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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문화_우리말 우리글


한자는 원래 우리 글자(3)_단군조선 시대의 문자 "상형문자"
 알자고    | 2020·09·09 23:18 | 조회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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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단군조선 시대의 문자 


    조홍근(曺洪根) 

    40여년 족보·역사 연구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홍익인간 7만년 역사/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역원리 이해 등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법학사·언론학사·인문학사(중문학·영문학·국문학)

    해달별문화원 · 천부역사태학원 대표 / 민족회의 상임부대표 /  민족회의 역사광복군 총사령 / 기천검학 범사 / 참한역사신문협의회 감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도선풍수지리신문 편집인 / 법무사

    한단고기(桓檀古記)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 보면 "풍백(風伯)은 천부(天符)를 새긴 거울을 들고 앞서가고"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써 청동거울에 천부(天符)를 새긴 것으로 되며, 이 천부는 바로 원(○), 방(□), 각(△) 또는 무극(無極:원:○), 태극(太極:????), 삼태극(三太極)의 문양 또는 하나(一), 둘(二), 셋(三) 등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 상징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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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태극 문양 

    한단고기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는 서기전1833년에 요하(遼河)의 남쪽에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를 세워 역대 제왕(帝王)의 이름을 새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비문의 글자는 곧 단군조선의 문자가 되는 것이다.  또, 신라(新羅) 시대인 서기400년경 박제상(朴堤上)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는  단군조선 시대의 어문정리(語文整理)와 어문통일(語文統一)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부도지에 의하면, "임검씨(壬儉氏)는 마고(麻姑)의 계보(系譜)를 닦아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天符)의 음(音)에 준하여 그 어문(語文)을 정리하였으며, 매 10년마다 반드시 신시(神市)를 여니 이에 어문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인세(人世)가 태화(太和)하였다(壬儉氏...修麻姑之譜 明其族屬 準天符之音 整其語文 ...每十歲必開神市 於是 語文同軌 一準天下 人世太和...)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임검씨의 나라는 곧 단군조선(檀君朝鮮)이며, 단군조선의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신지(神誌)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고, 제3대 가륵(嘉勒) 단군은 서기전2181년에 상형문자인 진서(眞書)가 있어도 말이 통하지 않아 바른소리인 정음(正音) 38자를 만들도록 하였는데, 이를 가림토(加臨土:加臨多)라 하였다 한다.

    진서(眞書)는 뜻글자로서 상형문자(象形文字)이며 바로 배달나라의 녹서(鹿書:鹿圖文), 용서(龍書), 우서(雨書), 화서(花書), 조족문(鳥足文), 과두문(蝌蚪文) 등을 가리키는 것이고, 단군조선에서는 이를 신전(神篆)이라 하였던 것이며, 가림토는 소리글자로서 말(언어)이나 글자의 소리를 통일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발음기호에 해당하는 글자가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도 배달나라와 같이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사방의 사해(四海) 각지의 백성들이 모이게 하여 특산물을 교환하면서 하늘에 제사도 지내고 언어소통의 통일을 기하였던 것이다. 

    배달나라 말기에 요(堯)는 신시(神市)에 참가하였던 인물이며, 단군조선 시대에는 요임금을 비롯한 순임금, 하, 은, 주의 천자(天子)들이 모두 단군조선에 조공하였던 것이 되고, 매 10년마다 신시(神市)에 사자(使者) 등을 보내어 참가한 것이 될 것이다.

