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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문화_우리말 우리글


한자는 원래 우리 글자(2)_배달나라 시대의 문자
 알자고    | 2020·09·09 23:05 | 조회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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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배달나라 시대의 문자 


    조홍근(曺洪根) 

    40여년 족보·역사 연구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홍익인간 7만년 역사/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역원리 이해 등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법학사·언론학사·인문학사(중문학·영문학·국문학)

    해달별문화원 · 천부역사태학원 대표 / 민족회의 상임부대표 /  민족회의 역사광복군 총사령 / 기천검학 범사 / 참한역사신문협의회 감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도선풍수지리신문 편집인 / 법무사

    배달나라 시대에 한웅씨(桓雄氏)가 8음 2문(八音二文)을 닦았다라고 기록되는데, 이는 8개의 언어와 2개의 문자를 배웠다는 것이 된다. 한웅씨는 배달나라의 임금인 한웅(桓雄) 천왕(天王)을 가리킨다.

    배달나라는 한국(桓國)의 정통성을 이은 나라로서 또한 9족(族)의 나라이다. 9족은 9 부족(部族)으로서 부족단위로 언어가 분화되어 9개의 언어가 있었다는 것이 되는데, 태어날 때 이미 1개 언어를 접하여 사용하고 있으므로 나머지 8개의 언어를 배웠다는 것이 된다. 

    한편, 문자는 태어날 때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나이가 되어 배우는 것이므로 배달나라 시대에 존재하였던 2개의 문자를 배운 것이 된다. 이때 2개의 문자는 배달나라 초기부터 내려온 녹도문(鹿圖文) 계통의 상형문자(象形文字)와 상형과 소리가 일치하는 상형-표음 문자로서 단군조선 초기에 정립된 정음(正音) 즉 바른소리 글자인 가림토(加臨土)의 원천이 되는 원시 표음문자(表音文字)를 배운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저술하고 학문(學問)을 하는 풍조가 일어났다라고 하는 바, 문자의 대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문자로써 관찰하여 얻은 천문(天文)과 답사하여 얻은 지리(地理)를 책으로 짓고, 철학적으로 연구하고 논술하는 학문풍조가 번성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전3897년경 배달나라 초기에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창안한 녹도문(鹿圖文)이 생긴 이후에, 서기전3500년경에 출현하여 8괘역을 정리한 태호복희(太皞伏羲)는 역학(易學)의 대가였으며, 태호복희와 동문수학한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는 천지인 삼태극(三太極)의 원리(原理)를 논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상형문자를 만드는 6서법(書法)이 정립되었다. 6서법이란 지사(指事), 상형(象形),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이다. 지사는 개수나 아래 위를 가리키는 모습 등을 나타내는 글자이며, 상형은 상형문자의 대표격인 글자를 만드는 방법으로서 사물의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이고, 회의는 글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글자이며, 형성은 같은 소리이나 다른 뜻을 나타내는 글자가 되고, 가차는 같은 소리를 가진 다른 글자를 같은 뜻으로 빌려 쓰는 방법이며, 전주는 한 글자를 다른 뜻으로 확장하여 사용하는 방법이 된다.

    이리하여, 상형문자를 사용한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는 바, 의사소통이 가능한 문장의 작법이 이미 정립된 것으로 된다. 처음에는 글자를 나열하는 방법으로 하다가 점차 정교한 법칙으로써 문장을 만들어 뜻을 명확히 전달하는 방법으로 진화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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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나라 문자로 보이는 낭하리 석각

    이후 서기전2700년경에 출현한 자부선인(紫府仙人)은 삼황내문경(三皇內門經)을 저술하여 당시 배달나라의 제후로서의 신하 자리를 거부하고 천왕(天王) 자리를 넘보며 100여회에 이르는 전란(戰亂)을 일으킨 황제헌원(黃帝軒轅)에게 가르침을 주어 진정한 신하로서 치우천왕에게 신복(臣伏)하도록 만들었다. 소위 삼황내문경은 천지인(天地人)의 이치(理致)를 적은 것이 될 것인데, 이로써 헌원(軒轅)이 천지인 삼신(三神)의 대행자인 치우천왕(蚩尤天王)을 상제(上帝)로서 진정으로 받들어 모시는 신하인 천자(天子)로 되돌아가게 하였던 것이 된다. 

