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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범곡리 지석묘군



사진촬영 : 단기4341(서기2008)년 2월 알자고닷컴 답사팀
자료 : 원시예술 홈페이지 변광현님의 글 입니다.


대구에서 남쪽으로 국도 911번을 타고 팔조령 (八助嶺)을 넘어가면
화악산 (華岳山, 932m)을 끼고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는 드넓은 계곡이 나온다.
대구에서 약 30여 Km 떨어져 있으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서
이곳의 하천은 밀양을 거쳐 낙동강 하류와 합류하게 된다.

화양(華陽), 청도(淸道)읍이 자리잡고 있는 이 계곡은 주변의 평범한 야산을 압도하면서
동서로 자락을 펼친 화악산 줄기 (청도에서는 남산)와 그 아래 넓게 펼쳐진 완만한
경사면으로 인하여 구릉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들이 마치 거대한 산신령의
품에 안겨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의 모든 자연물이 이 거대한 화악산에서
출발한 듯이 그 위세와 장엄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특하며,
비록 빼어난 미모는 아니라 하더라도 장중한 위엄과 한이 없어 보이는 포근함으로 인하여
이곳의 기원이 남산이나 주변 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초기 이서국 (伊西國)이 자리잡았다고 알려진 이곳에는 산 아래 경사면에
모두 39기의 크고 작은 고인돌이 산재하고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경북 청도군 청도읍 범곡리에 속하며 길 건너편 멀지않은 곳에
청도군청이 들어서 있다. 이곳의 유적들은 크게 세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열석을 1,2 구역, 또한 북서쪽으로 약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또다른 고인돌 5기를
3구역이라 부르겠다. 1,2 구역의 고인돌들은 서로 연결이 가능한 직선상에 놓여져 있으며,
혹시 중간 부분이 파괴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하여 보았지만 현재의 상황이 과거 그대로라는
주민의 증언을 감안하면 서로 거리가 있는 지역에 무리지어 바위를 세워 놓은 셈이다.
그러나 서로 같은 종축과 같은 폭을 보여준다는 점으로 인하여 애초에는
바위로 연결되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청도 범곡리 열석 (淸道 凡谷里 列石)

1구역에는 대략 1 ~ 2m 높이에
너비 2 ~ 3m 정도의 바위 22기를
동남 150도 방향으로 언덕을 가로지르는
이중 열석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열석의 종축은 건너편 산줄기와
강줄기의 방향과도 일치하고 있다.
그 폭은 약 3 ~ 4 미터로서
마치 길 양옆에 나란하게 세워놓은
바위들 처럼 보인다.
또한 이 지역 지표면에서 가장 도톰하게
솟아있는 곳이 돌로 둘러져
직사각형 모양을 형성하고 있는데,
마치 별다른 공간을 구획지어 놓은 듯한
의도적인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곳은 '강화지석묘'의 경우와
너무나도 흡사하고 영국의 '스토운헨지'와도
느낌이 일치하는 지형으로서 넓다란
경사면의 언덕에 이 열석을 배치하였다.
이런 상황은 언덕 위의 무언가를 향하여
길 양옆에 나열된 바위를 통과하는 통로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주어지는데,
현재 주변에 도로공사를 하느라 땅이
파헤쳐지면서 분위기가 매우 산만하여
과거의 환경을 알아내기가 힘들다.

여하튼 이 지역에서 가장 커다란 바위들을
이 1구역에 집중하여 세웠는데,
바위 밑은 막돌이나 깨어진 할석들이
바위를 받치고 있다. 바위 밑에 깔려져 있는
돌들은 토양에 포함되어 있는 자갈 막돌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도로공사하면서
절개하여 놓은 지표가 충적토인 매우 고운
진흙이어서 인위적으로 바위 밑에 할석을
깔아놓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점에 비추어 여기의 바위들은
바위 아래 무덤방이 있을 수 있는
개석식 고인돌의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연속으로 배열된 고인돌 무덤들,
아직 발굴해 본 것이 아니라서
이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최소한
할석을 모아 바위 밑에 깔아 놓았다는
점에서 바위 밑에 최소한의 구조물이
있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로 좁은 간격을 두고
고인돌을 연속으로 배열하였을까?
현재의 미발굴 상태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힘들다.