    배달나라의 신시와 단군조선의 신시에는 한국(桓國)의 9족이 되는 구한(九桓) 즉 배달나라의 구려(九黎)이자 단군조선의 구한 또는 구이(九夷)가 되는 족속들은 모두 참석한 것으로 추정되며, 역대 하은주(夏殷周)가 번한(番韓)이나 마한(馬韓)에 조공(朝貢)을 하거나 참례(參禮)한 사례가 있음을 보아, 고대중국도 사신을 보내거나 하여 신시(神市)에 참석한 것이 틀림없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단군조선은 요(堯)의 당(唐)나라, 순(舜)의 우(虞)나라, 하(夏), 은(殷), 주(周)나라를 단군조선 백성들과 족속이 다른 나라로 보지 않았고, 특히 하나라 시조 우(禹)는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반역하여 자치(自治) 왕조(王朝)를 시작한 인물이며, 주(周)나라는 백족(白族:白夷:西夷)의 나라인데 백족 역시 마고(麻姑)의 후손으로서 단군조선은 주(周)나라의 지배층을 마고의 후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의 수도는 일개의 소부족(小部族)의 나라인 소국(小國)의 수도가 아니며, 사방 사해(四海)의 9족(族)의 공도(公都)였다. 단군조선은 마고계보(麻姑系譜)의 족속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문물을 교환하기도 하고 어문(語文)을 통일시키고 종교행사를 벌였던 것이다.


    가. 상형문자

    1) 진서(眞書:참글_神篆:신전)

    단군조선은 배달나라를 계승한 나라이므로, 배달나라의 상형문자를 사용한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 시대에 배달나라의 상형문자가 되는 녹서(鹿書) 또는 녹도문(鹿圖文), 용서(龍書), 화서(花書), 우서(雨書), 과두문(蝌蚪文), 조족문(鳥足文) 등으로 불리던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에 소위 단군조선 상형문자로서 전서체(篆書體)라 할 수 있는 신전(神篆)이라는 참글, 진서(眞書)가 있었다. 신전(神篆)은 신령스런 옛 글자라는 뜻이 되며, 진서(眞書)라는 글자는 훈(訓)으로 읽으면 참글이 된다. 

    참글이라는 말은 "참 그림"이라는 말로서 상형문자임을 의미한다. 즉 신전이라는 문자는 상형문자인 것이다. 이는 신전 또는 진서가 곧 배달나라 초기부터 전해져 오던 녹서(鹿書), 태호복희에 의하여 만들어진 용서(龍書), 자부선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우서(雨書), 치우천왕 시대의 화서(花書), 창힐이 창안하였다는 과두문(蝌蚪文), 조족문(鳥足文) 등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특히, 배달나라의 동부(東部)를 책임지고 있던 청제(靑帝) 창힐(倉頡)이 다스리던 땅인 산동지역과 발해만 유역은 단군조선의 서쪽 영역으로서 번한(番韓) 관경에 속하는 바, 단군조선이 창힐이 창안하였다는 과두문과 조족문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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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禹治水紀念扶婁功德碑) : 조족문 

    대진국(大震國:발해) 제3대 문황제(文皇帝)가 지은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의하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 개국 당시에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연하실 때, 고시(高矢)는 동해(東海)에서 청석(靑石)을 캐오고, 신지(神誌)는 청석에다 삼일신고를 새겼다고 전한다. 이때 청석에 새긴 삼일신고의 글자체가 곧 상형문자로서 신전(神篆) 즉 진서(眞書)로서 과두문(蝌蚪文) 등이 될 것이다.

    또, 단군조선 초기가 되는 서기전2267년에 치수문제로 개최된 도산회의(塗山會議)에서 단군조선의 태자부루가 우순(虞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에게 전수한 홍범구주(洪範九疇)라 불리는 소위 금간옥첩(金簡玉牒) 또는 신서(神書)는, 단군조선에서 작성한 책으로서 그 안에 든 글자는 서기전2181년 가림토 38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이므로 상형문자인 진서(眞書)가 되는 것이다. 

    금간옥첩이란 말은 금(金)으로 판(版)에 옥(玉)으로 된 책(冊)이란 뜻이 되는데, 이는 곧 금판에 글자를 새긴 것이며 옥(玉)을 박아 꾸민 것이 된다. 물론 옥을 글자모양으로 갈고 다듬어 금판에 박은 것일 수도 있다. 그 글자의 형태는 아마도 녹도문(鹿圖文:鹿書:사슴 그림 글자) 또는 과두문(蝌蚪文:올챙이 모양의 글자) 등이 될 것이다. 


