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밝달나무숲 - 서울 | 경기도 | 강화도



강화도 전등사 입구 삼랑성三朗城



답사 : 단기4338(서기2005)년 10월



강원도에 이어 강화도 역시 나에게 가슴 설레이게 다가오는 곳이다.
마치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듯...
처음 가보지만 결코 낳설지 않은 고향을 찾는 듯...

일정이 바껴 내일 마니산을 들기로 의견을 나누고 오늘은 삼랑성을 찾는다.
삼랑성 역시 단군의 세 아들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동서남북 4개의 문 중에서
삼랑성의 남문


추석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길게 드리운다.
오는 사람들 마다 가족과 함께다.
삼랑성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삼랑성은 석삼(三)에 사내랑(朗),
성곽성(城)의 한자말을 쓰고있는데,
한자 뜻에 담겨있는 말 그대로
세명의 사내가 쌓은 성이다.
세명의 사내는 단군 왕검할아버지의
세 아드님을 말한다.

삼랑성을 알리는 안내문 내용에 의하면..

삼랑성(三朗城)
사적 제130호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41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성안의 전등사는 물론 고려시대에는
가궐(假闕),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1866)양헌수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 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참고로 단군왕검께는 4분의 아드님이
계셨는데,
첫째가 부루(夫婁)이고
둘째가 부소(夫蘇),
셋째가 부우(夫虞),
네째가 부여(夫餘)이다.
첫째 아드님 부루는
한배검 단군의 뒤를 이으신 
2대 단군이신 부루단군이시다.


      삼랑성에 대한 참고문헌이다.

      <단군세기>
      "단군 51년에 단군이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설치하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았다. 그것이 지금의 참성단이다."고 하였다.

      또 박은식의 <상고문화사>에서는
      "강화 마리산 삼랑성(정족산의 잘못된 표기)의 삼랑성은 전설에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 하며, 그 속의 제천단은 단군이 제천하시던 곳이라 하는 바라.
       신라, 고려 때에 삼랑사三郞寺를 지어 삼랑을 숭배하였으니
       이는 곧 신라의 화랑花郞이나 고구려의 선인仙人이나 삼랑에서 연원한 바라 하노라.
       화랑의 별명은 국선國仙이라 하며 선랑仙郞이라 하고 고구려의 조의 별명은 선인이라 한다.
       '삼국유사'에서도 화랑은 신선지사神仙之事라 하였은즉,
       신라의 화랑은 곧 고구려의 조의에서 나온 자요,
       '고구려사'의 '평양자平壤者 선인왕검지택仙人王儉之宅'은 곧 '선사仙史"의 본문이니
       단군이 곧 선인의 시조라.
       선인은 곧 우리의 국교國敎이며, 우리의 무사도이며, 우리 민족의 넋이며, 정신이며,
       우리 국사의 꽃이다."

      참으로 가슴 후련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우리 역사의 시조인 단군문화를 우리 국사의 꽃, 우리의 국교로
      대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고 또 믿는다.


삼랑성 숲길(부소길, 부우길, 부여길)과
전등사 삼성각三聖閣

답사 : 단기4340(서기2007)년 8월


저번 답사는 시간관계로 남문을 답사하는 것으로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시간을 두고 동문을 통해 전등사까지 가 보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식당과 상점들이 있는 골목으로 걸어 오르다 보니
삼랑성 동문이 보인다.
매표소 한쪽 기퉁이에 검은색 개 한마리가 더운 여름날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고놈 참, 오유월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저놈 팔자가 상팔자네...하하."
"나도 한잠 즐겼으면 좋겠다."
사람들 소리에 슬그머니 일어나서는 매표소 뒷쪽으로 어슬렁거리며 가더니
또 다시 낮잠을 즐긴다.






삼랑성의 동문

삼랑성 동문은 남문 처럼 크고 웅장하지가 않다.
동문을 들어오면서 성벽에 문자 같기도한
흔적들이 돌들에 새겨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숲길이 펼쳐진다.

모두들 주변에 설치된 안내판들을 보다가
일행 중 한사람이 격상된 목소리로
모두를 부른다.
모두 문제의 표지판으로 가보았더니
흥미로운 단어들이 보인다.



   삼랑성 숲 탐방로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의 숲은 오랜 역사와 문화가 담겨져 있는
      전통사찰림입니다. 수백년 이상 잘 보존된 숲에서만 볼 수 있는 서어나무, 소나무숲이
      있으며 우리 고유의 자생 들꽃, 야생동물, 곤충 등의 생명들이 함께 하는
      소중한 전통 숲입니다. 자연의 생태계가 최대한 보전될 수 있도록 정해진 탐방로를
      이용하여 숲이 주는 선물을 만나보세요.


