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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국장생석표



답사 : 단기4340(서기2007)년 1월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인 "국장생석표"를 찾아나서 본다.
장승이나 비석, 솟대에 대한 답사는 경험이 여러번 되지만,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라는 타이틀 붙은 비석을 답사한다니 기대가 크다.

답사전에 접한 자료가 있어 함께 게재한다.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 통도사(通度寺) 입구(入口)에서 35번 국도(國道)를 타고
남쪽으로 약간 가다보면 길 왼쪽에 오래된 비석(碑石) 하나가 세워져있다.
이름하여 통도사(通度寺) 국장생(國長생) 석표(石標)라 하는데, 남한(南韓)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비석(碑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의 행정지명(行政地名)은
경상남도(慶尙南道) 양산시(梁山市) 하북면(下北面) 백록리(白鹿里)이다.
장승(長丞)과 장생(長'木+生')은 같은 말로서, 장승 꼭대기에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 올려놓았으며, 과거 조선시대까지는 이와 비슷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과 함께 보통 마을의 경계(境界)와 이수(里數)를
표시(表示)하는 팻말로 세워졌었다.
<자료 출처 : 원시예술 홈페이지>



국장생석표의 주변

목적지에 다달아 보니 기대했던것 보다
실망스러웠다.
어느 개인의 밭인지 밭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비석 옆에는 도로의 차들이 달리고
있는 모습에 비석이 개발의 바람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게 위태해 보인다.

원시예술사이트에서 발췌한 자료에 따르면,
남북으로 길게 일직선(一直線)으로 트여있는 계곡에서
서쪽은 통도사(通度寺)가 자리잡은 취서산
(鷲棲山,1059m)이, 동쪽에는 정족산(鼎足山)을 두고
그 가운데 이 석표(石標)가 자리잡고 있다.
커다란 사암(砂岩) 자연석(自然石)을 약간
다듬어 만든 이 석표의 높이는 1.67m,
폭은 60Cm로서 아래의 둘레는 2.2m이다.
남북으로 향한 옆면에는 철정(鐵釘)으로
거칠게 다듬은 흔적이 남아있으며,
꼭대기에는 무엇인가 매단 흔적으로
생각되는 3개의 파여진 홈이 보인다.
동쪽면 아래에는 총알 자국이 있으며,
서쪽 중앙에는 3개의 깊은 바위구멍(性穴)이 새겨져 있다.
시멘트(cement)로 땜질한 넓적한 돌받침대 위에
남북(南北)을 옆면으로 하고,
넓적한 면을 동서(東西)로 한 이 석표가
세워져 있으며, 5m 동쪽에는 또 다른
조그만 선돌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석표의 동쪽 윗면에는 5~9Cm의
크기로 이두문(吏讀文)으로 알려진
한문(漢文)이 4줄로 새겨져 있으며,
바닥에 깔려진 받침대와 선돌에도
각각 한문(漢文)이 새겨져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통도사 국장생석표
通度寺 國長生石慓

보물 제74호
경남 양산시 하북면

절의 경계를 표시하던 고려시대의 장승이다. 통도사의 기록에 따르면, 사방 산천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12곳에 이러한 장승(장생표)를 세웠다고 전한다.
절의 경계표시인 동시에 땅의 기운을 보충하여 절에 들어오는 액을 막으려했던 고려시대 풍수사상의 단편을 보이고있다.
화강암의 돌기둥에 6~9cm 크기의 글자를 네줄로 새겼는데, 문장에는 이두문의 표기가 섞여 있다.
현재의 높이는 167cm로, 넓이는 60cm 정도이다.
지금의 장생표는 고려시대(1085)에 세워진 것이지만, 다시 세운다는 문장으로 보아 원래는 이 보다 앞선 시대에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장생석표

원시예술사이트에서 발췌한 자료에 따르면,

석표에 쓰여진 내용(內容)은
"통도사 손내천 국장생 일좌(一座)는 절에서
문의(問議)한 바, 상서호부(尙書戶部)에서
을축년(乙丑年) 5월의 통첩(通牒)에 있는
이전의 판결(判決)과 같이 다시 세우게
하므로 이를 세운다."로서 제작연대는
고려(高麗) 선종(宣宗) 2년(A.D. 1085)
으로 알려져있다.
면적(面積)이 47000보(步)가 되는 절을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워진 장생들은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고, 풍수사상(風水思想)에 의한
액(厄)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현재 남아있는 3개 중 하나이다.
1.3m x 80Cm의 크기인 바닥에 깔려진
돌에는 "일주(一主)"라는 글자와 함께
바위구멍(性穴)이 3개 새겨져 있으며,
앞에 세워진 90Cm x 65Cm x 20Cm
크기의 선돌에는 바위구멍 하나와 함께
"추호(追戶)"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닥에 깔려진 돌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고,
이와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선돌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이 받침돌을
포함하여 선돌과 함께 석표 앞에 세워져
입구를 표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즉 이 모든 것이 동서방향으로 넓적한 면을
두고 있어, 지금의 주변상황과는 상당히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있는 셈이다.
현재의 국도(國道)가 새로 개설(開設)되면서
석표의 앞이 뒤로 바뀌어서 국도에서 보면
그저 커다란 선돌만 보일 뿐이다.


우리가 답사한 때는 4340(2007)년
1월이었고, 위 자료의 답사는 1997년
12월이라 기록되어 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주변환경은
많이 바뀐 듯 하지만, 다행으로 비석은
보존되어 우리가 답사할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한반도 곳곳에 단군시대 때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고
우리 생활 속속들이 단군을 느낄수가 있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편이다.
이번 답사 역시 그런 말을 뒷받침 해 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자연과 천손문화가 고이 깃들어 있는 장승이나 고인돌, 신단수, 솟대, 비석 등등
곳곳에서 아직도 우리의 배달문화를 만날 수가 있다.
우리가 관심있게 보지않았을 뿐이지 우리의 곁에서 지난 반만년 동안
이 땅에서 함께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배달겨레의 후손으로서 앞으로 조금더 관심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국장생석표 찾아 가는길

경부 고속도로 통도사IC --> 부산(양산)방향 35번국도 --> 약5km 대로변 좌측

※ 편의상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기준으로 가는 길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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