    2) 진서(眞書)의 아류인 은문(殷文:은갑골문)

    은문(殷文)은 은(殷)나라의 문자로 소위 갑골문(甲骨文)이라고 불린다. 은나라는 서기전1766년에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사력 지원으로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시작된 나라이며, 서기전1122년에 폭정을 펼치던 주왕(紂王)이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망하기까지 645년간 존재한 나라이다. 서이족(西夷族)의 나라인 주(周)나라에 반하여 은(殷)나라는 동이족(東夷族)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갑골문(甲骨文)은 거북이 등껍질(甲)이나 동물의 뼈(骨)에 새긴 글자를 가리키는데, 예리한 칼 등으로 긁어 파서 만드는 글자로서 글(契)이라는 글자에서 대(大)를 뺀 글자와 상통하게 된다. 즉, 글(契)이란 그림(圖)이라는 말과 어원을 같이하는 말로서 칼(刀)로써 긁어 표시한 뜻을 지닌 문자(文字)가 되는 것이다.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은 단적으로 상형문자(象形文字)이며, 지사(指事), 상형(象形), 가차(假借), 전주(轉注) 등의 육서법(六書法)이 적용되는 글자이다. 

    서기전1120년경 은(殷)나라의 자작(子爵)이던 기자(箕子)가 은나라가 망하자, 자신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었던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신하가 되지 않고 단군조선 땅으로 망명하였는데, 이때 기자는 일토산(一土山:王山)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사(士師)이던 왕수긍(王受兢)에게 부탁하여 단군조선의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단목판(檀木板)에 은문(殷文)으로 옮겨 적게 하여 읽었다라고 서기739년경 대진국(大震國:발해)의 제3대 문황제(文皇帝)가 지은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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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殷) 갑골문(甲骨文) 

    여기서, 서기전1120년경 당시에 목판에 글을 새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이때 은문(殷文)은 은나라의 소위 갑골문(甲骨文)으로서 대체적으로 단군조선의 신전(神篆)과는 다른 글자체였던 것이 된다. 이는 아마도 은나라가 시대 흐름에 따라 원래 단군조선의 글자와 같았던 상형문자의 형태를 변형시켜 사용하거나 독자적으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글자의 모양이 달라진 것이 될 것이다. 이는 주나라 전국시대의 육국의 문자가 각각 달랐던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역사적으로 은나라 유적지인 은허(殷墟) 외에 단군조선의 영역이던 발해만 유역과 두만강 유역에 갑골문의 일종인 우골문(牛骨文)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허는 산동지역의 서쪽으로 황하 바로 이북에 있는 지금의 안양(安陽)이라는 땅이 대표적인데, 역사적으로 이곳은 은나라의 여러 수도 중의 하나가 된다. 

    갑골문을 새긴 도구가 대체적으로 뽀족한 칼이라는 점에서 글자의 형태가 칼로 긁은 모양이 되는데, 청석 등 돌에 글자를 새길 때와는 다른 형태가 된다. 아마도 돌에 새긴 글자의 형태는 서기전2267년이후 서기전2247년경 사이에 우순(虞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가 새겼던 치수기념비의 비문과 같은 글자체인 과두문과 같은 유형이 될 것이다.

