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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揆園史話

규원사화揆園史話에 대하여


《규원사화》의 현존하는 판본을 크게 나누면, 본서에서 저본으로 이용한 '국립도서관의 소장본을 뿌리社에서 영인,출판한 것(편의상 '영본'이라 한다)'과 '양주동 소장의 필사본 계열 6종(편의상 '양필본'이라 한다)' 등 두 부류가 있다. 먼저 영본은 조선 중기로 예상되는 시기에 실명씨(고평석님은 북애노인이 직접 쓴 원서라 하였다)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서, 영인시 첨부된 고평석님의 影印後記 내용을 일부 전제하면 다음과 같다.

《규원사화》는 조선조 숙종 2년(을묘, 1675년)에 북애(北崖) 노인이 쓴 우리의 상고사이다. ...... 필자는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규원사화》에 관한 사료적 가치를 조사하다가 이 원전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대할 수 있었다. 이 사서는 다른 고서와 비교해도 매우 오래된 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서지학자이며 국립도서관에서 고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장지연 선생도 확인했듯이 종이의 질과 글씨 그리고 제호를 표지에 바로 쓴 것 등으로 미루어 조선 중기의 것임이 틀림없었다. 틀린 글자 때문에 종이를 버릴 수 없어 그 위에 종이를 오려 붙여 바로잡은 데도 여러 곳 있어 저자의 소박한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
...... 이 사서의 원전을 조사하면서 북애 노인의 깊은 사려에서 비롯된 민족사의 방향 지침을 다시 한번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다.(후략) 다른 하나는 그 뿌리를 양주동님 소장의 필사본에 두는 도합 여섯 종류의 필사본들로서 각 대학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인데, 이상시(李相時)님이《규원사화》의 진서(眞書)임을 여러 자료를 들어 밝혀 놓은 고려원 발간《단군실사에 관한 고증연구》(이 책에는 영본에 대한 언급은 없다)에서 판본의 종류를 밝힌 부분을 일부 전제하면 다음과 같다. 현전하는《규원사화》가 A.D.1920년부터 A.D.1930년 사이에 단군교도들에 의하여 복사 또는 등사되고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하여 인용되어 여러 가지 역사 서적이 출판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A.D.1920년 경에도 민간에 그 사본이 전래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는데, 현전하는《규원사화》의 필사본은 A.D.1940년(단기 4273년, 昭和 15년) 9월에 양주동(梁柱東)이 비장하고 있던 소장본을 손진태(孫晋泰) 가 3본을 필사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광복 후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서울대학교 도서관 및 국립중앙도서관에 각각 1부씩 기증하여 소장하고 있던 중에 고려대학교본은 A.D.1976년에 아세아 문화사에서 영인 발간한 사실이 있고, 서울대학교본은 그 후 없어졌다가 방종현(方鍾鉉)이 소장하고 있던 소장본을 다시 등사하여 동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하고 있으며, 그 밖에 언제 어디에서 누가 필사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권상로(權相老) 소장본을 필사하여 동국대학교에, 이선근(李瑄根) 소장본을 등사하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각각 소장하고 있고, 또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마이크로 필림본 하나를 역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등 도합 6종이 현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6종의 필사본을 비교 대조하여 보면 동국대학교본에서는 '啓發'을 '啓達'로, 고려대학교본에는 '壬儉'을 '王儉' 등으로 잘못 필사한 흔적이 간혹 발견될 수 있을 뿐 그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먼저 영본과 양필본을 비교하여 보면 양필본은 필사된 경로가 확인되는 것과 확인되지 않는 것까지 합쳐 도합 6종으로서 모두 내용이 글자 몇 자를 제외하고는 같다 하였으므로, 원본의 형태를 갖춘 조선 말기 이전의 기록으로 확인되는 영본과는 분명히 별도의 계열이다. 또한 글자 수의 차이에서도 양필본 가운데 서희건(徐熙乾)著《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에 부록으로 인용된 한 필사본(손진태님의 筆寫後記가 실려 있으므로 편의상 '손필본'이라 한다)과 영본을 비교하여 보면, 영본이 총 26,828자(영인시 잘못으로 가려진 듯한 두 글자('遂爲')는 포함하고 제목은 제외)이며, 손필본이 총 26,357자(제목 제외)로 무려 471자의 차이가 나므로 그러한 사실은 더욱 확실하다. 영본은 고평석님이 그 영인 후기에서 저자인 북애노인이 직접 쓴 것(......著者의 소박한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이라 하였다.
