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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마고할미



답사 : 단기4350(서기2017)년 4월 / 사진 : 손정금님

먼저 이번 답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주는 신녀의 삶을 살고있는 손정금님께서
사진자료를 제공하여 주셨습니다. 사진을 제공하여 주신 손정금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리산 천왕사 천왕할매, 즉 마고할미는 원래는 지리산 천왕봉에 모셔져 있었던 석상이라 한다.
또한 이 석상을 일컬어 신라시대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국가의 수호신인
지리산 산신으로 모신 것이라고도 하고,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威肅王后)라고도 전한다.
이 석상이 주는 의미가 참으로 크다.
박혁거세의 어머니도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도 모두 나라를 세운 태조의 어머니들이니
크나큰 시작을 이루는 의미의 석상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왜 아니그렇겠는가? 세상을 시작한 마고를 상징하는 석상이니
본인들의 세상을 시작한 박혁거세도 태조 왕건도 어머니가 마고와 같은 존재여야했을 것이다.








천왕사에 들어서며…

사진으로 보아도 이른 아침 비가와서 그런지 안개가 끼어 있는 천왕사 접어드는 길이 선계를 들어서는 듯하다.

천왕사에 설치된 안내문에는…
지리산 성모상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4호이 성모상은 상고시대부터 천심사상의 반영인 토속여신으로서 천계와 인간계를 상통하는 지리산 수호신이다.
이에 관한 문헌으로는 동국여지승람과 이능화의 불교통사 등에 기록되어 있다.
사가의 동문선권 68에는 도선(827~899)이 지리산 주인 성모 천왕에 부탁한 기록이 있고 필재 문집 2권에는 김종직이 천왕봉상에 있는 성모묘에 들어가 성모에 날씨의 쾌청을 빌고 또 성모상의 이마에 있는 상처에 대해 문의한 기행문 등은 성모상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원래는 천왕봉상에 있었으나 1970년대에 분실 되었던 것을 1987년에 찾아 천왕사에 모시고 있다.










천왕사 천왕할매

천왕할매의 모습이다.
원래 마고할미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모시고 있었다한다.
이곳 천왕사에 모셔지기까지 천왕할매의 우여곡절은 위의 중앙일보 기사에도 언급된바 대로 원래 천왕봉 양지쪽에 세워진 사당에 안치되어 만인의 숭앙을 받던 석상이 고려말에 자주 침입한 왜구에 의해 훼손되는 첫 수난을 당한다.

지리산을 휩쓸던 왜구 하나가 그 흉폭한 성질을 드러내어 칼을 뽑아서 석상을 후려치니 석상의 귀와 코가 떨어져 나갔고, 이 왜구는 그 길로 홈바위를 향하여 내려오다가 지렴바위에서 피를 토하고 즉사하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 바우를 피바위라고 부른고 있다합니다. 그렇게 훼손된 석상을 그대로 유지하여 오다가 시멘트가 처음 생산되었을 즈음에 진주사람 최씨가 시멘트로 결손부분을 보수한 다음 삼장면에 내원암을 짓고, 불상으로 모시고져 운반하다가 그만 석상의 중간 부분을 부러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에 다시 시멘트로 보수한 뒤에 절에 모셨는데 그 뒤에 흉년이 계속 들자, 산 아래에 있는 주민들이 최씨를 격렬히 성토하여 100여인이 석상을 다시 천왕봉 원위치로 환봉하였고, 그 뒤에 최씨는 비명횡사를 했다고 전하며, 1972년 어느 날 석상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7년 중산리에 살던 혜법스님(성기용)이 계곡에서 몸 부분을, 진주시 비봉산 과수원에서 머리부분을 찾아내 복원한 뒤 이 곳 천왕사에 봉안하고 지금은 매년 음력3월, 10월에 천왕제를 올리고 있다.


자손들 살펴주소서… -()-





















1970년대까지 천왕봉에 있었다는
마고할미와 반야의 석상


1956년9월 故 김근원 선생님의
천왕봉 성모석상 사진이다.






두류산악회에서 천왕사 맞은편에
새로 조성한 천왕할매 석상


이 곳에 따로 석상이 조성되기 까지 일련의 과정을 다룬 중앙일보 기사가 있어 개제한다.

