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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 역사편 "우리들의 먼 옛일"

조선옛일(朝鮮古史) / 제40대~제54대 천황


제사십대 천황 달음 (재위 십팔년)

원년에 맏태자 음차를 황태자로 봉하다.
진나라 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삼년 윤복지가 도덕경을 저술하여 올리다.
재위 오년에 초나라 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육년에 견융이 와서 항복하다.
재위 십년에 진개가 치국요람을 저술하여 올리다.
재위 이십팔년에 달음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음차가 뒤를 이었다.


제사십일대 천황 음차 (재위 이십년)

원년에 맏태자 을간지를 황태자로 봉하다.
재위 이년에 연나라 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사년에 공상의가 종교론을 저술하여 올리다.
재위 십오년에 한국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이십년에 음차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을간지가 뒤를 이었다.


제사십이대 천황 을간지 (재위 십년)

원년에 맏태자 물리를 황태자로 봉하다. 정나라 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삼년에 철인 이일선이 천리경을 저술하여 올리다.
재위 오년에 백호돈이 지리학과 광물학을 저술하여 올리고 아뢰기를
"우리나라에는 곳곳마다 땅 속에 황금이 있나이다."하더라.
재위 팔년에 천황께서 이일선에게 묻기를 "현재 이웃나라와 교통이 전보다 복잡하니 어떻게 하면 사람을 한번 보고 그 사람이 착한지 악한지를 알아서 원만하게 교재할 수 있겠는고."
이일선이 답하여 아뢰기를 "사람을 알아보기란 하늘을 알기보다 더 어려우나이다. 하늘에는 음, 양 중 바람과 구름의 변화가 있는고로 증험하면 대강 예측할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고로 가히 알기가 어렵사옵니다. 사람의 성품은 각자 변함이 없사오니 상대방의 성품을 가늠하여 살피시면 착오가 없을 것이옵니다." 하더라.
재위 십년에 을간지 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물리가 뒤를 이었다.


제사십삼대 천황 물리 (재위 이십오년)

원년에 맏태자 구물을 황태자로 봉하다. 제나라 대부 전광이 망명하여 입국하다.
재위 이년에 조나라 사람 형필이 무리를 거느리고 오므로 살게 해주다.
재위 사년에 기자조선 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팔년에 장자학이 논리학원본 설명학을 저술하여 올리다.
재위 십오년에 북적이 사자를 보내어 내조하다.
재위 십팔년에 오곡이 풍성하고 정치가 밝으니 인심이 화하고 내외학문이 폭주하여 새로운 사상이 발생되어 분주한 시대가 되다.
재위 이십오년에 물리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구물이 뒤를 이었다.


제사십사대 천황 구물 (재위 사십년)

원년에 맏태자 여루를 황태자로 봉하다.
재위 이년에 정나라 사절이 입조하다.
재위 삼년 사월에 일식이 있었다.
재위 오년에 최화덕이 동물학과 식물학을 저술하여 올리다.
재위 칠년에 위나라 박사 소문경이 입조하다.
재위 십년에 서백원이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사상의학을 저작하여 올리다.
재위 십육년에 국학박사 황운원이 백과서를 저작하여 올리다.
제위 이십일년에 적우순이 심리학을 저작하여 올리다.
재위 이십오년에 홍수로 인하여 농사가 크게 흉년이 들었다.
재위 삼십팔년에 기자조선 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사십년에 구물 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여루가 뒤를 이었다.


제사십오대 천황 여루 (재위 오십오년)