그러나 몇 가지 근거로 볼 때 비록 조선 말기 이전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여진 것은 확실하지만 저자 자신이 직접 쓴 '원본'이 아님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로는, 첫째, 필사본인 손필본의 <태시기> 말미에 “乃城於 鹿, 宅於淮岱, 遷徙往來, 號令天下. 盖是時, 中土之人, 徒憑矢石之力...”(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에 자리잡아 옮겨 왕래하면서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다. 대개 이때의 중토 사람들은 단지 화살과 돌의 힘에만 의지할 뿐......)이라 하였는데, 정작 영본에는 그 중 '遷徙往來, 號令天下'의 8자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필사본에 있는 것이 원본에 없을 리 만무하며 더군다나 손필본은 필사하며 무려 500자에 가깝게 빼먹는 등 다소 정성을 들이지 못한 흔적이 역력한데 오히려 한 두자도 아닌 8자를 오히려 첨가되었을 리는 없다.(손필본에는 있으나 영본에는 없는 글자는 군더더기 글자(衍字)를 포함하여 모두 27자이다.) 그 앞뒤 문맥의 내용을 살펴보면 '宅於淮岱'에서 자연스럽게 마무리될 수도 있는 곳이기에 조심성 없는 필사자의 눈에 문맥의 내용이 끊어졌다고 느껴져서 없던 내용을 보완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째, 영본과 손필본을 상호 교감하여 볼 때 비록 손필본의 것은 버리고 영본의 것을 취할 수 있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무려 30곳 정도가 된다는 점이다.(교감의 내용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다→교감표 참조.) 그 가운데 '李茗高者麗','漢書通及典','勿吉傳曰亦','在白頭於山','孟子舜曰生諸馮','責八聖矣之名','北方燥寒之','末流而之弊','政而敎始成' 등 처럼 순서가 바뀌는 실수는 필사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이지만 저자의 입장에서 문맥상 글자의 순서가 바뀌는 실수는 있을 수 없다.
셋째, 글씨의 몇 가지 형태에서 필사하였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영본의 원본은 줄이 쳐진 빈책(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책(空冊)'이다)에 붓으로 쓴 형태로 되어 있는데, 전체에서 16자 정도가 이미 쓰여진 글자 사이에 덧붙여 적어 넣은 작은 글자이다. 몇몇 조사는 글을 적다가 흘렸기에 다시 적었다고 할 수 있지만, '閉','里','惑','侯' 등의 글자는 문맥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글자로서 내용을 재검토하며 보충하여 넣은 조사와는 성격이 틀리는 글자들이다. 그리고 군데군데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실제로 몇 군데는 교감상 틀린 곳으로 밝혀졌다)에는 작은 원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특히 '人事則軀殼'의 부분에서는 '事'(교감상 '死'의 오자이다) 글자 전체를 붓으로 둥글게 표시하여 놓아 틀렸음(즉, 잘못 옮겨 적었음)을 나타낸 듯하다. 글자를 옮겨적는 필사자의 입장이 아닌, 내용을 옮겨적는 저자의 입장이라면 그 문맥에서 '人事'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영본이 북애노인이 직접 쓴 원본이 아님과 동시에 손필본(엄밀히 말해서 양필본類의 필사 저본이 된 양주동 소장본)은 영본이 아닌 제3의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영본에 없는 글자를 손필본에서 27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영본에서 순서를 바꿔 쓴 것(위에서 예를 든 문장들)이 바르게 되어 있으며, 또한 몇몇 글자는 문맥의 내용에 있어 오히려 영본의 내용상 결점을 보완해 주기까지 하는데 '...民物之交特盛'에서의 '交', '...人死則軀殼'에서의 '死', '...曾無一人起於南方'에서의 '起' 등이 그것이다.
본 교감 내용은 이용한 판본이 단지 영본과 손필본 2가지뿐이었기에 더욱 상세한 교감은 하지 못하였다. 보다 많은 자료에 의한 보다 나은 교감 작업에 본 교감내용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본 교감은 영본을 저본으로 하여 손필본과 비교 정정하였다. 두 권의 책 모두 이어 쓰기로 되어 있기에 내용에 따라 끊어 읽고 구두점을 표시하였다. 구두는 현토를 피하고 쉼표와 마침표 및 인명,지명,고유명사에 밑줄을 긋고 서적명에는 꺾음 겹괄호를 그리고 편명에는 꺾음 괄호를 하였다. 그 외의 문장부호는 일반적인 사용법에 준하였다.
동자(同字)도 가능한한 모두 대조 표시하였으나 기록하기 곤란한 약자(略字)는 대조 표시를 생략하였다. 상기 두 판본의 글자에 대한 교감 내용은 영본의 내용이면 모가 진 괄호([ ])를 그리고 손필본의 내용이면 원괄호(( ))를 사용한다는 원칙 아래, 두 판본의 글자가 서로 다른 경우는 버릴 것을 '윗첨자'로 표기하고 취할 것을 정상으로 두었으며, 상대적으로 글자가 탈락된 경우는 탈락되지 않은 판본의 해당 부분만 괄호로 표시하여 두었다. 두 판본 모두 탈락되거나 잘못되었을 경우는 모두 윗첨자로 두고 새로운 글자에는 별표를 하였으며, 교감에 설명이 필요할 경우에는 각주(脚注)로 그 내용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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