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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망진산 봉수대



진주 망진산에 천제단이 있다고 하여 찾아 나서 보았다.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지 정말 기대가 된다.
망진산에 드는 길은 잘 정돈이 되어 있어 기분이 좋았다.
망진산 꼭대기를 보니 다른 봉화대 처럼 여지없이 TV송신탑이 세워져 있었다.
과거의 통신방식과 현재의 통신방식이 공존하는 곳이고,
하늘과 통하고자는 천제단까지 있다고 하니
망진산 이곳이야말로 사통팔달(四通八達)이라....



시작이자 마지막일 통일의 봉홧불을!

처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시작이자 마지막일 통일의 봉홧불을!

기미년 삼월 일일 우리나라 산봉우리마다
때 맞추어 봉홧불 활활 타올랐네
흰 옷 입은 사람들 가슴에 불을 놓아
삼천리 골골샅샅 독립만세 번져갔네
진주사람 카랑한 정신으로 감연히 일어섰네
겉인들도 기생들도 앞다투어 나섰네

진주를 굽어보며 진주를 지켜 주는
망진산 봉우링에 찰진 햇살 넘치네
진주의 풀, 꽃, 뭇벌레 한데 어우러지고 있네
고시랑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의 속말에는
에나 에나
정신 잘 챙겨서 올곧게 살라 하네
나를 버리고 모두들 세우라 하네

백두산 진달래 한라산 유체꽃 지리산 큰 달맞이
떠돌이 잡동사니 여기 다 모여라
두억시니 몽달이도 나오너라
우리함께 봉홧불을 지피자
한때는 짝사랑, 그리움도 되었다가
지금은 전부요 숫제 통곡인
통일의 봉홧불을 지펴 올리자
사람은 사람끼리 살부비고 살아가게
살아서 끝끝내 꽃 치우는 우리의 역사
시작하자 마지막일 한 나라에 이르는
망진산 통일맞이 봉홧불을...




드디어 봉화대가 우리를 맞이한다.

마치 천제단인듯
태백산의 천제단과 마리산 천부단을 합하여
놓은 듯한 모습이다.
천제단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천제단의 모습처럼 위엄있는 모습이다.
하늘과 통하고자 하는 것이
딱히 정한곳이 있으랴...
하늘과 잘 통할 수 있는 곳이면 천제단인 것을...
그러한 의미에서 이곳 망진산 봉화대는
천제단이었을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망진산 봉수대의 약사(略史)

가야인의 숨결이 서린 땅, 수많은 성이
흙단처럼 무너져 내리던 임란에
진주성의 횃불은 꺼질 줄 몰라 온 조선을
공그어 받치던 곳이었어라.
그러나 뉘 알았으랴. 나약한 왕권아래
외침을 알리던 진주의 망진산 봉수대 불
꺼지고, 일제의 병탄아래 봉수대 깡그리
무너지고, 못난 정치의 시대 전도된
역사의식은 망진산 봉수대를 역사의 뒤뜰에다
매몰시킨 채 망각의 세월이 어언 100년을
헤아리게 될 줄이야.
그래도 진주는 역시 진주 아니던가,
한줄기 맑은 샘물처럼,
한줄기 맑은 바람처럼,
한 줄기 밝은 햇살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어
건너 뛴 세월의 뒤안에 파묻힌 망진산 봉수대의
역사적 사실을 파내어 흙을 털고 때를 벗기어
이곳에 다시 세우게 되었으니
망진산 봉수대의 그 역사와 복원의 과정을
여기 적는다.

~중간생략~
아래 "망진산 봉수대에 관하여"내용 참조


망진산 봉수대 복원이 갖는 의미는
우리 진주 사람들의 올바른 역사의식을
달구어 벼르는 일이며, 새로운 진주의 역사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또 애초에 망진산 봉수대 복원은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고 이루어진 것이므로
백두산 돌과 한라산 돌, 지리산 돌, 독도의 돌,
진주의 월아산 돌을 모아 기단에 심었고,
금강산 돌은 통일이 되는 그날 가져다 심기로
하였다.
그러므로 망진산 봉수대는 우리 진주사람들의
통일 염원을 담은 소도이며,
역사인식의 가늠대이며,
문화사랑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마침내 하늘에 제를 올리고...

하늘이시여!!
한민족의 후손들이 민족통일을 이루는
일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세상에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법이 두루 퍼져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기원하고 기원합니다.


진주시내를 휘감고 도는 남강...

제를 올리고 내려다 본 남강에는
적장을 끌어안고 뛰어든 논개의 혼이
녹아있는 듯하다.
임진왜란 때 무수히 죽어간 진주민들의
피가 흐르는 듯하다.
동학농민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삼일 만세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 그런지 오늘 남강의 강물은
찐하게 우리 역사를 비추며 흐른다.
외치고 싶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하겠습니다.



망진산 봉수대에 관하여..

일반적으로는 봉수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시대 부터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조 세종 4년(1422년)에는 봉수제도가 정비되어
5등급, 5개의 직봉노선을 거쳐 한양의 목멱산(남산)으로 연결시켜 운용하였다.
진주의 망진산 봉수대는 조선시대에 돌과 흙을 섞어서 만들어진 것으로
위에 말한 5개 직봉노선 가운데 <동래 다대포진에서 목멱산에 이르는
제2노선의 보조노선(간봉)으로서 남해 금산-사천 안점의 봉수를 받아
진주시 명석면 광제산 봉수대로 이어 주는 곳이다.
그러나 1895년 전국의 봉수제를 폐지하면서 망진산 봉수대도 기능을 잃었으나
1894년 동학농민항쟁과 1919년 3.1만세운동을 벌일때
망진산 봉수대를 사용한 것으로 전하며, 그 뒤 일제는 전국의 봉수대를
파괴하거나 훼손하여 역사적 사실을 파묻었고, 우리 민족 또한 망각의 세월을 살았다.
그러다가 광복 50년인 1995년 통일기원 전국봉화제의 일환으로 진주문화사랑모임을 비롯한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망진산 봉화제를 올렸고, 다시 망진산 봉숟대를 복원하기 위한
시민운동을 펼쳐 봉수대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2천여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6천5백여만원(1구좌 5천원)의 성금을 모았으며, 문화재전문위원들의 감수와 검증을 거쳐
봉수대 모형을 확정지어 다시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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