원년에 맏태자 보을을 황태자로 봉하다. 제나라 사절이 내조하다.
장령과 낭난에 성을 쌓았다.
재위 사년에 법령을 개정하여 천하에 분포하니, 이것을 대동 율령이라 하였다.
재위 십년에 단샘이 대묘 앞에 솟아나다.
재위 십이년에 곽대원이 양생론을 저술하여 올리다.
재위 십칠년에 연나라 사람이 변방을 침략하므로 수장 묘장춘을 보내어 토각하다.
재위 십팔년에 온천물이 성남 삼사 들판에 새로 솟아나다.
재위 이십년에 정나라 사람 누경이 누시계를 가지고 입조하다.
재위 이십일년에 기자조선 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이십삼년에 대부례를 대산후로 삼다.
재위 이십오년에 크게 가물어서 풀과 나무가 말라 죽었다.
재위 이십팔년에 장소부가 의학대방을 저작하여 올리다.
재위 삼십년에 홍문선이 대학조문을 저작하여 올리다.
재위 사십년에 조대체가 자본론을 저술하여 올리다.
재위 사십이년에 노나라 학사 소문술이 예기를 가지고 입조하다.
재위 사십오년에 노나라 안사득이 주역을 가지고 입경하다.
재위 사십팔년에 두 개의 해가 나란히 떠있는 듯하더라.
재위 오십년에 북쪽 견융이 내침하거늘 군사를 보내어 토각하다.
재위 오십이년에 천황께서 중화에 행차하시어 열국형세를 살피시고 돌아오시다.
재위 오십오년에 여루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보을이 뒤를 이었다.


제사십육대 천황 보을 (재위 사십육년)

원년에 맏태자 고열가를 황태자로 봉하다.
기자조선사절이 내조하다.
재위 사년에 백두산이 밤새울고 천지의 물이 불어나서 넘쳐 흘렀다.
재위 육년에 혼서경이 내침하거늘 군사를 보내 토각하다.
재위 십년에 오성계가 반역하다가 발각되어 도망가다.
재위 십삼년에 장노술이 아름다운 구슬과 어여쁜 아가씨를 바치니 천황께서 심히 기뻐하시더라.
재위 십오년에 황충이 곡식을 모조리 먹어 버려 크게 흉년이 들었다.
재위 이십년에 정나라 사람 정발이 악기를 가지고 입국하다.
재위 이십삼년에 폭풍이 크게 불어 나무가 꺽이고 집이 무너지다.
재위 이십팔년 사월에 붉은 흑비가 쏟아지다.
재위 삼십년에 국정이 문란하여 정권이 외척 한윤에게 들어가다.
재위 삼십사년에 궁전이 저절로 무너져 내려 죽은 사람이 많았다.
재위 삼십팔년에 도성에 큰불이 일어나서 오십여 호가 다 타 버리다.
재위 사십육년 오월에 역신 한개가 천황을 시해하고 자립하거늘 황태자 고열가가 군사를 거느리고 한개를 잡아 죽인 후 팔월보름에 즉위하여 보을 천황의 뒤를 이었다.


제사십칠대 천황 고열가 (재위 오십팔년)

재위 이년에 천황께서 국정을 직접 맡아 외척의 권력을 삭제하고 어진 이를 등용하고 능력자를 선임하여 국정에 임하시다.
재위 오년에 견흉이 불복하거늘 군사를 보내어 토평하다.
재위 십년에 기자조선 사절이 입조하다.
재위 십육년에 위나라 사절이 입조하다.
재위 이십년에 작물이 풍성하며 고기도 많이 잡혔다.
재위 이십이년에 소정국이 건축학을 저작하여 올리다.
재위 이십오년에 구노선이 종수학을 저작하여 올리다.
재위 삼십일년에 각 처에 신원함을 설치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투서하도록 하다.
재위 사십년에 어사로 하여금 민간에 암행하여 부정한 사건을 밀탐하여 바로 잡았다.
재위 사십오년에 연나라 대부 형운이 망명하여 입국하다.
재위 사십팔년에 보을천황의 묘를 성남에 세우다.
재위 오십팔년에 고열가천황께서 돌아가시니 뒤를 이을 후사가 없으므로 오가에 의하여 공화정치가 이루어지고 황실이 보호되었다.
천황께서 돌아가신 지 육년만에 황실의 종실 해모수가 추대되어 고열가천황의 뒤를 이었다.