    황제헌원은 창힐(倉頡)로부터 문자(文字)를 배웠다. 창힐 또한 배달나라 시대의 신하로서 문자를 배웠던 것이고, 자신이 개발한 과두문(蝌蚪文)과 조족문(鳥足文)을 헌원(軒轅)에게 전수하였던 인물이 된다. 고대중국의 사서(史書)에서는 창힐이 황제헌원의 신하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과장되거나 윤색된 춘추필법에 해당하는 기록이 된다. 

    헌원이 동서남북중의 중앙 지역에 봉해진 배달나라의 천자(天子)라면, 창힐은 동부 지역에 봉해진 배달나라의 천자(天子)로서 동격이기 때문이다. 동서남북중의 오부를 총괄하는 임금은 곧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의 대리자인 배달나라 한웅인 천왕(天王)인 것이다. 천왕을 오방(五方)에서 보좌하는 왕(王)을 오제(五帝)라 하며, 헌원과 창힐은 이 오제의 하나에 각 해당하는 것이다. 헌원과 창힐 외에 오제에 해당하는 인물은 북부의 대요(大撓), 남부의 축융(祝融), 서부의 소호(少皞)이다. 모두 배달나라의 지방에 봉해진 천하왕(天下王)인 천자(天子)인 것이다.


    1) 상음문자론(象音文字論)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상형문자가 있었다. 또한 소리글자도 있었다. 그런데, 배달나라 시대의 소리글자는 원천적으로 상형문자가 된다. 여기서 상형문자이면서 소리글자인 글자를 상음문자(象音文字)라 할 수 있다. 즉 ○, □, △는 상형문자이면서 소리글자의 자음에 해당하므로 상음문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형문자는 물론 표의문자이기도 하지만, 이 상음문자도 동시에 표의문자가 되는 것이며, 이로써 상형문자에서 나온 표음문자 또한 원천적으로 표의문자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단군조선 시대에 출현하는 소리글자인 가림토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의 글자는 원래 상형문자에서 나온 것이므로 당연히 표의문자이기도 한 것이다.

    천부삼인(天符三印)의 도형이 되는 ○, □, △ 자체가 이미 상형문자이며 소리글자가 된다. 물론 ○, □, △은 천지자연에 나타난 모든 물상(物像)을 세가지로 상징화한 것이 된다. ○, □, △에서 도출되는 기호(記號)나 부호(符號)는 수없이 많다. 즉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등을 모두 도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 □, △의 도형은 기본형태의 대표적인 글자가 되는 것으로 이러한 글자의 모습은 천지자연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된다. 또한 천지자연에는 가림토 글자나 훈민정음에 해당하는 글자의 모양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수많은 모습이나 모양의 기본형태가 ○, □, △의 삼태극(三太極)의 원리로 압축된 것이 된다.

    ○, □, △를 읽는 소리는 소위 자음으로서 입을 자연스럽게 벌려 소리내는 방법으로 읽는 것이 되어, 아래 아(.)를 붙인 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 , 유성음 의 소리가 된다. 여기서 는 의 소리로도 읽은 것이 된다. 시대가 흐르면서 는 “”으로 다시 “(하늘:天:하나 一)”이 되고, 는 “땋”으로 다시 “땅(地)” 또는 “달(들:둘:二)”이 되고, 는 “스” 또는 “서”로 다시 “서이(人)”, “세(三)”가 된 것으로 된다.

    그런데, 소위 자음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의 상형문자에 점(.)이나 ㅡ, l 등에 유사한 형태를 가진 글자가 조합되면 자음과 모음이 조화되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소위 삼재(三才)가 되는 . ㅡ l는 천지자연에도 존재하는 모양이기도 하고 ○, □, △를 극도로 축소하여 상징화한 모양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배달나라 시대에 존재하였던 상형문자이자 소리글자가 되는 상음문자(象音文字)는 서기전2181년에 정선(精選)된 가림토(加臨土) 38자로 정립된 것이 된다. 또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로 부활한 것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 초기인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가림토38자를 포함한 수많은 소리글자는 곧 배달나라 시대의 소리글자로서 단군조선 이전이나 이후에 다른 문명문화권에 전파되었을 글자이기도 하다. 가림토와 친연성이 있는 문자로는 인도의 브라미(Brahmi : 梵) 문자가 있고, 소아시아에서 나왔다는 알파벳(Alphabet)도 물론 가림토와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민족의 이동과 문자의 역사에 관한 연구로 충분히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2) 상형문자

