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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안화리 암각화



답사 : 단기4346(서기2013)년 8월

이번 답사는 문자에 방향을 맞추어 답사계획을 세우다보니
답사의 폭이 상당히 넓음을 절감하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한글이 있기까지 바탕이 되었던
문자들이기에 더더욱 연구가치가 큰 것인데,
국내 연구가 너무나 미진하여 아쉬움이 크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길을 찾다보니
강가에 더위를 피해 나들이 나온 가족이
물고기를 잡으며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강가를 따라 한참을 달렸을까...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강가에 공사가 한창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한 자료를
참고로 올린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雙林面)
안화리(安和里)에 있는 바위그림.
-고령 안화리 암각화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경북기념물 제92호
-지정일 : 1993년 11월 30일
-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산 1
-종류/분류 : 석조문화재
-크기 : 면적 99㎡, 가로 115cm, 세로 90cm

1993년 11월 30일 경상북도기념물 제92호로
지정되었다. 선사인들이 가로115㎝ 세로90㎝의
퇴적 변성암면에 쪼기 수법으로 새긴 3개의
바위그림이다. 기본형은 위쪽에 U자형 반원을
새기고 좌우에 활모양의 선을 대칭으로 새겼으며,
오른쪽 그림에는 성혈(性穴)을 대칭으로 새겼다.
위쪽 절벽에도 같은 종류의 바위그림이 두세 개 더 있다.
안화리 암각화는 고령 양전동 암각화 및
영일 칠포리(七浦里) 암각화와 수법이
유사한 점으로 보아 선사시대 이 지방의
해안인과 내륙인의 의식구조가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살던 선사인들이 신앙과 관련된 제의나
풍요다산을 기원하던 장소였기 때문에
그와 관계되는 내용을 암벽에 새긴 것으로 본다.
이 암각화는 선사인의 의식과 표현기법,
신앙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령 안화리 암각화[高靈安和里岩刻畵]
(두산백과)





기타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령안화리암각화[ 高靈安和里岩刻畵 ]


-유형유적 : 시대선사/청동기
-성격 : 암각화
-건립시기·연도 : 청동기시대
-규모: (면적)99㎡
-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산1

경상북도 기념물 제92호. 양전리 암각화에서 회천의 지류인 안림천의 상류쪽으로
3㎞ 올라간 강가 구릉 하단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현재는 유적의 바로 앞에 인공제방이 있으나 이 제방이 없을 때에는
유적 바로 앞으로 강이 흘렀을 것이다.
암각화의 내용은 양전동 유적에 비해 작은 편이며, 형태는 양전동의 얼굴그림과
유사하지만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얼굴그림의 양 옆에는 머리털 또는 광선같은 짧은 선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짧은 선 전체를 생략해버렸다.
어떤 것은 그림 내부에 연화문과 흡사한 원형 도형이 중복되어 있다.
안화리암각화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어지는데 1지구에서 가로 한 줄로 배치된
네 개의 얼굴그림이 확인되었고 1지구의 3m 위쪽에 있는 2지구에서는
모두 10개 이상의 얼굴도형이 확인되었다.
도형은 이마부분 중간을 U자 또는 V자형으로 처리하고 일부는 이마 위쪽으로
머리털 같은 짧은 선을 넣었으며, 도형 내부는 세로선 또는 가로선으로 분할하여
그 사이에 원형 홈을 파기도 하였다.
이는 모두 양전동 얼굴 그림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새기는 방법은 모두 쪼으기로 되어 있으며 대체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 안화리 암각화 답사지를 뒤로 하면서
하루 빨리 중국문화의 기반이 아닌 우리의 문화와 올바른 역사관이 바탕된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본 문자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한글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입증하는데
빙산의 일각임을 자각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책임감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경북 고령군 안화리 암각화 가는 길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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