제사십팔대 천황 해모수 (재위 삼십칠년)

원년에 맏태자 모수리를 황태자로 봉하다. 이 해 겨울 시월에 공양태모지법을 세워 가르쳤는데, 이것이 태아교육의 시초가 되었다.
재위 삼년에 북막추장 산지객융이 영주를 습격하여 순사 목원등을 죽이고 크게 약탈하여 돌아가다.
재위 십일년에 번조선(기자조선)왕 기비가 죽으므로 왕자 기준을 번조선왕으로 봉하여 대를 잇게 하고 관리를 보내어 병사들을 감독하고 연나라를 경계하는데 더욱 힘쓰도록 명하였다. 연나라 장군 진개가 침략하므로 서쪽 끝의 만번한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
재위 십이년에 백악산 아사달에서 하느님께 제 올리도록 명하시다. 칠월에는 궁궐 삼백예순 여섯간을 새로 짓고 이름을 천안궁이라 하다.
재위 십사년에 창해의 장수 영흥성이 한나라 사람 장량과 함께 박랑사 중에서 진나라왕 정(진시황)을 사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재위 이십삼년에 진승이 진나라왕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므로 진나라가 크게 소란하여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의 백성들이 번조선에 망명하여 귀화하는 자가 수만명이 되므로 상하와 운장에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장군을 보내어 감독하도록 하다.
재위 삼십년에 연나라의 노관이 요동의 고새를 수복했는데 동쪽 경계가 패수였다.
재위 삼십년에 연나라의 노관이 한나라의 반란으로 흉노로 들어가고 그 일파인 위만은 우리에게 망명해 왔으나 천황께서 받아들이지 아니하시었다. 천황께서 병환이 위독한 틈을 타서 번조선왕 기준이 위만을 박사로 예우하고 상하와 운장의 제후로 봉했다. 이해 겨울 해모수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모수리가 뒤를 이었다.


제사십구대 천황 모수리 (재위 이십오년)

원년에 맏태자 고해사를 황태자로 봉하다. 번조선왕 기준이 오래 살던 수유에는 일찌기 은혜로운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위만이 침략하므로 바다로 피난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백성과 제가의 무리가 상장 탁대를 받들어 탁대의 고향인 남쪽 월지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마한이라 하였다. 이때에 변한과 진한의 난민들도 백리 밖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스스로 변한과 진한이라 이름하였는데 모두 마한의 정치를 따랐으며 대를 이어 반역하지 않았다.
재위 이년에 천황께서 상장 연타발을 보내어 난적 위만을 경계하기 위하여 평양에 성책을 만들었다. 위만 역시 소요를 멀리하여 다시는 침략하지 않더라.
재위 삼년에 해성을 평양도에 속하게 하여 천황의 아우 고진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다. 중부여 일부 지역이 모두 따랐으며 군량을 바치다. 겨울 시월에 경향분수에 관한 법을 만들어 서울은 천황께서 친히 방위를 지휘하고 지방은 사방으로 나누어 지키게 하니 윷놀이와 흡사했으며 용의 그림을 보면서 변화를 아는 것 같더라.
재위 이십오년에 모수리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고해사가 뒤를 이었다.


제오십대 천황 고해사 (재위 사십구년)

원년에 맏태자 고우루를 황태자로 봉하다. 정월에 낙랑왕 최숭이 해성에 양곡 삼백석을 바치다. 일찌기 최숭은 낙랑산에서 값진 보물들을 싣고 바다 건너 번한의 도읍지 왕검성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낙랑이라 이름했다. 이때가 해모수천황 마지막해 겨울이었다.
재위 사십이년에 천황께서 직접 보병 일만여 명을 이끌고 남려성에서 위적을 격파하고 관리를 배치하다.
재위 사십구년에 일군국이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바치다. 이 해 구월에 고해사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고우루가 뒤를 이었다.