    소위 갑골문의 글자체가 선으로 이루어진 것을 염두에 두면, 단군조선 시대에 글자를 읽는 소리가 은 갑골문의 글자를 읽는 소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이 된다. 즉,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의 모양을 고려하면, 은 갑골문의 글자가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으로 구분이 가능한 글자가 되는데, 곧 은 갑골문은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인 신전(神篆) 즉 진서(眞書)와 같은 상형문자(象形文字)로서 그 아류(亞類)가 되는 것이며, 그 글자를 읽는 소리는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의 자음과 모음의 낱자로 이루어진 글자로 분석하여 읽었던 소리와 일치하는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써 하나를 든다면, 은 갑골문에 나타나는 사람이라는 글자인 인(人)이라는 글자는, 왼쪽으로 삐친 l 모양과 오른쪽으로 삐친 ㄴ모양의 글자가 되어 "l ㄴ“이 되어 지금의 ”인“이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물론 이 인(人)이라는 글자는 사람모습을 나타낸 ”사람“이라고 읽히는 글자의 특징을 살린 축소화된 글자가 되며, 그리하여 人이라는 글자를 후대에 훈(訓:뜻)과 음(音:소리)으로 읽어 ”사람 인”이라 하는 것이 된다.


    3) 진서(眞書)의 변형체(變形體)인 부예(符隸)

    가) 부예(符隸)

    부예라는 글자는 서기전925년에 단군조선(檀君朝鮮) 부여(夫餘)의 한수(漢水) 사람 왕문(王文)이 이두법(吏讀法)을 만들 때 신전(神篆)을 간략화 하여 만들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원래 부여(夫餘)는 단군조선 초기에 단군왕검 천제의 넷째 아들인 부여(扶餘)가 봉해진 군국(君國)인데, 서기전1285년부터 부여 땅이 단군조선의 중심인 수도가 있던 곳이 되어 부여가 단군조선의 대칭(代稱)이 되기도 한다. 

    한수(漢水)는 왕문(王文)의 고향이 되는 일토산(一土山) 지역에 있던 강이 되는데, 일토산은 왕문의 선조가 되는 서기전1122년경 인물로서 망명자인 은(殷) 왕족 기자(箕子)의 사사(士師)이던 왕수긍(王受兢)의 고향이기도 한 바, 왕문은 번조선 사람이 되므로 일토산과 한수는 곧 번조선에 있었던 것이 된다. 

    번조선의 관할지역을 고려하면, 번조선은 지금의 발해만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지금의 요동반도의 요하(遼河) 서편으로 산동지역까지 포함하는 땅이 되는데, 이리하여 일토산(一土山)과 한수(漢水)는 서기전1120년경에 기자(箕子)가 자리잡은 기후국(箕侯國)에 있거나 지금의 요하 서편에 있는 지역이 될 것이다. 

    진(秦)나라 때 정막(程邈)이 숙신(肅愼)으로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수(漢水)에서 왕문의 예법(隸法)을 얻었으며, 그 획을 계승하여 조금 바꾸어 팔분체(八分體)를 만들었다 한다. 숙신은 부여의 동쪽에 위치한 땅으로 지금의 송화강 동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숙신(肅愼)은 원래 서기전2333년경에 송화강 동쪽에 봉해진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뒤에 읍루(挹婁), 말갈(靺鞨) 등으로 불리우고 여진(女眞), 만주(滿洲)로 불리기도 한다. 진(秦)나라는 주(周)나라를 멸망시킨 서기전249년부터 망한 서기전207년까지 사이에 존재한 나라인데, 단군조선은 서기전 238년에 망하고 서기전 232년에 해모수의 북부여에 접수되었으므로, 진(秦)나라 출신의 정막이 활동한 시기는 단군조선 말기에서 북부여 해모수(서기전 239-서기전 194)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진서(眞書)는 단군조선 초기부터 존재한 상형문자인 신전(神篆)을 가리킨다. 이에 반하여 서기전925년에 왕문(王文)이 만든 부예(符隸)는 신전(神篆)을 변형시켜 간소화한 글자가 된다. 즉 진서(眞書)가 단군조선의 전서체(篆書體)라면 부예(符隸)는 전서체를 변형시킨 예서체(隸書體)에 해당하는 것이다.

