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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 백공종사님의 천부경, 삼일신고 강의


한길 백공종사님의 삼일신고(33)_진리훈 "반망즉진 발대신기 성통공완시"
 알자고    | 2020·03·08 01:06 | 조회 : 128
한길 백공 종사님의 삼일신고 (한밝뫼 제139호에 실린 내용)
-1994년 부산 전포동 배달학당에서 하신 강의를 녹취한 것입니다.-


반망즉진
返妄卽眞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일의화행(一意化行)을 통하여 확연하게 감이 왔을 때, '나'라고 하는 구성체가 허망한 존재라는 것을 아셨을 거예요.
다시 말해 마음, 몸, 생명력, 이 3가지의 원체인 기(氣)가 뜬구름과 같다는 거예요. 
그러나 비록 뜬구름이라 한다지만 현상세계에서는 엄연히 그 실체를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됐을 때 '나'라고 하는 심(心),기(氣), 신(身)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극락? 천국? 지옥? 천당? 삼십삼천? 연옥? 또 다른 형상으로의 윤회?
이러한 얘기들은 2000년 내지 3000년 전에 당시의 그 민족들에게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던 선의의 거짓말들입니다. 한마디로 방편이라고 하지요.
세월이 흘러 그러한 내용들이 종교라는 만들어진 틀의 교리로써 사용되어 온 것입니다. 결국 그 틀 속에 가둬버리는 거예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들로 생각해 봅시다. 아기들이 울거나 보채면 무서운 호랑이가 온다거나 겁먹을 만한 이야기로 울음을 뚝 그치게 하지요. 또 좋아하는 과자나 사탕을 주며 달래는 게 예삿일이었잖아요.
그러나 그 아기가 성장하여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됐을 때 이 방법을 다시 써먹으면 어디 씨알이나 먹히겠어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썩어빠진 씨알들이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어찌보면 분명한 것은 있는 것 같아요. 거짓말들은 결국 언젠가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사후세계는 어떠한 이야기들로도 탄로 나지 않고 증명할 수도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요즘에도 머리를 굴려 생각한 아주 그럴듯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거겠죠.
그런가하면 6000년 전에 배달나라를 세우신 커발한 한웅께서는 분명코 반망즉진(返妄卽眞)이라고 하셨지요. 
여기에서 진(眞)이라는 것은 삼진(三眞)을 말하는 것이며 삼진(三眞)은 성(性), 명(命), 정(精)을 뜻하는 것이죠?

심(心)은 성(性)울 의지하여 세상에 드러났으며,
기(氣)는 명(命)을 의지하여 세상에 드러났으며,
신(身)은 정(精)을 의지하여 세상에 드러났으니, 

죽고 난 다음에는 의지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정상적인 이치 아닌가요?
심기신(心氣身)을 마음과 생기와 몸으로 표현한다면 성명정(性命精)은 성품과 목숨과 정기로 표현하는게 맞지만 좀 더 우리들의 정서와 맞게끔 우리말로 표현해 봅시다.

성(性) = 성품 = 한얼
명(命) = 목숨 = 한알
정(精) = 정기 = 한울

정리를 해보자면, 
우리의 마음은 한얼로 돌아가고, 
우리의 생명은 한알로 돌아가고, 
우리의 몸은 한울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한알과 한얼과 한울을 스스로 체인체득 했느냐? 다시말해 체험을 통해서 확인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그 자리는 체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우리가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심기신(心氣身)이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심기신(心氣身)이 한알과 한얼과 한울의 그림자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체험했을 때, 큰 지혜를 바탕으로 하여금 저절로 모든 원리가 알아져 버린다는 거예요.
더러는 체험을 통해 본성을 보았느니, 한을 보았느니, 절대의 자리를 보았느니 하지만 그렇게 쉽게 얘기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흔히 깨달음이라고 할 때의 체험이라는 것은 허망한 심기신(心氣身)의 마음자리를 보았다는 것이죠. 그로 인해 그냥 본다음(本性)의 자리를 몰록 알아져 버리는 거예요.