    우리 역사기록인 신시본기(神市本紀)에서 문자의 역사는 서기전3897년경 배달나라 초기에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창안한 녹도문(鹿圖文)에서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 후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각 용서(龍書), 화서(花書), 우서(雨書), 조족문(鳥足文), 과두문(蝌蚪文) 등의 글자에 관한 용어가 기록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상형문자로서 서체(書體)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물론, 지사(指事)문자에 해당하는 글자는, 배달나라 초기에 이미 산목(算木)이라는 이름으로 글자가 있었다. 즉 1, 2, 3, 4, 5, 6, 7, 8, 9, 10의 순서로 一, 二, 三, 一 네 개, l , 一 아래 l, 二 아래 l, 三 아래 l, 一 네개 아래 l, X 이다. 여기서 시대가 흐름에 따라 五(오)라는 숫자를 나타내는 글자는 처음에는 X의 이(二)등분을 나타내는 글자에서 점차 변형되어 나온 글자가 되며 그 읽는 소리도 “오”라 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 된다. 

    가) 신지 혁덕의 녹도문(鹿圖文)

    녹도문(鹿圖文)이란 사슴(鹿)을 가리키는 그림으로서의 글자를 의미한다. 이는 서기전3897년경 처음 신지 혁덕이 사냥을 하던 중 사슴을 놓치고 나서 사슴이 지난 자욱을 보고 그것이 사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표현한 그림에서 시작하였으므로, 사슴을 그린 글자 즉 사슴 그림 글자로서 녹도문(鹿圖文)이라고 한 것이다.

    과연 서기전3897년경에 신지 혁덕이 사슴을 그린 글자가 어떠한 글자형태였는지 지금으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후대 서기전2700년경의 인물이 되는 소위 창힐(倉頡)의 조적서(鳥跡書)라고 하는 글자에서 볼 때, 그 글자들의 글자체가 새의 발자국 모양을 띄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사슴의 뿔 모양을 닮아 있는 바, 일부에서는 녹도문(鹿圖文) 또는 녹서(鹿書)라고도 하는 것이 된다.

    나) 태호복희의 용서(龍書)

    서기전3500년경 배달나라 시대에 태호복희(太皞伏羲)는 용서(龍書)를 만들었다라고 전한다. 태호복희는 배달나라 한웅 천왕(天王)의 아들로서 천군(天君)이며, 우사(雨師)를 지내고 산동지역의 서부에 진(陳)이라는 땅에서 진(震)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으로 전하는데, 이를 진제국(震帝國)이라 부른다. 우사(雨師)의 우(雨)는 용(龍)과 관련된 글자이기도 한데, 그리하여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태호복희의 모습을 인두사신(人頭蛇身) 또는 인두용신(人頭龍身)이라 하여  몸을 뱀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던 것이 된다. 실제 역사기록상으로는 용서(龍書)에 해당하는 글자 자체가 전하지 아니하므로 정확히 어떠한 문자형태였는지는 모르지만, 용(龍)의 모습과 움직임을 본 따 만든 서체(書體)가 될 것이다. 

    다) 치우천왕 시대의 화서(花書)와 투전목(鬪佃目)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 치우천왕(蚩尤天王)의 시절에 화서(花書)가 있었다고 전한다.  치우천왕은 배달나라 제14대 자오지(慈烏支) 한웅(桓雄)을 가리키며, 서기전2706년에 즉위하여 서기전2697년 갑자년에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을 평정하고서 그 제8대 유망(楡罔)의 아들 괴(魁)를 다시 단웅국(檀熊國)에 봉하였다. 그런데, 서기전2698년에 유웅국(有熊國)의 천자이던 공손씨(公孫氏)를 이어 왕이 된 헌원(軒轅)이 반란을 일으켜 이후 10년을 넘게 약 100여회를 도전해 왔는 바, 끝내는 치우천왕의 명을 받은 자부선인(紫府仙人)이 헌원에게 삼황내문경(三皇內門經)을 전수(傳授)하여 주어 도(道)를 깨닫게 만들어 진정한 신하로 굴복하게 하고 전쟁을 종식시켰던 것이다. 화서(花書)는 태호복희가 만든 용서(龍書)처럼 꽃의 모양을 본 따 만든 서체(書體)의 일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라) 자부선인의 우서(雨書)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 치우천왕 시절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 우서(雨書)를 만들었다 전한다.  자부선인은 배달나라의 대표적인 선인(仙人)으로서 광성자(光成子) 또는 광명왕(光明王)으로도 불리는데, 서기전3500년경 태호복희와 동문수학하였던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의 후손으로서 서기전2240년경 단군조선 시대의 선인(仙人)으로 일명 묘전랑(妙佺郞)이라 불리던 대련(大連)과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加臨土) 38자를 정립한 을보륵(乙普勒) 선인(仙人)과 함께 태백산(太白山) 사선각(四仙閣)에 모셔진 사선(四仙)의 한 분이시다. 위 사선(四仙)을 모신 것은 단군조선 초기가 되며, 그래서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된다. 우서(雨書)는 앞의 용서(龍書)나 화서(花書)처럼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양을 본 따 만든 서체(書體)의 일종이 될 것이다.

