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의 정신관



굿


무당이 원시종교적 관념에 의하여 주재하는 새신(賽神) 의식의 총칭을 말한다.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 한국에서는 고대부터 계속되었으며, 유교가 모든 생활규범과 실천윤 리를 지배한 조선시대에도 왕실과 지식 지배층의 내방(內房)에서 행해졌다. 굿의 목적은 병 의 퇴치·초복(招福)·초혼(招魂)·안택(安宅)·기우(祈雨)·진령(鎭靈)·제재(除災)·천신 (薦神)·축귀(逐鬼) 등에 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집안에서 행하며, 계절적인 것은 춘제(春祭)와 추제(秋祭)로 나누며, 그 밖에 임시제(臨時祭)가 있다. 추제 중 대표적인 것은 청수맞이굿[橫數防]이며, 그 밖에 용궁맞이굿[龍宮迎祭]·봄맞이굿[春迎祭]·꽃맞이굿 [花迎祭]·잎맞이굿[葉迎祭] 등의 유희적인 굿도 있다.
10월에 하는 추제는 가장 대표적인 무속에 의한 가제(家祭)로서, 명칭은 지방에 따라 달라 안택굿[安宅祭]·가신도(家神禱)·철기도(祈禱)·지신굿[地神祭]·지신도(地神禱)·터고사· 대감굿·대감놀이·상산(上山)놀이·성주맞이·천궁맞이굿[天宮迎祭]·상굿[床祭] 등이라 하 며, 시기도 지방에 따라 다소 다르다. 임시굿이란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임시로 하는 굿으 로서, 크게 나누어 임신·출산·혼인·환갑 등 길사(吉事)에 행하는 것과 질병·사망·관재 (官災) 등 흉사(凶事)에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굿은 사전에 길일을 택하여 원무당(元巫堂)이 주재하며, 창부무(唱夫巫)와 후전무(後錢巫)는 가무와 예(藝)만을 하고, 기무(技巫)는 장구를, 악수(樂手)는 조수로서 징을 치며, 전악(典樂) 은 퉁소와 해금을 맡아서 의식을 행한다. 제물은 주로 백병(白餠)·과일·당과(糖菓)·유과 (油果)·술·포(脯) 등이 쓰인다.

예를들어 당굿이 있는데 마을 사람이 도당에 모여서 복을 비는 굿을 말한다.
제천의례(祭天儀禮)의 하나로, 산제(山祭)·동제(洞祭)와 더불어 한국 마을제의 기본형이며, 온 마을의 주민이 참가하고 무당이 주관한다.



한민족의 정신관



고사


집을 짓는 과정에 따라 지내는 의례 즉 건축의례(建築儀禮)이다.
흔히 고사라 부른다. 한 가지 일을 매듭짓고 다음 일로 넘어가는 고비에서 잠깐 숨을 돌리 는 휴식의 뜻과, 앞으로 해나갈 일을 다지는 뜻이 들어 있다. 이 때 집주인은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목수나 토역꾼들을 대접한다. 한국의 건축의례에는 날받이, 텃고사[土神祭], 개공 (開工)고사, 모탕고사, 성주운보기, 상량고사, 집들이고사, 성주고사 따위가 있으며, 이 가운 데 손꼽히는 것은 상량고사와 성주고사이다. 상량고사는 기둥 위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 대를 걸 때 올리는 고사로서, 이로써 집의 외형이 갖추어진 셈이므로 목수는 손을 떼고 앞 으로는 토역꾼이 맡아서 벽을 치고 마루를 까는 등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이 고사는 집을 짓는 가장 중요한 고비를 넘긴 일을 자축하는 뜻이 포함되며, 건축의례 가운데 가장 성대히 지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성주고사는 앞으로 집을 지켜줄 성주신을 모시는 의례로서 주인의 나이가 7의 수가 되 는 해 10월 상달에 날을 받아 지내며 무당이 주관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사굿 [告祠굿]

강원도에서 음력 정월 보름부터 4, 5일 동안 행한 의식농악(儀式農樂). 한햇동안의 복을 빌기 위한 연례적인 행사로, 경상도의 지신(地神)밟기, 전라도의 마당밟기 굿과 같은 것이다. 의식은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등을 치는 농악대가 진행하는데, 농악 대는 마을 집집마다 들르면서 집안 곳곳에 복을 빌어준다. 즉, 문전에서는 문전굿, 마당에서 는 황덕굿, 부엌에서는 성주굿, 집 둘레를 돌면서는 지신굿 등 뜻을 지닌 농악을 연주한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2채가락, 3채가락, 4채가락 등의 다양한 가락을 연주한다.
지신굿을 마치고 농악대원들이 마당으로 나오면 주인은 고사반(告祀盤)을 마루에 내놓는데, 고사반에는 쌀 한 그릇과 실 한 타래, 청수(淸水)를 담은 작은 그릇, 약간의 돈을 놓고 촛불 을 밝힌다. 주인이 고사반을 차려 내오면 농악대는 음악을 멈추고 상쇠를 선두로 고사반 앞 에 서서 고사소리를 부르며 고사를 지낸다.




주)출처 미상의 위 본문을 본 사이트의 취지(비영리, 역사 계몽 등)를 감안, 자료의 출처 및 저작자를 부득이 밝히지 못하고 기재한 점에 대하여 글의 저작자에게 깊은 양해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