여기서 잘못 생각하면 한얼과 한알과 한울이 각각 따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돼버리는데 따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예요. 단지 역할만 다를 뿐이에요. 우리 몸과 마음과 생명력, 즉 심기신(心氣身)이 하나로 되어있는 것과 똑같아요.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이 어디에 있느냐? 저 하늘 끝에 있을까요? 우주 너머에 있을까요? 
한얼과 한알과 한울이 하나인 상태를 우리는 '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을 느리게 부르면 '하나'가 되며 인격화시켜 '님'자를 붙이면 '한님' 또는 '하나님' 이렇게 불리게 되겠지요?
'한'을 뜻하는 다른 이름으로는 '야훼'. '알라', '神', 'GOD', '브라흐만', '天主', '성재', '천조대신', '태주', '순수의식' 등등 수도 없이 많아요.
'한님'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은 어떻게 보면 전혀 엉뚱한 질문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한님'은 '계신다, 안계신다'라는 상대적 개념이 아니거든요.

'한님'은 끝도 없는 우주 속에 꽉 차있는 거예요. 우리가 먹는 음식, 자동차, 집, 등등 안 계신 곳 없이 꽉 차있으니 '있다, 없다'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지요.
만약 우주 전체가 빨간색이라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빨간색이 아니라는 것과 똑같아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는 한알과 한얼과 한울의 하나인 '한'으로 돌아가는 것이랍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여기에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얼음덩어리가 햇빛에 녹으면 얼음은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본래 왔던 물로 가는 게 정상 아닙니까? 얼음이 녹아서 불이 될까요? 바람이 될까요? 메뚜기가 될까요? 개미가 될까요?
물론 몇 천 년 전의 방편들이 아직까지 필요한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럼 그렇게 가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어요. 뭐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대신 우리 학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들 만큼이라도 그러한 착각 속에서 깨어있자 이겁니다.



발대신기
發大神機
이러한 현상들이 이치적으로나마 가슴 가득히 몰입되어  뿜어져 솟구칠 때, 아주 자연스러운 세상의 모습들과 하나되어 번개 튀듯 번쩍이는 것을 여기서는 발대신기(發大神機)라고 표현했어요.
세상의 모습들 중에서 기본적인 것은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살갗을 통해 느끼는 것, 그리고 사랑의 행위를 통해 느껴지는 모든 대상들을 총칭해 얘기하는 거예요.
대체적으로 불꽃이 튀는 순간적인 인연을 시절인연이라 하지만 그 중 가장 많이 인연되어지는 것은 역시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을 통해서 이성과 감성의 뿌리가 하나되어 번쩍하는 거예요.
일의화행(一意化行) 반망즉진(返妄卽眞)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발대신기(發大神機)예요.
그런데 발대신기의 '기(機)'를 '기(氣)'로 써야 한다며 기운을 강조하시는 분들이 꽤 계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여기서의 기(機)라는 것을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신령스러운 기(機)가 발할 수 있는 것은 심기신(心氣身)이 합일된 상태에서 일의화행(一意化行)하여 반망즉진(返妄卽眞) 되었을 때만이 가능한, 들떠있지 않고 차분한 에너지의 분출이라 표현하면 적당하겠습니다.