    마) 창힐의 과두문(蝌蚪文)과 조족문(鳥足文)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 치우천왕 시절에 창힐(倉頡)이라는 인물이 과두문과 조족문을 만들었다라고 전한다. 창힐은 배달나라 시대에 배달나라의 동부(東部)를 관할한 청제(靑帝)가 된다. 헌원이 배달나라의 중앙지역이 되는 황부(黃部)를 맡은 천자(天子)로서 황제(黃帝)라 하는 것과 같다.


    창성조적서(倉聖鳥跡書) : 창힐(倉頡)의 조족문(鳥足文) : 녹도문(鹿圖文:鹿書)

    창힐은 황제헌원에게 문자를 전수한 인물로 전하는데, 배달나라의 문자인 부도(符圖)의 글을 배운 인물이 된다. 부도(符圖)는 곧 배달나라의 상형문자를 가리킨다. 창힐은 황제헌원에게 과두문을 전하였다 하기도 하고 조족문을 전수하였다 하기도 하는데, 과두문은 글자의 체가 올챙이 모양이며, 조족문은 새발자국 모양이 된다. 소위 조족문(鳥足文)이라고 알려진 글로는 창힐이 만든 글자가 되는 창성조적서(倉聖鳥跡書)에 새겨진 글이 대표적이다. 

    과두문의 서체(書體)로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서기전2267년경에서 서기전2247년경 사이에 요순(堯舜)시대 9년 대홍수의 치수관계로 우순(虞舜)의 사공(司空) 우(禹)가 단군조선의 태자부루로부터 치수법(治水法)을 전수받고 치수에 성공한 후, 남악(南岳) 형산(衡山)의 구루봉에 세운, 중국측에서 소위 우왕비(禹王碑)라 부르는 우치수기념부루공덕비(禹治水紀念扶婁功德碑)를 들 수 있다. 


    3) 표음문자(表音文字) - 상음문자(象音文字)

    배달나라 시대의 표음문자는 별도의 명칭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형문자의 일종이 되는데, 상형과 표음 즉 읽히는 소리가 일치하는 글자가 되어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상음문자의 대표적인 글자로서 서기전3897년에 배달나라를 세울 때 한국(桓國)에서 가져온 천부삼인의 부호이자 상형문자가 되는 ○, □, △이다. 이 ○, □, △의 세가지 글자는 표음문자의 자음이 되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등의 조합된 글자이기도 하면서, 이들을 도출할 수 있는 글자로서 그 원천이 되는 글자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 글자의 원형은 천지자연에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이며, 의사소통을 위하여 그 특징을 그림으로 그려 글자로 사용한 것이 되는 것이다. 

    서기전3897년경 배달나라 초기부터 표음문자의 시초가 되는 글자로서 이미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가 사용되어온 것이 된다. 이 상음문자는 서기전2181년에 단군조선 제3대 가륵(嘉勒) 천왕 시절의 삼랑 을보륵이 가림토 38자로 정선(精選)하여 정리된 것으로 된다.

    즉,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는 배달나라 시대에 사용되던 소위 상음문자의 낱자를 대표적인 글자로 정리한 것이며, 그 외에도 소리글자가 되는 글자들이 있었던 것이 되고, 이후에도 같은 소리를 내는 글자를 다른 형태로 표현하여 사용한 것이 되는데, 이는 사람마다 같은 글자라도 다른 모양으로 쓰는 것과 같은 이치에 해당한다.

    이리하여,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가림토 38자가 아닌 다른 형태의 글자가 계속 사용되었던 것이 되고, 이러한 사실은 단군조선 시대에 주조된 소위 명도전(明刀錢)에 새겨진 글자로써 증명되며, 또한 배달나라 상음문자 또는 가림토 글자 계통이라 할 수 있는 인도의 브라미(Brahmi) 문자로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인도의 브라흠(Brahm)은 한자로 범(梵)이라 기록되며 인도의 고대 산스크리트를 범어(梵語)라고 부른다.


