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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일 칠포리 암각화



답사 : 단기4346(서기2013)년 8월

암각화 답사의 마지막 코스로 영일 칠포리로 향한다.
지금 찾아가는 칠포리 암각화는 고등학교 역사책에도 나온다고 한다.
과연 지금 찾아가는 칠포리 암각화는 우리에게 또 어떤 이야기를 할까...?



안내판에 의하면

영일 칠포리 암각화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 201

이 바위그림은 1989년 처음 발견된 이래
1994년까지 추가로 발견되어 그 규모에 있어
한국 최대의 암각화군이다.
곤륜산의 서북쪽 기슭 개울을 끼고 돌출한
깊이 3m, 높이 2m의 사암질 바위면에
새겨져 있는 암각화가 대표적이다.
이 암각화는 아래위가 긴 장방형으로
양쪽면을 곡선으로 표현하였는데,
대체로 위쪽이 아래쪽보다 크게 묘사되어 있다.
이 일대는 성혈이 묘사된 지석묘가 분포한다.
그 중에서 곤륜산에서 해안쪽 500m정도
떨어진 국도를 끼고 길이 2.9m,
폭 1.2m가량의 고인돌의 동쪽면 개석에
윗면이 V자형으로 묘사된 검파형 암각과
삼각형의 화살촉이 각각 1개씩 그려져 있다.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앙의례를 반영한 풍요한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제단으로서의 성격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영일 칠포리 암각화[迎日七浦里岩刻畵]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칠포리에 있는 바위그림.
-지정종목 : 시도유형 문화재
-지정번호 : 경북유형문화재 제249호
-지정일: 1990년 08월 07일
-소장 : 국유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칠포리 201외
-시대 : 청동기시대
-종류/분류 : 석조기타
-크기 : 4,122㎡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49호로 지정되었다.
칠포리 201번지와 334번지 해안도로변, 749번지 등 곤륜산(崑崙山)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암각화이다.
곤륜산 정상에서 흐르는 좁고 깊은 계곡 옆에 돌출된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이곳의 바위그림이 새겨진 바위는 3개소이다. 본래의 위치로 생각되는 곳에 있는 그림은
돌출된 암석 위에 새겨져 있고, 계곡에 떨어진 그림이 새겨진 바윗덩이는 원위치에 있었던 것이
분리된 것으로 생각된다. 전에는 물이 흘렀을 것으로 보이는 터 옆 바닥에 드러난 각화는
암면의 풍토작용 때문에 많이 마모되어 있다. 암석은 굵은 사암(砂岩)이고, 그림은 지상에 돌출된
바윗덩이의 서쪽으로 향한 면에 쪼아 새겼다.
앞쪽에는 평탄한 터가 만들어져 있는데, 제단이나 의식장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각화가 있는
바윗덩이의 크기는 원위치에 있는 것이 폭 3m, 높이 1.8m인데, 이 바윗덩이는 서쪽으로
향한 면에 6개의 같은 모양 그림이 전면(全面)을 채우고 있다. 계곡 아랫쪽에 떨어진 바윗덩이는
폭 1.4m, 높이 2.2m의 크기이며, 역시 서쪽에 2개의 같은 형태의 그림이 있다.
20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바위그림은 작고 완성이 덜된 상태이다. 모두 성혈을 새겨두고 있다.
조각 수법은 쪼아파기(peeking)를 한 선각이며, 전체 형태는 가운데가 좁고 상하가 벌어지는
실패모양의 도안으로, 대전 괴전동에서 출토된 방패형 청동기와도 유사하다. 기본 구도는
영주 가흥리 암각화와 같다. 청동기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할 뿐 내용이나 유래는 확인할 수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일 칠포리 암각화 [迎日七浦里岩刻畵]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영일칠포리암각화[迎日七浦里岩刻畵]


-성격 : 암각화
-소장처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
-제작시기·일시 : 청동기시대
-관리자 : 포항시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문화재 지정일 : 1990년 8월 7일
-정의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암각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칠포리는 흥해읍의 해변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이다.
이 주변의 바다와 인접한 야산 밑에서 모두 네 곳의 암각화 유적이 발견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칠포해수욕장 뒤편의 곤륜산(昆崙山) 서북쪽 기슭에 있으며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대형의 고령 양전리(良田里)식 얼굴 그림이 수직 암벽에
꽉 차게 그려진 주 암면(岩面)에 새겨진 것을 1군이라 한다. 그리고 주 암면에서 골짜기를
건너 지표면에 누워 있는 형태의 바위에 있는 것을 2군이라 한다.
1군은 길이 300㎝, 높이 200㎝ 정도이며, 바위의 윗면에도 그림이 새겨져 있다.
마치 마제석검처럼 보인다. 또 주 암면에서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이는 바윗돌이
골짜기 아래에 있다.
그 바위의 측면에도 같은 형태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2군은 1군에서 개울을 건너
지표면과 거의 같은 높이의 편평한 암면에 새겨진 암각화를 말한다.
1군의 그림은 양전리식 얼굴 그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양 측면의 선을 둥글게 안으로
휘어 들어간 호형(弧形 : 활 모양)으로 처리하였고, 그 아래위를 직선으로 연결하였다.
윗변이 아랫변보다 길다.
내부는 윗변의 중심부에 U자형을 만들고 그 안을 모두 파내었다.
그리고 가로선을 2개에서 5개까지 그어 전체를 3분 또는 많은 경우 6분할하였다.
이 1군 암면의 윗면에는 마제석검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다.
북구 기계면 인비리의 고인돌 개석에 새겨진 마제석검과 매우 흡사하다.
2군은 편평한 바위 윗면에 새겨진 것이다. 일부 그림은 1군의 것과 같은 양전리식 얼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둥글게 옆으로 흘러내린 측면의 암면에는 크기가 아주 작은
양전리식 얼굴과 삼각형이나 타원형의 내부를 세로로 이등분한 그림이 많다.
윗면의 큰 양전리식 인면은 1군의 것보다 가늘게 새겨져 있다.
또 사람들이 다니는 길 위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멸이 심하여
정확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측면의 삼각형과 타원형은 비교적 상태가 좋다.
이 세로 이등분된 삼각형과 타원형은 여성의 성기로 추정되고 있다.
새김법은 갈아 파기로 하였으며 제작 시기는 청동기시대로 추정된다.
이 암각화가 있는 곤륜산은 조선시대에는 고령산(高靈山)이라고 불리었다.
또 전설에는 곤륜산이 고령에서 날아왔다고 하는데, 이곳의 암각화가
고령 양전리 암각화(보물 제605호)와 형태상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흥미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암각화』(한국역사민속학회 편, 한길사, 1996)
『살아있는 신화 바위그림』(정동찬, 혜안, 1996)
「한국 선사시대 암각화의 성격」(임세권,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칠포마을 바위그림』(이하우·한형철, 포철고문화연구회, 1994)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영일칠포리암각화 [迎日七浦里岩刻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번 암각화 답사로 느끼는 부분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참으로 깊고도 너무나 방대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연구해서 정리해야 할 역사가 많다는 것이다.
마치 태산과 같이 높히 쌓여 있는듯 하다.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은데 과연 우리는 이렇게 넋놓고 있어도 되는 일인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지금부터라도 다각도의 연구가 이루어져 올바른 역사와 찬란한 문화적 가치를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영일 칠포리 암각화 가는 길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칠포리 201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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