성통공완시
性通功完是

마침내 성품을 보았다느니, 성품을 통했다느니, 견성을 했다고들 하는데 '눈 떴다'는 차원의 표현은 일단 틀림없겠지요.
그러나 그 사람 나름대로 얻어진 결과는 그 사람의 수행력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다를 수는 있어요. 
그냥 일반적인 우리들 눈으로 어떠한 상태를 보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얼마나 멀리 보고, 얼마나 폭 넓게 보고, 또한 얼마나 깊게 보는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요?
그러나 성품을 통했다고 해서 곧바로 공완(功完)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칼을 만들었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휘둘러서는 안되는 거예요. 허공을 향해 걸맞지도 않은 칼춤을 춰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사람들이 지금까지 계속 성장해 오면서, 특히나 수행자랍시고 공부하는 자들의 독특한 망상하는 습관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두부 자르듯이 싹둑 베어지는게 아니에요. 
본인 스스로 올바르게 체크하지 않으면 얼마만큼 젖어있는지 모릅니다. 여유를 가지고 담담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면 됩니다.
육조혜능(六祖慧能)은 스승을 떠나 조계산에서 15년 이상 때를 기다렸다 하잖아요. 있는 그대로 모든것을 지그시 미세하면서도 깊숙이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 눈으로 보는 것처럼 바라본다는 것은 아니예요. 의식의 눈으로 분별심 없이 그저 그냥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여기서 한 가지, 필히 정신줄 놓지 않고 생각해야 할 포인트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내가 따로 가지고 있는 마음의 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주에 꼭차있는 한얼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볼까요?
한얼은 한의 나툼을 통하여 3.1의 원리로 한알, 한얼, 한울로써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의 에너지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그 에너지를 통하여 현상계가 드러났으며 모든 현상계는 3과 6의 원리로 창조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우리들 몸의 구성은 3의 원리인 몸과 마음과 기운으로 만들어졌으며 만들어진 몸과 마음과 기운은 각기 박혀있는 뿌리들이 6개씩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얼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마음의 뿌리인 6개의 작용과 몸의 뿌리인 6개의 작용과 기운(숨)의 뿌리인 6개의 작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거예요.
특별히 정할 것도 없지만 인연 따라 찰나찰나 만나는 대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의 뿌리인 6가지는 두려움, 기쁨, 슬픔, 싫어함, 탐냄, 성냄을 말합니다.
몸의 뿌리인 6가지는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살갗을 통해 느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짝짓기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행위를 통한 느낌이 라고 하는게 좋을 듯해요.
기운(숨)의 뿌리인 6가지는 2개의 콧구멍과 우리들의 피부에 빼곡히 열려있는 털구멍과 땀구멍을 통해서 숨을 쉬며 느끼는 거예요. 향기로움, 독한 냄새, 더움, 추움, 습함, 메마름(건조)
이 모두를 합치면 18가지이며, 다른 말로 18경계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내 마음이 아닌 한얼의 마음으로 통째로 통찰하며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할 때 어느 날 문득 '한을 통해서 통째로 통한다'라고 문구가 눈앞에서 아른아른 할 거예요.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매일매일 잠을 잤습니다. 자면서 꿈을 한 번도 안 꾸어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나 꿈을 꾸지 않는 날도 많다는 거예요.
간밤에 꿈을 꾸었거나, 안 꾸었거나 그 날 하루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요. 다시 말해 꿈을 꾸어도 그만, 안 꾸어도 그만이라는 거예요. 평생 꿈을 한 번도 안 꾸어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인간에게 왜 꿈을 꾸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인간에게 꿈을 통해 뭔가를 느끼고 깊게 생각해보라고 주는 힌트입니다. 잠에서 깨어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 꿈들이 어렴풋이 아른거리다 그만 지워져버리지요. 
우리는 꿈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꿈 속에는 실제처럼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현실과 똑같이 말입니다. 
우리가 꾸고 있는 꿈은 꿈 속의 꿈이나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 세계도 역시 꿈 속 세상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들의 옛 어른들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했지 않아요?
보통 수행을 해서 달라졌다고 하는 것을 꿈 속에서 깨어났다고들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꿈 속을 벗어났을까요? 더러는 착각을 하고 있어요. 꿈 속을 벗어났다고 말입니다.
아니에요. 꿈 속을 벗어났다한들 역시 꿈 속 세상인 거예요.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대로 꿈 속에 머물러있되 '내가 꿈을 꾸고 있구나'하고 알고 있는 거예요. 
단 하나, 알고서 꿈을 꾸고 있다는 점이 꿈인 줄 모르고 계속 꿈을 꾸고 있는 사람과 다른 거예요. 
꿈 속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의 실체가 있나요? 깨달음 역시 깨달을 대상의 실체가 없는 거예요. 온갖 꿈 속에서 어우적대다 꿈놀음의 착각 속에서 깨어난 상태를 이름하야 '깨달음'이라고 표현할 뿐이지요.
이제는 우리들 모두 내가 만들어 놓은, 내가 꾸어진 꿈 속에서 깨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요?
공완(功完)이라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이라 생각하면 될 거예요. 몸뚱이 인연 다하는 날까지요. 죽는 그 날까지 인연 닿는 데로 산이면 산, 시장이면 시장, 농촌이면 농촌, 바닷가면 바닷가, 도시면 도시…
죽는 그 날까지를 완(完)이라고 하지만 사실 완(完)이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죽고난 다음에도 실물의 그림자를 통해서 법(法)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공덕을 쌓고 있잖아요. 언제까진지도 모르게 말입니다.



( 자연문화회 신불사 _ 313131kkok@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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