    4) 황제헌원과 원시중국어

    소위 중국(中國)의 역사는 주(周)나라 전국(戰國)시대부터 스스로 중화(中華), 중국(中國)이라 칭하면서 본격 시작되나, 그들의 실질적인 선대역사는 멀게는 서기전2698년 계해년에 유웅국의 왕이 되어 배달나라 치우천왕에게 100여회를 도전하였던 황제헌원(黃帝軒轅)에 뿌리를 두는 것이 된다. 

    황제헌원은 배달나라의 천자(天子)로서 서기전2697년 이후에 치우천왕에게 10년간 73회를 도전하고 합 100여회에 걸쳐 전쟁을 일으켰다가, 서기전2688년경에 이르러 자부선인의 가르침으로 삼황내문경을 접하고, 도를 깨달아 배달나라의 진정한 신하가 됨으로써, 배달나라의 중앙지역인 황부(黃部)의 최고책임자인 황제(黃帝)로 인정되어 정식 천자(天子)가 되었던 것이다.

    황제헌원은 공손씨(公孫氏)의 아들이거나 후손이며, 공손씨의 공손(公孫)이라는 말은 곰의 후손이라는 이두식 표기가 되는데, 공손씨의 선대가 되는 유웅국(有熊國)의 시조인 소전씨(少典氏)는 웅족 출신으로서 서기전3252년에 배달나라 천왕으로부터 강수(姜水)에 감병(監兵)으로 봉해진 천자(天子)이다.

    소전씨의 아들인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는 처음 배달나라의 농사담당이던 우가(牛加)를 지낸 인물로 신농(神農)이라 불리며, 서기전3218년에 산동지역에 있던 태호복희가 서기전3528년경에 세웠던 나라인 진(震)나라를 접수하여 다스리게 되니 염제(炎帝)라 불리는 것이다. 

    공손씨는 염제신농씨의 방계(傍系) 혈족이 된다. 공손씨는 감병을 게을리 하여 헌구(軒丘)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왕이 되니 소전씨의 나라이름을 그대로 따 유웅국(有熊國)이며, 헌원이 이 헌구(軒丘)의 유웅국에서 태어났으므로 헌원이라 부르는 것이 된다. 

    서기전2698년경 당시에 헌원(軒轅)은 염제신농국이 쇠퇴하여 많은 제후들이 군사를 일으키려 할 때, 치우천왕(治尤天王)이 먼저 염제신농국을 평정하자 치우천왕에게 도전한 것이다. 그런데, 황제헌원은 나라의 관제(官制)에 운(雲)이라는 글자를 사용한 벼슬이름을 두었으며, 산해경(山海經)에 배달나라 제14대 한웅(桓雄)이 되는 치우(蚩尤)가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에게 청하여 헌원(軒轅)을 폭풍우로 혼줄내게 하였다는 기록 등을 감안하면, 당시 헌원이 배달나라의 운사(雲師)를 지낸 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즉, 헌원이 유웅국 출신으로서 배달나라의 운사(雲師)를 지내고 염제신농국이 쇠퇴함을 보고 유웅국으로 되돌아가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도모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헌원이 정식으로 배달나라의 천자(天子)로서 황제(黃帝)가 된 후, 창힐(倉頡)로부터 문자를 전수받아 백성들에게 가르친 것이 된다. 이후 유웅국의 백성들은 창힐이 전수한 상형문자로 일상생활의 의사소통 도구로 사용하였을 것이고, 나아가 이를 언어(言語)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원시중국어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달나라에는 8음(音) 2문(文)이 있었다고 하는데, 8개 부족에 각 다른 언어가 존재하였던 것이며, 글자는 2가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황제헌원이 상형문자로 된 문장을 말로써 사용함으로써 9개 언어가 되는 셈이다.

    태호복희씨 이후 주양(朱襄)이라는 인물이 육서(六書)를 정립하였다고 전한다. 이때는 서기전3300년경이 되는데, 황제헌원 이전에 상형문자로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이 정립되었고 이를 사용한 문장작법이 정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된다.

    이에 따라 황제헌원의 백성들은 점차 문장언어(文章言語)를 사용함에 따라 배달나라 일반백성들과는 다른 형식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 되는데, 상형문자를 사용하는 문장언어는 고립어(孤立語) 형식이며, 배달나라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원시한국어인 교착어 형식이 되는 것이다. 이후 당우하은(唐虞夏殷)과 주(周) 나라를 거치면서 원시중국어는 약 2,000년을 지나는 사이에 문장언어(文章言語)가 하나의 구두언어(口頭言語)로 정착되어 지금의 중국어로 굳어진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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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王의 어원 왕은 웅에서! 17·05·11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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