    부예의 부(符)는 상형문자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예(隸)는 이전의 문자를 따른 글자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부예는 완전히 새로운 글자라는 것이 아니라 신전(神篆)에서 나온 후신(後身)임을 뜻하는 것이다. 부예가 어떤 형태의 글자인지는 아직 명문(明文)의 기록이 없어 불명이나, 역사적으로 추론하면 소위 춘추시대부터 존재한 것이 되는 소위 첨수도(尖首刀)와 명도전(明刀錢)에 새겨진 문자의 형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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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 예 : 가림토

    첨수도와 명도전에는 수많은 상형문자와 가림토문자 및 이에 유사한 모양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상형문자에 해당하는 글자들이 곧 왕문이 만들었다라는 부예(符隸)와 상통하는 문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첨수도나 명도전에는 그 문자들이 상형을 딴 경우가 많은데, 그 글자들의 모습이 복잡한 형태의 글자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소리글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이 가능한 간단한 형태의 상형문자이기 때문이다. 

    즉, 부예(符隸)를 간략하게 말한다면, 복잡한 상형문자를 간략화(簡略化)하여 소리글자인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읽을 수 있는 형태까지 변형된 글자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부예가 후대에 진(秦)나라의 정막(程邈)에 의하여 지금의 한자(漢字)의 원류가 되는 글자 즉 소위 예서체(隸書體)에 해당하는 글자의 모습으로 변형된 것으로 된다.


    나) 왕문(王文)과 왕수긍(王受兢)

    왕문은 단군조선의 번조선(番朝鮮) 사람으로서 서기전925년에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인 신전(神篆:眞書)을 간략화하여 한자(漢字)의 원류가 되는 문자인 부예(符隸)를 만들고, 이두문(吏讀文)을 만들었다.

    왕문의 선조인 왕수긍(王受兢)이라는 인물은 서기전1120년경 은나라 왕족인 기자(箕子)가 은나라가 망하자 주나라 무왕(武王)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고 단군조선으로 도망하여 왔을 때, 기자의 사사(士師)였는데, 이때 기자는 단군조선의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왕수긍에게 부탁하여 은문(殷文)으로 적게 하여 즐겨 읽었다고 전한다.

    왕문은 당시 주(周)나라 사람이 아니다. 당시 왕문의 고향이 되는 한수(漢水)는 양자강의 지류가 되는 지금의 한수(漢水)가 아니라, 황하(黃河) 이북으로 단군조선 영역 내에 있던 번조선(番朝鮮) 땅에 소재한 강이 되는 것이다.

    왕수긍(王受兢)은 일토산(一土山) 사람이라 하는 바, 서기전1120년경 당시 일토산은 곧 왕산(王山)이 되고, 후대에 일토산을 일명 평양(平壤)이라고도 하는데, 이 평양은 지금의 대동강 평양이 아니라, 서기전425년경에는 평양이 해성(海城)으로서 지금의 요동반도 북부에 소재하는 지금의 심양(瀋陽) 남쪽에 위치하는 안산(按山) 지역이 되며, 심양은 단군조선의 장당경(藏唐京)이 소재한 곳이고, 이 장당경은 개사원(蓋斯原)에 있었던 것이다.

    장당경은 서기전1285년 단군 색불루(索弗婁)가 즉위하면서 고등왕묘(高登王廟)를 건립한 곳이며, 부여(夫餘) 땅에 속한다. 즉 서기전425년 단군 구물(丘勿)이 소도를 장당경으로 삼고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라 하였다. 즉 왕수긍, 왕문의 집안은 이곳 해성(海城) 근처인 부여지역 출신으로 추정되는데, 이 해성(海城) 지역은 번한(番韓) 또는 번조선(番朝鮮), 후대의 기씨(箕氏)의 번조선, 위씨조선(衛氏朝鮮)과 근접한 곳이기도 하다.