      삼랑성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생명들

      1.명상의 숲
        서어나무, 소나무, 참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명상과 오감체험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2.시간의 숲
        전나무, 느티나무에 둘러쌓인 가궐터에서 숲과 사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3.참나무 숲 떡갈, 굴참나무 등 여러 참나무 식구들을 만나 보세요.
      4.휴식의 숲
        소나무, 서어나무로 어우러진 숲에서 휴식하며 숲속 친구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5.조화의 숲
        소나무,참나무,서어나무,쪽동백나무 등이 조화롭게 서있는 숲을 바라보며
        부우길을 거닐어 보세요.
      6.소나무 숲 적송, 리기다소나무, 곰솔 등 여러 소나무들을 만나보세요.
      7.쪽동백과 때죽나무 예쁜 꽃과 쓰임많은 열매를 가진 비슷한 두 나무를 만나보세요.
      8.애기나리 정원 애기나리 식구들이 바닥을 가득히 덮고 있어요.
      9.진달래 피는 언덕 계절에 따라 꽃과 단풍의 예쁜 빛깔을 느껴보세요.
      10.들꽃 가득한 길 며느리밥풀, 까지수염 등 다양한 꽃과 풀들을 만날 수 있어요.
      11.벼과 친구들 강아지풀, 기름새 등의 벼과 식물들이 많아요.
      12.성벽의 고사리 부싯깃고사리, 넉줄고사리 등이 성벽에 붙어 자라고 있어요.

      이상 알림판 내용이었고, 알림판의 내용중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짚고 넘어가려한다.
      맨마지막 줄에 "12번" 성벽의 고사리 중에서 부싯깃고사리라는 단어가 있는데 여기서
      부싯깃은 단군의 2번째 아드님이신 부소에서 유래된 말 같다.
      부소에서 유래된 말로 부싯돌이 있는데 부소돌에서 부싯깃돌, 부싯돌로 변화되어
      사용되었다. 부싯돌은 다들 아시겠지만, 돌 2개를 서로 부딪혀 불을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 돌이 부싯돌이다.더욱 설득력있게 만드는 것이 삼랑, 즉 부소, 부우, 부여를 일컬어 만든
      숲길에서 이같이 부싯깃고사리라 명명한 식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외 단군의 아드님들에게 얽힌 유래된 말들을 더찾아 볼 수가 있다.
      첫째 아드님이신 부루는 풍류, 부루단지의 어원이 되고, 부여는 북부여, 졸본부여,
      백제의 수도 부여,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충남 부여군의 지명인 부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부소는 충남 부여에 있는 부소산과 부소산성, 부소돌, 부싯돌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외 삼랑에서 비롯되어 화랑, 선인, 선비, 국선등의 문화로 역사되어 진다.
      이같이 단군의 아드님들에게서 비롯된 어원들은 백성들이 단군의 네 아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의 눈길을 끌었던 장본인이다.
파란색 표시를 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단군왕검님의 아드님들의 이름을
한 길 표시이다.
그런데 아쉬운점이 있다면 안내판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고, 작은 규격으로
만들어져 자칫 지나치기 쉬웠다는 점이다.

부여,부우,부소길 약 0.7km(40분 소요)라고 쓰여있다.
일행 모두가 또 머리를 맞댄다.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시간을 두고 오긴 했지만
 왔다 갔다 이래저래 2시간이나
 소요됩니다."
"와! 또 즐거운 고민을 해야 되네요."
"여길 갔다 전등사를 들러 나오게 되면
 마니산은 오늘 못가게 됩니다."
"그러면 일정을 하루더 늘려야 됩니다."
"네 그럴 것 같은데요. 마니산을
 올라갔다가 해가 있을때
 하산을 해야지 않겠습니까?
"아 이거참!"
결국 다음 기회를 약속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전등사로 향하던 길에
전통 찻집 입구에 설치된 학 장승이다.


전등사傳燈寺 대웅보전大雄寶殿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鼎足山은 가운데
봉우리와 좌우 두 봉우리를 합해서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세 발솥처럼 생긴 산이라 하여 정족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전등사는 이 세 봉우리로 둘러싸여
움푹 들어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전등사에 들어서 보니 대웅전의 위치가
전등사 정면을 보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옆을 보고 서 있다.
보통 절의 정면에 대웅전이 위치하는데
이곳 전등사는 무엇 때문에 이런 구조로
되어 있을까?
들은 소리로, 이 곳에 삼랑사라는
불사佛寺 들어서기 전에 제천단이
있었을 것이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삼랑성의 중심에
전등사가 있는데 단군의 아드님이
축조하였다는 이곳에, 천제단이 없었다면
이상할 노릇아닌가?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일행이 답사한
날이 칠석날이라 천제단 자리에서
법회를 열고 있었다.

