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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달나무숲 - 대전 | 충청도



충청남도 서산 와우리 단군전



답사 : 단기4340(서기2007)년 8월


이번에 가는 단군전이 남한에서는 제일 오래 된 단군전이라면서요?
일행 중 한 명이 서산으로 가는 차 속에서 대화의 장을 펼쳐 놓는다.
그래요? 와! 그럼 오늘 정말 귀한 시간이 되겠네요?
그럼 없어지지는 않았을까요?
오래 되었다니 걱정 부터 앞서네요.
이번 답사를 계획한 일행이 운전을 하면서 한마디 거든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제가 인터넷 검색으로 찾게 된 경로가
서산시청에서 단군전의 계단을 설치했다는 자료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직 존재해 있지 않겠어요?
그러면 좋으련만....

서산 일대를 돌면서 모촌을 찾아 돌고 있을 즈음 조수석에 앉아 있는 일행이
"어! 저기 표지판에 와우 단군전이라 써 있는것 아니에요?"
"맞네! 이번에는 그래도 쉽게 찾았네요." "하하하...."
도로변에 푸른색으로 큼지막하게 와우단군전이라 쓰여진 표지판이
위풍 당당히 우리를 반긴다.





와우리 단군전을 알리는 표지판들..

반가운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좌회전해서 들어와 보니, 아주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시골의 여름을 만끽하며 한참을 가다보니
두번째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차량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는
시골길을 한참을 들어오니
세번째 표지판이 보인다.
일행들 모두가 표지판을 하나씩 지나칠 때
마다 기대감이 커지는 모양이다.



와우단군전

단군전이 눈 앞에 펼쳐진다.
오래된 단군전이라 규모가 작을 것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실제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진 단군전은 단군전으로 전혀
모자람이 없는 듯하다.
마을에서 꽤나 신성한 장소로
여기고 있는 것이 단군전 곳곳에서 엿보인다.
꼭 번쩍번쩍 황금칠을 해야 잘 모시는 것인가.
서양 문화에 젖은 이들은 고리타분하고
냄새나는 이까짓 것이 중요하면
얼마나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우리가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이치와 똑 같은 이치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단군성전이나 단군사당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끼니 걱정하며 살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자긍심으로 모셔진 국조에 대한 자부심의
소박한 표현이다.
그 차체가 귀한 것이고 추호도 모자람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라 이름도 대한민국이다.
"크게 밝은 민초들의 나라"
그 말에 마법이라도 걸렸을까?
나라가 위급하면 언제나 백성과 국민들이
일어나나라를 지켜내었다.
홍익인간들이 지켜내고 있는 나라!
그것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만세!


단군전 앞 안내판

안내판에 의하면...
와우리단군전 臥牛里檀君殿
소재지 :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이곳 와우리(臥牛里) 모촌(茅村)마을에
자리잡은 단군전(檀君殿)은 우리나라를
개국(開國)하신 단군성조(檀君聖祖)의
영정을 봉안한 성스러운 전각이다.
조선 순종2년(1908)에 홍암대종사(弘岩大宗師)
나철이 단군 진영(眞影)을 모사하여
전국에 배포할 대 김용학(金容學)선생이
부졸(副卒)이란 관직을 버리고 왜관(倭冠)의
눈을 피해 단군영정을 와우리(모촌부락)로
가지고 내려와 천진궁(天眞宮)이란 집을
짓고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건국신화(建國神話)에
단군은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태어나 (기원전 2333년)
아사달(지금의 평양)에 단군조선(檀君朝鮮)을
건국 이천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그 후 중국의 주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왕에 봉하자 황해도 구월산 장당경으로
옮겨 가셨다가 다시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山神)이 되셨다고 기록되었다.

후반부에 삼국유사에 대한 안내글은
다소 수정을 요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곳이 세워진 연대가 1908년이라니
올해가 1년 모자라는 100년이다.
생(生)하면 멸(滅)하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다.
그러나 세상 영원한 것은 없지만,
발전하여 거듭 태어날 수는 있다.
내년이면 100년을 맞는 와우 단군전이
거듭 발전하여 단군전에 담겨진 정신은
세세토록 빛나길 바란다.



계단을 오르며...

항상 단군께 가는 문을 들어설 때는
기대하는 마음과 평온한 마음이 함께한다.
과연 이번에는 사당 안으로 들어가서
참배를 할 수 있을까?





단군전

대문을 들어서는 것도 일행이 담을 넘어서
들어왔는데, 단군전의 문도 굳게 잠겨져 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찾아오는 이가 많으면 이 곳의 문도 언젠가는
366일 활짝 열려 있으리라.

모두들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문밖에서 예를 갖춘다.
항상 이 순간은 아무런 말이 필요없다.
내 할 도리를 하는 듯하여 이 순간 만큼은
가벼워지고 가슴 뿌듯해 진다.


참배를 마치고 단군전 주변을 살펴 보자니
행사를 위한 장치들도 보이고
교체된 그리 오래되지 않은 현판도 보인다.
마을 주민들의 정성됨이 느껴진다.



잘 보존하시길....

단군전을 나와 다시 한 번 바라 본
와우리단군전의 전경이다.
항상 단군전을 뒤로하고 가자면
아쉬운 마음이 크다.
부디 잘 보존되어 대한민국 국조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킬 수 있기를.....



와우 단군전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에 펼쳐지는 시골풍경을 보고 새삼 떠오르는 생각이다.
단군성전이나 단군사당을 답사다니면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단군성전이나 단군사당이 있는 마을은 왠지 여유롭게 느껴지고 마을이 기름지다는 것을 느낀다.
당산 하나 없는 그런 마을을 접할 때면 그 곳 사람들의 고단함과 마을의 각박함이 느껴진다.
내 느낌이라 취부해 버려도 설명할 도리는 없지만, 물류상감이라 그랬다.
같은 기운은 같은 기운끼리 잡아 당기고 통화여 흐른다는 우주의 섭리를 돌이켜 볼 때
정신적 여유로움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꼭 단군성전이나 당산이 있어야 정신적인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정신적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경우를 보았는가?
단군은 우리 민족의 기억 중에 근원적인 기억이다.
또한 우리 모두 엄마젖을 빨던 아기적 기억을 하고 사는가?
아기적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기는 부모와 통하는 연대감이 있어야 튼튼하게 잘 자란다.
기억상실증 환자가 겪는 공허함에서 오는 고통과
단군사당이나 당산 하나 없는 마을 사람들의 각박함은 같은 이치이다.
반면 부모의 존재를 기억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일깨우며 사는 사람과
단군성전이 있는 마을 사람들의 여유로움 역시 같은 이치이다.
다쓰러져 가는 단군성전이라도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단군을 모시는 일은 단군을 숭배하고 내 영혼을 단군의 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응축하여 말한다면 나를 위한 내 기억의 일깨움이다.



충청남도 서산 와우리 단군전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 --> 32번국도 당진방향으로 조금이동 --> 운산면 647번, 618번
지방도가 겹친 지점을 우회전 이동 --> 618번 국도가 분리된 도로로 약12km이동 -->
609번 지방도와 만나는 삼거리(철탑이 보임) - 609번 지방도로 약 2km 서행 -->
좌측에 와우단군전 표지판 --> 좌측 마을길로 진입 --> 시골길 계속 따라가면서 안내 표지판 -->
와우단군전 넓은 뜰에 도착

※ 편의상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기준으로 가는 길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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