    다만, 서기전1120년경에 일토산(一土山)이 어디인지, 서기전925년경에 한수(漢水) 또는 서기전250년경의 부여 땅의 한수(漢水)가 어디인지 불명인데, 일토산(一土山)과 한수(漢水)는 번조선 땅이던 요동반도 서쪽으로 태원(太原) 이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편, 문화류씨(文化柳氏) 족보에는 왕문이 쓴 글은 전자 같기도 하고 부적 같기도 한데, 왕문은 왕수긍(箕子의 師士)의 아버지다(王文書文字而 如篆 如符文 卽 受兢之父)라고 하여, 왕문(王文)이 왕수긍(王受兢)의 선대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명백한 오류이며, 왕문이 왕수긍보다 약200년 이후의 후손으로 약7세손(世孫) 뻘이 된다.

    왕문이 만든 이두법(吏讀法)은 서기전925년 당시에 쓰이던 상형문자로써 그 훈(訓)이나 음(音)을 따서 우리말을 표기한 방법이 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더라도 신라(新羅)가 아닌 고구려(高句麗)에서도 이미 이두식(吏讀式) 표기가 쓰여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신라의 설총이 처음으로 이두를 만든 것은 아니며, 설총은 신라의 이두법을 체계화하여 정리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이두법(吏讀法)은 서기전925년부터 시작된 것이 된다.


    4) 첨수도(尖首刀) 및 명도전(明刀錢)에 새겨진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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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明)이라 새겨진 명도전 : 단군조선 화폐 <사진_국립중앙박물관>

    첨수도와 명도전이라 불리는 도전(刀錢:칼돈)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첨수도는 머리 끝이 뽀족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며, 명도전은 명(明)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붙여진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영역이던 지역에서 출토되는 첨수도와 명도전은 단적으로 단군조선에서 주조(鑄造)되고 유통(流通)된 단군조선 자체의 화폐가 된다. 물론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 영역에서 출토되는 첨수도나 명도전이 있긴 하다. 즉, 연(燕)나라에서 출토되는 명도전을 연명도(燕明刀)라 부르고 제(齊)나라에서 출토되는 명도전을 제명도(齊明刀)라 부른다. 그러나, 연명도라는 것은 거의 단군조선 영역에서 출토되는 단군조선의 명도전이며, 제명도도 제나라가 독자적으로 주조한 것이 아니라 단군조선에서 주조된 것이 제나라 땅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도전에 명(明)이라고 새겨져 있지 아니한 소위 명도전은 단군조선의 명도전이 아닐 가능성이 많고, 주나라의 제후국이던 연제조(燕齊趙) 등이 단군조선의 명도전을 흉내내어 만든 것이거나,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던 기후국(箕侯國), 흉노(匈奴)나 그 후예 또는 산동지역의 단군조선 제후국들이 주조유통한 것으로 된다. 

    단군조선 영역은 명도전의 출토지로 보면, 대요수가 되는 지금의 영정하 동쪽으로 발해만 유역의 번한 땅을 포함하여, 번한의 북쪽으로 구려 땅이 되는 지금의 요하 상류지역, 마한 땅이 되는 한반도의 북부지역과 진한 땅이 되는 요동반도와 만주 지역이 그 중심지역이 된다. 

    이와 같이 특히 명도전이 단군조선 삼한의 중심지역에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것으로 보면, 단군조선의 화폐임을 명백하게 알 수 있으며, 북경의 서쪽으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을 고려하면, 서기전650년경 기후국과 고죽국이 망하면서 지금의 영정하 동쪽의 번한 직할 영역으로 그 주류세력이 이동한 결과로 인한 것임이 드러난다.  