본시 불교의 대웅전은 모두 환웅전을
고쳐 쓴 글이라 한다.
이맥의 <태백일사><신시본기>에 보면
"불상을 처음 한국에 들여와 절을 짓고
대웅전이라 하였다.
이는 스님들이 전례를 답습하여
옛날 그대로 환웅전을 빌려 쓴 말이요,
본래는 승가僧家의 말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이 말은 대웅전의 어원이 환웅전이었다는
말이 된다.
덧붙혀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나 불교가
국교인 나라들에서도 부처님이 모셔진
본당을 한웅전이라 이름하는 나라는 없다.





삼성각三聖閣

전등사에도 제일 윗쪽에 삼성각이 있다.
다른 사찰도 마찬가지이듯 산신각이나
칠성각, 삼신각, 삼성각은 사찰의
제일 윗자리에 위치한다.
그 이유를 추측해 보건데 삼국시대에
처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 땅에는
곳곳에 신을 모신 사당이 지어져 있어
불교의 사찰이 들어설 곳이 없었다고 한다.
속된 말로 절에 모셔진 부처님과 불경만
쏙 빼버리면, 그것이 삼국시대 불교가
들어 오기전의 문화였던 단군문화라는
것이다.
앞에 대웅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산신각이나 칠성각, 삼신각, 삼성각으로
이름하여진 불사 역시 다른 어느 나라의
불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불사다.
불교도 우리 고유의 문화인 단군문화와
융화되어 한국 불교만의 특별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 또한 우리 문화이다.
다만 아쉬운점이 있다면 우리 조상인
한인, 한웅,단군을 보다 직접적이면서
우리 정서가 물씬 풍기게 모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삼성각에 들어서니 아가씨 한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다.
조용히 예를 올리고 모셔진 산신도를
감상하였다.
왼쪽 그림은 한웅님의 모습인 것 같고,
오른쪽 그림은 산신이신 단군님의
모습인듯 하다.

참고로 삼신전의 시초가 된 역사적 근거를
잠시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부루 단군 재위 이십육년에
석자랑이 아뢰기를
"만물이 도에서 나고 도에 들어가며
 도의 근본이 하늘에서 나고
 사람의 근본은 신조에서 났으니
 하늘과 신조는 밀접하여 하늘이 곧
 신조이니 청하옵건대 신조전을 세워서
 백성으로 하여금 경배할 수 있도록 하여
 만고에 근본을 잊지 않는
 도를 삼게 하소서."라고 하니
부루천황께서 "옳다."하시고
천하에 조서를 내려 삼신전을 세워
한인, 한웅과 한검(단군왕검)의 신위를
봉안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경배드리게
하였다.

- 배달전서 우리들의 먼 옛일 중에서 -




삼성각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데
여름볕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벌써부터 마음은 마니산으로 향한다.
발걸음이 더울 것을 생각하니
무겁기도 하고 단군로를 통하여
참성단으로 향한다 생각하니
설레이기도 하다.



마니산으로 향하면서 전등사 제천단이 위치하였던
삼랑사에 부루단군의 말씀을 고이 내려 놓고 간다.

부루단군 재위 삼십팔년에 나함연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해에 남여지에 건너가서 범경빈(바라문교도)을 만나 교리를 듣고
신중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니 진실한 공부인 것 같았습니다.
남여지에 성인이 있어 이치를 밝혀 놓은 듯하오니 사신을 남여지에 보내어
그 도덕과 정치를 살펴서 좋은 점을 본받아 백성에게 전하면
문명발전에 좋은 기회가 될까 하나이다."하니
부루천황께서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도리에 진리는 하나요, 양 점 사이에 직선도 하나라.
나라와 겨레는 서로 다르나 치국평천하의 정도는 오직 하나이니,
짐이 일찌기 선황으로 부터 전해 듣기를
'유정은 오직 하나인고로 그것을 중심 삼음은 바른 것을 잃지 아니함이라' 하시었거늘
하필이면 다른 나라의 도덕과 정치를 살펴서 보태거나 뺄 수가 있으랴.
새와 짐승은 육지에 살고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을 바꾸어 살게 하면
그 형세가 오래가지 못하는지라.
우리 나라로 하여금 다른 나라의 본을 받도록 하면
반드시 오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니라."하시니
모든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더라.

- 배달전서 우리들의 먼 옛 일 중에서 -



      강화도 전등사 입구 삼랑성三朗城 가는 길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김포IC 진출 --> 48번 국도로 강화도 진입 --> 강화시내 진입후
      44번 지방도로 --> 불은면을 지나 길상면의 전등사 삼랑성三朗城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53 <정족산 삼랑성三朗城>

      ※ 편의상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기준으로 가는 길을 설명합니다.



ⓒ www.aljago.com/밝달나무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