또한 고인돌로서가 아니라
든든한 받침대로서 할석을 깔았다고도
생각하여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여기의
열석은 고인돌이 아닌 통로이거나
구조물의 벽으로서 생각하여 볼 수 있다.
통로 무덤의 경우, 열석 중간의 통로가
개인이나 집단의 무덤으로서
석실 봉토분의 원조격인 석실의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프랑스나 네덜란드의
통로 무덤(passage grave, gallery grave)
등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양쪽의 열석 사이가
3~4m로서 너무 넓고 열석의 높이가 대략
1~2m로서 벽이나 통로를 만들려하기 보다는
구획을 설정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보인다.
유럽에서의 통로 무덤은 이중 열석 위에
덮개돌이 가로 질러 덮어진 것인데,
그 주변과 위에 자갈과 흙으로 덮어져있으면
장형 봉토분(barrow) 이나
원형 봉토분(tumulus)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1구역의 열석 배치가 두개의
서로 다른 직사각형을 맞붙인 모양으로서
네모난 건물과 복도 기둥의 초석을
연상케 하는데, 기둥을 세우기위한 초석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불규칙한 자연석들이고
그 높이가 제멋대로이어서 대형 건축물의
초석으로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그렇지만 이 바위들을 기본으로 하여
그 사이에 할석을 채우게 되면
벽을 만들 수 있으므로
최소한 어떤 건축물을 위한 바위라고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여하튼 이 바위들이 2열로 놓여진 데는
제의적인 이유든 건축을 위한 초석이든
그나름대로 특별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곳은 고인돌이나 열석 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풍경 속에 흔히 포함되어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산줄기나 언덕에서
떨어져 평야나 경사면에 조그맣고 길죽한
동산이 있으며 그 위에 소나무 숲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풍경은 너무나도 흔해서 우리의
농촌 풍경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모습이지만
이것의 전체적인 윤곽은
유럽의 장형 봉토분(barrow)과 너무나
흡사한 것이다. 여기도 이러한 풍경이
이 열석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열석의 종축과는 직각으로 길죽하게
자리잡은 동산, 게다가 이왕 열석이나
고인돌을 조성하려면 지금의 동산 능선이
더 적합하게 보이는데 동산은 그대로 둔채,
그 옆에 만들어 놓았다.
이런 동산 만큼은 너무도 자연적이고
일반적이라 아예 우리의 시각 속에서
눈에 뜨이지 조차 않는다.
그러나 고인돌이나 오래된 분묘, 또는
돌무지 주변에는 소나무를 심어
신성한 장소로서 보존하여온 우리의 전통이
이곳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소나무 동산을 고분과
연관짓는다는 것이 무리인 줄은 알지만
한번쯤 이에 대한 고려를 해 볼 필요는
분명 있을 것이다.



1구역에서 남동쪽으로 약 50 미터 떨어져
또 하나의 고인돌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1구역에 비하여 소규모의 바위들이 놓여져 있다.
그러나 그 중 하나의 바위는 할석을
밑에 깔고 넓이 2.7m x 2m, 높이 1m의
넓은 바위를 덮어서 전형적인 개석식
고인돌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1구역에 비하여 배치가 산만하지만
어느정도 1구역과 비슷한 이중 열석 배열을
유지하고 있어 1구역과 상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열석 중간에는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2기의
분묘가 들어서 있다.
또한 1구역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여 미터 아래쪽 3구역에는
5기의 바위들이 질서없이 밭뚝 가장자리에
놓여져 있는데, 그 위치와 외형으로 보아
분명 개석식 고인돌일 수 있다.

현재 이 열석의 중간에는 도로를
개설하느라 공사가 진행 중인데,
열석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98년 말에 도로가 완공되면 길의 높이가
현재보다 3m 높아지게 되어 (1)
고인돌 열석의 연구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1997년 6월 작성)
(c) 변광현 1997



안내문에 의하면...

청도 범곡리 지석묘군
경상북도 기념물 제99호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 507-5

범곡리 지석묘군은 청도천 유역에서도
지석묘가 가장 많은 34기가 밀집 분포하는 유적지이다.
이 지역에는 80m 간격을 두고 동쪽으로
22기, 서쪽으로 12기의 지석묘가
남동~북서 방향으로 열을 지어 위치해 있다.
서쪽군과 동쪽군 사이에도 지석묘들이
분포하였으나 개간으로 인하여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지석묘군은 청도 천변에 정착했던
청동기시대의 사람들이 조성한 묘로서
근처에 큰 취락지가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케 해 준다.
이서국(伊西國)을 성립시켰던 기층집단의
총체적 위세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10여년이 지난 2008년의 범곡리 지석묘군은 도로가 열석 중간을 가로질러
차량 통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열석이 도로로 인해 연구가치를 잃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석들의 모습은 아직도 표면상으로는 건재하여 보인다.
이러한 귀한 역사적 자취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뭔가를 시사하는 부분이 크다고 본다.
영국의 스토운헨지의 경우를 보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지고,
다방면으로 연구되고, 학습되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곳 청도 열석 역시 스톤헨지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취급받아야 할 유산이다.

연구적인 가치가 훼손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청도 열석이 이곳에 장구한 시간동안 위치하고 있었던 문화적인 가치는
스톤헨지 보다 더 깊고 크게 숨쉬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도로 개설 이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그 동안의 상황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발굴, 연구가 계속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가져본다.



경상북도 청도군 범곡리 지석묘군 가는 길

신대구 부산간 고속도로 청도IC --> 청도읍내 --> 청도군청 뒤 -->
풍각 방향 20번 국도면 좌,우측에 지석묘군이 산재해 있음.

※ 편의상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기준으로 가는 길을 설명합니다.


ⓒ www.aljago.com/밝달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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