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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달나무숲 - 광주 | 전라도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 석탑군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한 마이산 석탑군은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에 관련된 여러가지 설이 전해져 온다.
세상을 등진 한 기인이 도력으로 쌓은 탑이라고 알려져있으나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사실이 아닌것으로 보인다.
왕권의 상징인 신표로 금척을 얻었던 이성계는 국가를 창업하고
성역화한 곳이 바로 마이산인 것이다.
금척이 무엇인가?
부도지에 이르는 바, 단군시대에서 부터 내려온 천부의 이치를 담은 천권의 상징인 것이다.


멀리 보이는 마이봉

두개의 봉우리중 잘 생기고
기세좋은 봉우리를 숫 마이봉,
약간 둔해보이고 얌전한 봉우리를
암 마이봉으로 부른다.
진안읍에서 마이산안내 간판을 따라가면
이런 모습의 마이산을 쭈욱 감상하게 된다.
계속 올라가면 탑사가 아닌
은수사로 올라가게 된다.
은수사에는 은(銀)처럼 차갑다는
우물물과 이성계가 심었다는
천연기념물 야생 배나무가 있다.


금당사 앞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금당사라는 사찰이 보인다.
온통 금칠을 해놓아 되려 추해 보이는
여러 건물들이 아직도 한참을 공사중이다.
올라가는 길가에서 고기를 굽고 술에 취한
행락객들이 떠들어 대는 것쯤은 어느정도
익숙해진 편이라 참을 만한데,
사찰들의 경제적 부를 추구하는 모습은 웬지
씁슬한 기분이 든다.
내려오는 길에 책(마이산 석탑군의 비밀)을
구입할 결심을 하고 어둑어둑 해가지는 탑사를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마이산의 뒷쪽 모습

탑사 가는길에 금당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에는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식당들이 즐비하다.
마이산의 뒷쪽(말의 뒤통수 쯤되는)의 모습은
약간 기이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함몰되거나
암벽이 손상된 곳이 보인다.
깊이 패인곳은 작은 돌탑무리도 세워져
있다고 한다.

마이산 탑사의 신비스런 모습

이성계의 개국이념이 이곳에 숨겨져있다.
전체의 모습에서보듯 각기 모양이 다른
적석탑들은 천부도의 형상을 나타낸 것이다.
천부경의 원리에 따라 적석을 하다보니
각기 모습과 의미가 다른 것이다.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은
이성계는 이후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마이산 동쪽 은수사 태극전에는
단군 영정과 함께 금척수수도가 걸려있다고 한다.

대웅전 아래의 삼신상

대웅전 밑의 바위틈에는 돌로 된
삼신상이 모셔져 있고 작은 제단도 설치되어 있다.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이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익히 아느바라 더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어느 곳에나 같은 의미로서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불교에서 세상을 위기로 부터 구한다는
미륵을 세분 모셨다고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금강의 발원지 약수

찬란한 백제문명의 시원, 금강의 발원지가 되고
마이산의 식수 공급처이기도한 이 약수물은
매우 시원하기로 유명하다.
풍수지리에서 고려를 겨냥하는 활의 시위부분에
해당하는 중요한 의미의 위치로 이곳이
여러 현인들에게 지목되었던 것을 보면
중요한 우물터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갑룡처사의 사적비와 석탑군

여러가지 도술을 부려 석탑을 쌓았다는
이갑룡처사를 과대 포장한 증거로
이 사적비등을 들수 있다.
이갑룡 혼자서 이 탑들을 조성했다는
어떠한 물증도 없고 과거의 기록을 상당부분
왜곡한 비문등의 허구성은
이미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
오히려 탑사의 주지스님이
이갑룡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이
거짓이 아니라는 쪽이, 어떤식으로든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 옳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이갑용의 석상

많은 사람들이 이갑룡 혼자서 도술을 부려
이 탑을 쌓았다는데 일제 강점기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했음에도 산속에 틀어박혀
썩좋은(?) 도술을 돌 쌓는데에만 허비했다는
사실 부터가 아이러니 하다.
그는 도사도 아니었으며 독립투사도아니었다.
그런데 세계평화를 위한다느니 하는
수식어는 웬지 넌센스다.

천지탑의 위용

천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불교 용어는 아니다.
분명 불교식 정서에 걸맞는 단어는 아닌 것이다.
극락왕생탑도아니고
천지인 육 칠 팔 , 오방탑등의 숫자식은 분명 불교의
석탑 양식과 거리가 있다.

대웅전 앞에 늘어선 신장탑

우리 고유의 양식엔 늘 신장들이 나온다.
단군의 신장은 오가(마가, 저가, 우가..)이며,
무덤을 지키는 신장 사신 (불교의 사천왕 의미)에
이르기까지 늘 보좌의 의미를 가진
신장들이 늘어선다.
권위를 나타내며 신하들의 도열인 것이다.

축소판 천부도를 내려다본다

천지인 의미인 1,2,3숫자에서
5,6,7,8,9...까지 천부경의 의미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성계는 금척에 세겨진 천부경을 도해하여
부도의 모델을 세운 것이다.
불교식 명칭붙은 팻말을 보면
애써 천부경을 지우려한 흔적이 곳곳에 느껴지는 것은
어떤 계산 된 말살 계략인 것으로 보여진다.

산신각에서의 참배

그나마 불교속에서 산식각이
우리의 정신이 남아있는 곳이다.
고열가 단군이 산속으로 들어가셔서
산신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환인할아버지를 모셨다는 설이 대립되나,
나는 후자가 그럴듯하게 들린다.

천지오방탑

천지의 의미는 분명 불교식이 아니다.
음양의 의미이므로 설명이 혼돈 될 수도 있은나
바로 앞의 오방탑은 더욱 불교로서 설명이 어렵다.
천부경에서 5의 의미는 사뭇 깊다.
작은 완성이랄까.
반쯤의 온전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6이 진정한 완성(10)으로가는 새로운 탄생,
혹은 시작이라고 설명된다는 것은
이러한 풀이를 가능케 한다.


석탑군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일행 한사람의 말에 모두들 귀를 기울인다.
조선왕조의 역대왕들이 머리에 쓰던 왕관 즉 익선관은 마이산을 본따 만든 것이고
왕좌의 뒤에 펼쳐진 그림인 일월오악도역시 마이산을 본뜬 것이라 한다.
마이산 탑사 또한 이성계에 의해 비밀리에 금척으로 천부도를 형상화한 것으로
최근 발간된 책(마이산 석탑군의 비밀)에서 밝히고 있다고 했다.
너무도 많은 역사가 숨겨진채 잠을 자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 석탑군 가는 길

중부 고속도로 장수IC --> 진안방면 26번 국도 --> 진안읍내 --> 마이산 입구 삼거리 -->
마령면 (마이산 뒷쪽) --> 석탑사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 편의상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기준으로 가는 길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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