    즉, 명도전은 춘추시대에 주조되어 유통된 화폐로서 서기전650년경 이후에는 지금의 영정하 동쪽으로 단군조선 삼한의 중심지역에서 주조유통된 것으로 되는 것이다. 한편, 산동지역의 단군조선 제후국들은 이후에 자체적으로 명도전을 주조유통한 것이 되는데, 이들 산동지역의 명도전이 제명도로 잘못 명명된 것으로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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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첨수도(尖首刀)

    단군조선의 첨수도는 명도전 이전에 주조유통된 것이며, 은나라 말기나 주나라 초기부터 이미 존재한 것이 되는데, 이때의 단군조선 영역은 대요수인 지금의 영정하 서쪽으로 기후국(箕侯國)은 물론 흉노(匈奴)의 근거지인 지금의 오르도스 지역과 산동지역에 걸치는데, 이러한 단군조선의 첨수도를 모방하여 제(齊)나라가 첨수도를 제지법화(齊之法化) 등을 주조한 것이 된다.

    첨수도에는 명도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오래된 형태 즉 고체(古體)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냥 상형문자로 보아도 문제가 없는 글자들이며, 물론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하여 소리글자로 조합하여 읽을 수 있는 글자들이 된다. 

    명도전에는 첨수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진화된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또 상형문자이면서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하여 소리글자로 읽을 수 있는 글자인 소위 상형-표음 문자가 새겨져 있기도 하고,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하여 적으면서 상형을 띈 글자가 되는 소위 표음-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기도 하며, 상형보다도 자음과 모음으로 읽을 수 있는 순수한 소리글자(표음문자)라 할 수 있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첨수도와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는,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소리글자인 가림토 38자와 가림토 38자 외의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으로 새겨져 있으며,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이 가능한 글자가 되어 전체적으로 보면 소리글자 즉 표음문자라고도 할 수 있는 사실에서, 소위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글자가 새겨진 화폐 또는 칼 모양의 화폐라는 의미로 자모전(子母錢) 또는 자모도전(子母刀錢)이 된다.

    실제로 우리 역사기록에는 서기전1680년에 단군조선에서 자모전(子母錢)을 주조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이때의 자모전은 작은 단위의 돈과 큰 단위의 돈이 아니라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의 글자가 새겨진 돈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5) 상형문자 진서(眞書)를 읽는 소리 - 음독(音讀)과 훈독(訓讀)

    가) 설문해자(說文解字)와 상형문자 발음표기법

    허신(許愼)이 지었다는 설문해자는 소위 한자(漢子)의 발음표기를 적은 것으로서 초성(初聲)과 중성(中聲) 및 종성(終聲)을 두 글자로 나누어 적는 방법인데, 앞 글자는 초성을, 뒷 글자는 중성과 종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발음표기법을 반절(半切)이라 한다. 즉, 예를 들어 동(東)은 덕홍절(德紅切)이 되는데, 덕(德)의 초성인 “ㄷ”을 따고 홍(紅)의 중성과 종성인 “옹”을 따서, “동”이라고 발음하는 방식이다. 이를 중국어식 발음으로 나타내면, “ㄸ + 웅”이 되어 “뚱”이 된다.  허신의 설문해자는 시기적으로 한(漢)나라 시대의 한자의 발음표기가 되는데, 현재 우리 한국어에 쓰이는 한자(漢字)의 발음은 이 설문해자에서 표기한 발음과 초성, 중성, 종성 모두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어의 발음 중 종성의 발음은 ㄴ, ㅇ, ㄹ만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설문해자에서 표기한 한자의 발음 중에서 종성에 해당하는 발음과 일치한다고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게 되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음의 편리성으로 인하여 간소화하는 경향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래의 한자(漢字) 발음은 종성이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 되고, 지금의 중국어 발음은 간소화 한 것이 된다. 이리하여, 허신의 설문해자에서 표기하는 소위 한자(漢字)의 발음은 우리 한국어에서 쓰이는 한자의 음독(音讀)이 되는 것으로서, 즉 설문해자는 곧 상형문자를 읽던  우리 한국어의 발음을 적어 놓은 것이 된다.