"지리산 천왕 할매석상 소유권 분쟁 마무리"로 2000년 8월 중앙일보 기사에 실린 내용에 의하면,
"천왕할매석상은 원래 지리산 천왕봉 성모사(聖母祠)란 사당에 1천여년동안 안치돼 있었으나 일제말께 갑자기 사라졌다.
주민들은 민중신앙의 상징물을 없애려는 일본사람들이나 특정 종교집단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할매석상은 1987년초 진주의 한 과수원에서 훼손된 채 발견되면서 소유권분쟁에 휘말려든다.
천왕사(중산리)로 옮겨진 이 석상을 두고 두류산악회 등 지역주민들은 원래 있던 천왕봉으로 복귀운동을 벌였고, 국립공원 지리산 관리사무소는 88년말 천왕사측을 횡령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석상을 국립공원공단에 되돌려 주라' 는 가환부조치까지 내렸으나 천왕사측은 "분실시기가 분명치 않아 공소시효가 지났다" 고 주장,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다.
그래도 산악인과 산청군민들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석상을 특정 사찰에 둘 수 없다" 는 여론이 비등하자 국립공원측이 98년초 천왕사를 상대로 소유권 반환소송을 준비했으나 흐지부지된 상태.
천왕할매석상은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등 문헌에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지리산 민중신앙의 상징물. 이 석상 앞에서 전국서 모인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라고 되어있다.

중앙일보 기사를 보아도 오랜 세월 석상은 우리 민족이 겪은 일들을
고스란히 함께 겪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 천왕봉 마고할미

지리산 조망공원에 새로 조성한
천왕봉 마고할미상 이다.

안내문에 의하면…
천왕봉 마고할미 지리산 천왕봉은 옛부터 경배의 대상으로 이곳에 봉안된 천년전 성모상의 영험함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천왕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여기 천왕성모의 또다른 친근한 이름인 마고할미를 모셔서 국태민안의 발원터로 삼고자 한다.


지리산에 얽힌 마고할미에 대해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농협경남지역본부에서 1997년에 발행된 ‘경남의 전설을 찾아서’ 산청군 마고할미편에 의하면,
"마고할미는 지리산의 산신이다. 마고할미의 낭군은 반야봉이라 한다.
이들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하루는 마고할미가 낭군의 옷을 기워 놓고 그리운 낭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고할미가 보니 멀리 낭군과 비슷한 모습이 보였다. 마고할미는 기뻐하며 낭군이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기다려도 낭군은 오지 않았다. 그래 그곳에 가보았더니 그것은 낭군이 아니라 하얗게 핀 쇠별꽃이었다.
마고할미는 몹시 화가 나서 기워둔 낭군의 옷을 갈갈이 찢어 숲 속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그 옷의 찢어진 실오라기가 화석이 되어 버렸다.
이 화석으로 인하여 지리산에 있는 나무는 나뭇가지 마다 흰 실같은 줄이 달려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자기를 속인 흰 쇠별꽃을 다시는 피지 못하게 하여 지금까지 이 근처에는 쇠별꽃이 피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중간에 중화사관이 뒤섞여 전파되던 불교와 이어붙혀져 전해오는 이야기가 오늘의 지리산 마고할미 이야기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여기서 반야는 변화할 수 없는 반석위에 오른 진리, 근원적인 지혜 등을 반야라 할 수 있다.
그런 불교용어인 반야를 마고할미의 낭군으로 설정한 것은 아마도 생명의 근원과 법의 근원이어서가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지리산 천왕봉과 지리산 산내면 천왕사, 그리고 두류산악회에서 천왕사 맞은편에
새롭게 조성한 천왕할매 석상까지…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세 곳의 마고할미 석상, 곧 삼신할미 석상이 지리산 일대에 조성된 것이라 생각해본다.
본디 마고할미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는 생명을 점지해주는 우리나라 삼신할미를 말한다.
그 삼신할미가 상이 3개라서 삼신은 아니지만 이렇게 형태상으로라도 3개를 이루고 있으니
의미를 천왕사에 본래의 마고할미 석상을 天으로, 두류산악회의 천왕할매 석상을 地로,
천왕봉에 새롭게 조성된 성모석상을 人으로 개념지어 의미토록 하는 것도
문화적 가치를 높히는데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자리메김되려면 3군데 관리자들의 화해와 조화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모쪼록 홍익하는 마음으로 전통을 빛내고 한민족의 태초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마음을 모았으면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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