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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달나무숲 - 대전 | 충청도



대전시 원정림 단묘(檀廟)



단기 4338년 8월 15일!! 광복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이다.
그런 오늘 단군사당을 답사한다는 것에 의미가 더욱 깊게 느껴진다.
오늘 1차 답사길은 대전 정림동에 있는 단군사당이다.
큰 도시에 있는 단군사당이라 생각하니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다른 때와 같이 일행의 눈망울들은 단군사당을 찾느라 밝게 밝게 밝히고서
온 시선이 정림동 원정림을 찾는다.



드디어 단묘 표지판 발견!!

다른 글자는 보이지 않고 "단"자만이
클로즈업되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대전대학교 단묘?
대전대학교와는 무슨 연관 관계일까?



반가운 용어들로 가득한 현수막!

단기4338년 어천대제 및 단군학술제!
현수막에 있는 단어들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움직임이 이곳 뿐만 아니라
한반도 방방곳곳에서 개최되었으면
하는 바램가져 본다.


단묘가 가까와져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시골길을 오다보니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 하나에도 정성됨이 느껴진다.


아!! 단군사당

단군사당으로 통하는 문이 부끄러운듯
나무 사이로 살포시 모습을 나타낸다.



안내문에는...

단군사당은 1958년 정향(靜香)
조병호(趙柄鎬) 선생이
충청남도논산군 두마면 남선리 석가골
(신도안, 현재의 논산시 두마면)에 처음 건립하였다.
그후 1984년 그곳에 군사시설이 들어섬에 따라
정림동 52번지 매봉산 아래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군사당에는 단제(檀帝/檀君)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사당 뒤편으로는 삼신(三神 : 桓因, 桓雄, 桓儉)의
석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단제의 기일(忌日)인
음력3월15일에 어천제(御天祭)를 봉행하고
나라의 개국일인 음력 10월 3일에는
개천제(開天祭)를 봉행하고 있다.
정향 조병호 선생은 1993년 민족의 얼을 드높이는
교육을 위하여 단군사당을 대전대학교에
기증하였고, 대전대학교는 선생의 뜻에 따라
민족사 고취를 위한 현장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단군사당으로 통하는 첫번째 문,
만덕문(萬德門)

성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곳 단묘 역시 2개의 문을 통해야
본당으로 들 수 있었다.
한계단 한계단 정성들여 올라가 본다.


유래비와 우물(檀井)

만덕문을 들어서면 양쪽 옆에
유래비와 단정(檀井)이라 이름한
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제를 올리기 전 이곳 단정에서
정안수를 떠올린 것은 아닐까?
맑은 물을 떠 올리려는 정성됨이
단정이라는 이름에서도 엿보인다.


사당으로 향하는 입구

태극기의 의미를 느낄수 있는 문양이 눈에 띈다.
우리 고대 문양에 대해서는 좀더
심도있게 다뤄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낀다.

사당으로 들어 갈려고 문을 열려하니 문이 잠겨있다.


단묘 전경

지기님의 도움으로 옆의 쪽문을 통해
들어 올 수 있었다.

1958년 조병호(趙柄鎬) 선생이 세운
이 단묘는 우리나라 최초의 단군사당으로
이곳에 옮겨 온지도 꽤 긴 시간이 흘렀는데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사당안으로 들어가 단군께 참배를 올린뒤라 그런지
사당안 이곳 저곳이 눈에 들어온다.
고요히 피어 오르는 향연기...
눈에 익는 천부경과 삼일신고...
그리고 단군 천진...
이곳에 모셔진 단군 천진은 용맹스럽고
기백이 넘쳐 보이고 아주 강인해 보이는
단군이셨다.

할아버지 우리나라 살펴주소서.
홍익인간 이화세계...


사당 뒤로 돌아가 보니...

사당 뒤로 돌아가 보니
환인, 환웅, 단군의 석상이 자리하고 있다.

비석에는...
일대주신환인지위 一大主伸桓因之位
신시씨 환웅왕지위 神市氏桓雄王之位


8월 15일 60주년 광복절날 첫 답사지로 이곳 대전시 단군사당(檀廟)을 찾게 된 것이
의미가 깊다. 더구나 제일 오래된 단묘(檀廟)라니 더욱 그러하다.
일제에 의해 얼마나 많은 탄압을 받았는지 짐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의 단군 탄압은 민족말살정책의 수 많은 계획 중의 1호 계획이였다.
얼마나 철저하게 짓밟았나...지금을 보면 그 잔혹성을 알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거의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 이나마라도 단군의 숨결을 이어오신 모든 조상님께 감사드립니다.
조상님들께서 그러하셨듯 우리도 우리의 후손에게 전하겠습니다.
뿌리를 잃어버린 민족은 바람 앞의 촛불이기에 꺼지게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모진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그 옛날 찬란했던 배달의 횃불을
다시 이 땅에 드높이 세우는데 앞장서겠습니다.