     

    그런데, 한(漢)나라 시대에 이 설문해자에 표기된 발음이 우리 한국어의 발음이라는 것은 곧 단군조선(檀君朝鮮) 시대의 발음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 신전(神篆:眞書)이나 부예(符隸)라는 상형문자가 있었고, 그 상형문자의 발음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서기전2181년에 소리글자인 가림토(加臨土) 38자를 정립한 사실이 있음을 볼 때, 당연한 것이 된다. 즉, 허신의 설문해자에 기록된 소위 한자의 발음은, 단군조선 시대에 상형문자(象形文字)를 읽던 발음이 되는 것이다.


    나) 단군조선 도전문(刀錢文)과 은(殷) 갑골문(甲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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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

    단군조선의 첨수도와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는 상형문자이면서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이 가능하여 소리글자로 읽히는 글자가 된다. 즉, 첨수도와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는 각 글자마다 발음이 있는 글자인 것이다. 첨수도와 명도전이 자모전(子母錢)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림은 원칙적으로 발음을 가진 글이 아니라 뜻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물론 간단한 그림은 경우에 따라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할 수 있어 소리글자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그림이 간소화 되어 상징화 되면,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 가능한 글자로 변형되는데, 이 단계가 곧 상형문자가 소리글자로 읽히는 단계로서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첨수도와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는 상음문자로서 상형문자가 되는 상형문자, 상형-표음 문자, 표음-상형 문자 등이 된다. 즉, 단군조선의 도전(刀錢)인 첨수도와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는 명백한 글자로서 소리로 읽히는 즉 발음을 가지고 있는 글자가 되는 것이다. 

    은나라의 갑골문은 단적으로 말하면 상형문자이다. 그런데, 그 글자들의 발음은 고연 어떠하였을까? 분명히 어떠한 발음 법칙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서기전3000년경에 이미 정립된 육서법에 의하여 명백한 사실이 된다. 즉, 육서법에 형성(形聲)이라는 법칙이 있어 글자의 소리를 나타내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면, 형성문자가 아닌 글자의 발음은 어떻게 알고 또 읽었을까? 

    바로, 배달나라 시대부터 내려온 발음법칙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그것은 곧 모든 상형문자가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라는 사실이다. 즉, 모든 상형문자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발음을 가지는 글자로서, 상형문자 자체 내에 발음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형문자 내에 소리글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배달나라 시대부터 내려온 모든 상형문자는 이미 자체적으로 발음이 있었던 것인데. 그 발음요소가 곧 자음과 모음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서기전2181년에 38자로 정립된 것이 가림토 38자인 것이 된다. 물론 이 38자 외에 소리를 표현하는 글자가 많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된다. 즉, 가림토 38자는 같거나 유사한 형태를 가진 글자들의 발음을 대표적인 글자로 표기한 것으로서, 곧 여러 형태의 글자에서 공통분모격으로서 정선(精選)된 글자가 되는 것이다.

    은나라 갑골문의 글자를 읽는 방법은 갑골문이 이미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즉, 서기전1766년경에서 서기전1122년경 사이에 사용된 은나라 시대의 문자인 소위 은 갑골문은 각각 그 고유의 발음을 가진 글자인 것이며, 그 읽는 방법은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하여 읽는 방법인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人 이라는 글자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상형문자가 되는데, 이를 가림토식으로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하여 읽는다면, 위에서 아래로 삐진 l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내로 삐친 ㄴ 형태의 글자 모양이 되는데, 이는 바로 “l ㄴ"으로서  “인”이라고 발음 나는 것이 된다.

    물론 모든 글자가 자음과 모음으로 구분하여 읽으면 될 것이나, 그 읽던 발음은 글자의 형태가 바뀌면서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바, 현재 우리가 읽는 소위 한자의 발음은 대체적으로 은 갑골문이나 단군조선의 신전이나 부예를 읽던 소리로서 가림토식으로 자음과 모음으로 읽은 것이 되어 단군조선 시대의 발음이 대부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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