 이전의 춘추시대에 패자(覇者)가 되었던 제(齊)나라의 환공(桓公), 송(宋)나라의 양공(襄公), 진(晋)나라의 문공(文公), 진(秦)나라의 목공(穆公), 초(楚)나라의 장왕(莊王)의 다섯 나라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는데, 전국시대 초기에 진(晋)나라가 망하고 한위조(韓魏趙)의 세나라로 나누어졌으며, 송(宋)나라는 서기전286년에 제(齊)나라에 망하였다.
전국시대까지 존속한 작은 나라로 정(鄭)나라는 서기전375년에 한(韓)나라에 망하였고, 노(魯)나라는 서기전249년에 초(楚)나라에 망하였고, 위(衛)나라는 서기전240년에 진(秦)나라에 망하였다. 


[정(鄭)나라 사람의 입국]
서기전322년 기해년(己亥年)에 정(鄭)나라 사람 정발(鄭拔)이 음악을 가지고 입국하였다.
서기전375년에 정(鄭)나라는 한(韓)나라에 망하였는데, 여기서 정발(鄭拔)이라는 사람은 정(鄭)나라 출신이라는 의미가 된다.


[태풍]
서기전319년 임인년(壬寅年)에 북풍(北風)이 크게 불어 나무가 꺾어지고 집이 무너졌다.
북풍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인데, 놉파람이라고도 한다. 동(東)을 새, 남(南)을 마, 서(西)를 하늬, 북(北)을 놉이라고 하는데, 동쪽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서 항상 새롭다(新:새)는 의미를 가지는 말로서 새라 하며, 남쪽은 태양이 정상에 떠오르는 방향인 남쪽을 바라보며 마주보는 방향이라는 의미로서 마주한다(對:맞)라는 말로서 마이다.
또, 북쪽은 동서남북의 사방 중에서 신(神)을 모시는 자리로서 높은(高) 자리라는 의미로서 놉이 된다. 북쪽을 남향을 하고 서면 뒤가 되므로 뒤(後)라는 의미로서 되라고도 한다. 한편, 서방(西方)을 하늬라고 하는 것은 어원적으로 분석연구가 더 필요하다.


[붉은 흙비가 내리다]
서기전314년 정미년(丁未年) 4월에 적토우(赤土雨)가 쏟아졌다.
하늘에서 붉은 흙비가 내린 것은, 황사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선풍(旋風, 회오리바람)에 의하여 딸려 올라갔던 황토흙이 비와 섞이어 내린 것이 될 것이다.


[정권이 외척에게 돌아가다]
서기전312년 기유년(己酉年)에 국정(國政)이 문란하여 정권이 외척 한윤(桓允)에게 돌아갔다.
서기전1286년 이전의 전기 단군조선의 천왕족(天王族)이 한(桓)씨인데, 여기서는 외척(外戚)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때에 이르러 외척의 권세(權勢)가 국정을 휘두를 만큼 비대해졌던 것이 된다. 외척이나 환관(宦官) 등 측근(側近)의 권세가 비대해지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나라는 기울게 되어 있다.


[해성(海城)의 이궁(離宮)으로 피하다]
서기전304년 정사년(丁巳年)에 도성에 큰불이 일어나 모두 타버리니, 천왕께서는 해성(海城)의 이궁(離宮)으로 피난하였다.
이궁(離宮)으로서의 해성(海城)은 서기전425년 7월에 구물 천왕 때 개축하여 평양(平壤)이라고 부른 곳이다. 북부여 시대인 서기전192년에는 해성을 평양도(平壤道)에 속하게 하였다.


[북막 추장이 음악을 바치다]
서기전298년 계해년(癸亥年)에 북막(北漠)의 추장 이사(尼舍)가 음악을 바치니 이를 받으시고 후하게 상을 내렸다.


[수유인(須臾人) 한개(韓介)의 반란과 상장(上將) 고열가(古列加)의 토벌]
서기전296년 을축년(乙丑年)에 한개(韓介)가 수유(須臾)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침범하여 스스로 천왕이 되려 하니, 상장(上將) 고열가(古列加)가 의병(義兵)을 일으켜 이를 격파하였는데, 천왕께서 서울로 돌아와서는 크게 사면(赦免)을 하였으며, 이때부터 나라의 힘이 매우 약해지고 나라의 재정이 따라 주지 못하였다.
한개(韓介)는 수유족 출신이며, 기자(箕子)의 먼 후손이 된다. 기자(箕子)의 후손에 기씨(箕氏), 한씨(韓氏), 선우씨(鮮于氏)가 있는 것이 되는데, 기씨는 기자의 종손이며, 선우씨는 기자의 차자 후손이 된다. 한씨는 기씨와 선우씨의 방계(傍系)가 되는 것이다.


[물리 천왕의 현손 고열가(古列加)의 즉위]
서기전296년 을축년에 천왕께서 붕하시니 후사가 없으므로 고열가(古列加)가 단군물리(勿理)의 현손(玄孫)으로서 무리의 사랑으로 추대받고 또한 전공이 있어 드디어 8월 15일에 즉위하였다.
서기전1285년 이후 천왕(天王)의 태자나 아들이 아니면서 천왕으로 즉위한 예는 서기전425년에 제44대 천왕으로 즉위한 백민성 욕살이었던 구물(丘勿)과, 서기전295년 제47대 천왕으로 즉위한 제43대 물리 천왕의 현손이 되는 상장(上將) 고열가(古列加)가 있다.



조홍근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사/한문화유물문화재연구원 이사/한문화사업단 이사/행운천지인 역리풍수 대표/(주)한문화개발 고문/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사/춘천고조선유적지보전협의회 총괄기획위원장/천부풍수연구원 이사/풍수지리신문 편집국장/현 법무사/저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 <생활사주> <생활기문> <천부풍수> <천웅도와 홍익인간><우리말글과 세계언문역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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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3년 역사를 정립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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