          대전시 원정림길 단묘 가는 길

          대전 남부 순환고속도로 안영IC --> 우회전(약 2km 직전) --> 남대전 전화국사거리 좌회전 -->
          혜천대학 앞을 지나 고개를 넘어 곧장 정림동 방향으로 좌회전 --> 골목길로 개천(갑천) 옆
          아파트 단지까지 내려간 후 --> 우측 갑천을 끼고 500M 정도(괴곡동 방향) 직진 (좌측에
          수미초등학교, 정림중학교) --> 계속 갑천변 따라 직진 --> 원정림이라는 마을 진입호 전봇대에
          (대전대학교 단묘) 방향 표지판 --> 마을 진입 후 산쪽으로 곧장 직진하면 단묘

          ※ 편의상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기준으로 가는 길을 설명합니다.





아래 글은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신상구(辛相龜)님께서 단묘를 다녀오시고 밝달나무숲 자유게시판에 올려주신 글 대전광역시 서구 정림동 단묘의 삼신상 숭배을 편집하여 게재합니다.



대전광역시 서구 정림동 단묘의 삼신상 숭배


정림동 단묘(檀廟)는 대전광역시 서구 정림동(正林洞) 서로1번길 37-22(정림동 52번지) 매봉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이 사당은 원래 남지훈(南之熏, 1918- ) 여사가 계룡산 기도 중에 단군의 현몽을 받고 1958년에 단군의 영정인 천진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남선리 석가골에 주택을 세우고 그 동쪽 산 기슭에 건립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1984년에 군사시설이 그곳에 입지하는 바람에 철거명령이 떨어져 육군본부가 남지훈(南之熏) 선생과 정향(靜香) 조병호(趙柄鎬) 선생의 도움을 받아 정림동의 현재 위치로 이전해 놓았다고 한다.
단묘가 위치한 매봉산 남쪽 기슭은 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인 키 형국인데, 언젠가 풍수지리의 대가인 손석우 선생이 이곳에 와서 보고는 ‘명당’이라고 말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만덕문(萬德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삼문이 위치해 있다. 만덕문 입구 우측에는 정안수를 떠올리기 위해 파놓은 단정(檀井)이란 우물과 1981년 조병호 선셍이 세운 조선시조신성단제(朝鮮始祖神聖檀帝)가 있다.
높은 계단을 올라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단묘가 배치되어 있다. 단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전면에 퇴칸이 배치되어 있다.
단묘 뒤에는 돌로 만든 삼신상(三神像)이 봉안되어 있다. 삼신 즉 1대 주신인 환인(桓因), 2대 주신인 환웅(桓雄), 3대 주신인 환검(檀君)이 묘서져 있다. 여기서 환인은 성(性), 환웅은 명(命), 한검은 정(精)에 해당한다.
삼신상은 조병호 선생 꿈에 환인, 환웅, 환검이 나타난 다음 날 충남 부여의 한 민가에서 10여년 전에 보령 성주에서 옮겨온 것을 다시 이전하였다. 비석에는 일대주신환인지위(一大主神桓因之位), 신시씨환웅지위(神市氏桓雄之位)라고 씌여 있다.
해마다 봄에는 음력 3월 15일에 어천제를, 가을에는 음력 10월 3일에 개천대제를 올리고 있다.
단묘 바로 옆에는 남선리에서 삼성을 정림동으로 모셔와 처음으로 봉안한 사당인 일파(日波)와 서재 겸 교육장으로 쓰이는 정림장(靜林莊)이 자리잡고 있다. 사당인 일파는 전면 3칸 측면 2칸 한옥으로 되어 있고, 정림장은 전면 6칸 측면 3칸 한옥으로 되어 있는데, 일파(日波)란 한자가 추사체로 쓰여 있어 아름답다. 그리고 정림장 좌측 옆에는 기독교를 믿는 대전대 교직원들의 철거 요구로 인해 대전대학교 도서관 뒤에서 옮겨 온 단군상이 모셔저 있다.
단묘는 1993년에 대전대학교에 기증되어 대전대학교에서 이제까지 관리해 왔다. 한 때 관리가 잘 안 되어 단묘 압구에 있는 홍살문이 파손되어 보기가 싫었고, 삼문지붕도 일부 파손되어 비닐로 덮어져 있었으며, 단묘 뒷부분 처마 끝에 올려진 기와가 떨어져 나가 땅에 박혀 있어, 외부 관광객들이 보기에 볼썽사나웠다고 한다. 다행히도 지금은 보수가 되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해마다 관리 및 제례 예산이 줄어들어 운영상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대전광역시가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관리를 잘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3.12.31일 대전대 학생처 직원인 조금상 관리인 증언. 010-8434-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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