제오십일대 천황 고우루 (재위 삼십사년)

원년에 아우 해부루를 황태제로 봉하다. 장수를 보내 우거를 치다가 불리하므로 고진을 발탁하여 서압록을 지키고 병력을 증강하여 성책을 많이 세워 우거를 경계토록 하다. 고진의 공로가 크게 인정되므로 고구려후로 봉하다.
재위 삼년에 우거가 대거 침략하므로 아군이 크게 패하고 해성이북 오십리 땅이 모두 적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재위 사년에 장수를 보내 해성을 공략했으나 석달이 지나도 함락하지 못했다.
재위 육년에 천황께서 친히 정예군 오천여 명을 거느리고 해성을 습격하여 격파시키고 추격하여 살수에 이르렀다. 구려하의 동쪽이 모두 항복했다.
재위 칠년에 좌원에 목책을 설치하고 남려에 군대를 배치하여 경계하므로 적에의한 근심이 없었다.
재위 십삼년에 한나라의 유철이 평나에 들어와 우거를 멸하고 사군을 설치하고자 많은 병사로 사방에서 침략했다. 이때에 고두막한이 창의에서 병사를 일으켜 이르는 곳마다 한나라의 침략자들을 격파하였으며 유민들이 사방에서 호응하여 합세하므로 군세를 크게 떨쳤다.
재위 삼십사년에 동명왕 고두막이 사람을 시켜 "나는 천제의 아들로써 장차 그곳에 도읍하려 하니 천황에서 물러나시오."라고 하였다. 고우루천황께서 걱정하시다 병을 얻어 돌아가시니 황태제 해부루가 뒤를 이었다.


제오십이대 천황 해부루 (재위 일년)

원년에 동명왕 고두막이 군사를 이끌고 협박하므로 항복하고 천황의 자리를 고열가 천황의 후손인 동명왕 고두막에게 물려 주었다.


제오십삼대 천황 고두막 (재위 이십육년)

원년에 맏태자 고무서를 황태자로 봉하다.
폐위된 해부루를 분릉의 제후로 봉하여 살게하다.
팔월에 서쪽 앞록강 위에서 한나라 침략자들과 여러차례 싸워 크게 승리하였다.
재위 칠년에 분릉의 제후 해부루가 유화부인을 궁전으로 데려갔는데 오월오일에 카다란 알을 하나 낳았다.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오니 이름을 고주몽이라 지어 불렀다.
재위 이십육년에 고두막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고무서가 뒤를 이었다.


제오십사대 천황 고무서 (재위 이년)

원년에 천황께서 백악산에 부로를 모이게 하여 사례에 따라 하느님께 제를 올릴 것을 약속하니 내외가 크게 기뻐하다. 천황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신령스러운 덕성이 있으시어 능히 말씀으로 바람과 비를 부르는 등 많은 백성을 구휼하므로 민심을 크게 얻어 작은 해모수라고 불리었다.
때에 한나라 침략자들이 요좌에서 두루 소란을 피워 여러 차례 퇴각시켰다.
재위 이년에 천왕께서 졸본천을 돌아보는 길에 흰노루를 얻었다.
겨울 시월에 고무서 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후사가 없어 사위 고주몽이 유명에 따라 대통을 이었으나, 황실과 역신들의 음모로 즉위에 오르지 못하고 졸본으로 피신하다.

고주몽께서 개천 3840년에 졸본을 도읍으로 정하고 나라를 세우시니 이것이 바로 고구려 왕조의 시작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신불천황께서 개천하신 지 삼천팔백사십년 만에 황실의 문이 닫히고 고주몽의 독립된 왕조로 배달나라의 맥이 이어졌다.
고구려는 배달나라의 정통 맥을 이어 본토를 수복하고 찬란한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태평성세를 이루다가 왕조 수립 725년 만인 개천4565년(서기668년) 28대 보장왕 27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침략에 의해 수도 평양성이 함락되고 왕조가 멸망하였다. 이때에 고구려인 대중상이 유민을 이끌고 본토를 중심으로 말갈족 및 소수부족들을 규합하여 개천4565년에 대진국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세워 고구려의 정통맥을 계승하였다. 대중상의 맏태자 대조영이 왕위에 오르면서 나라 이름을 발해라 하고 연호를 천통으로 하여 배달나라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태평성세를 누리다가 왕조 수립 258년 만인 개천 4823년 (서기926년) 15대 애왕 26년에 거란족의 요나라 야율아보기가 쳐들어와 수도 홀안성이 함락되고 왕조가 멸망하였다. 그후 유민들은 본토에서 200여 년간 광복 투쟁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부는 흩어져 살고 일부는 고려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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