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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달나무숲 - 강원도


남근숭배 문화의 삼척 해신당과 해신당공원



답사 : 단기4346(서기2013)년 6월


이번 여행의 첫 답사 코스로 삼척에 있는 해신당으로 정하였다.
제주에서 해신당을 답사한 경험이 있어 이 곳 삼척에도 어업을 통해 생활해야 하는 바닷가이다 보니
해신당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통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찾아가다 보니 해신당과 함께 공원도 조성해 놓았는지
표지판에 잘 안내되어 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보니 때마침 관광을 왔는지 고속버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해신당 쪽으로 향한다.



남근조각 꾸러미

돌계단을 조금 오르니 재미난 물건이
해신당과 해신당공원을 잇는 다리 아래에
매달려 있다.
입구부터 특별한 환영식을 맞이하고 보니
더욱 기대감이 커진다.


남근 조각 작품

해신당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남근 조각들이
이곳저곳 장승처럼 세워져 있다.
안내판을 보니 1999년 남근조각대회가
열렸었다고 한다.
그 때 작품들이 이곳에 전시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해신당과 남근이 무슨 연관성이 있어
이런 대회를 열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해신당

남근 조각들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사이
해신당이 눈에 들어온다.
참 아담하고 소박하지만 세심한 정성이
깃들어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해신당에 가까이 가서 안을 들여다 보니
여신이 봉안되어 있다.
이제사 모든 의문점이 풀린다.
음과 양의 조화로움 아니겠는가.
참으로 해학과 풍류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해신당에 전하는 전설을 조금 인용을 해보면
옛날 이 마을에 처녀 애랑이와 덕배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애랑이가
바다에 미역을 따러 가려고 하자
덕배가 바위섬까지 애랑이를 태워주고
본인은 돌아와 밭 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만 애랑이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뒤로 바다에서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어느날 한 어부가 화가나서 바다에다
욕을 퍼붓고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어부들은 다른날과 같이
빈 배로 돌아오는데, 오줌을 싼 어부는
만선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 마을사람들은 처녀 애랑이의
시집못간 원한으로인해 재앙을 맞은 것으로
여기고 처녀 애랑신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남근을 깍아 제물과 함께 바쳐서
혼인을 못한 원한을 풀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해신당에 얽힌 전설을 알고나서
해신당을 다시 보니 참 재미나다.
실지로 이곳 해신당에선 해년마다
제를 올리면서 남근을 조각하여
제물과 함께 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보니 해신당에 양쪽 옆 구석에
입구 다리밑에서 보았던 남근조각 꾸러미가
걸려있다.




해신당 주변 풍경

해신당 옆 계단을 이용해서 내려와 보니
바다 풍경이 참으로 절경이다.
6월인데도 꽤나 더운 날씨가
불어오는 바다 바람으로 시원하게 가신다.



해신당 남근조각공원

해신당을 마주보고 있는 남근조각공원에
들어서니 얄궂은 웃음이 흘러나온다.
에그머니나~~
남근조각대회 때 출품된 작품들이라 한다.
작품마다 그 작품명들도 걸작이다.
공원에 전시된 작품들 모두다 작품명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첫번째 사진의 작품명은 다름아닌 힘이다.
작품명이 힘이어서 그런지 힘차게 뻗은 모습이
정말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로호 남근 밑에 있는 작품은
소중함이라는 이름으로 서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검고 커다랗게 중앙 윗부분에 자리한
남근조각은 사진으로 볼 수 없는 기교가
표현되어 있다.
물래방아와 같은 원리가 접목되어 있어
물이 차면 남근이 위로 올라갔다 물이 빠지면
아래로 내려간다.

전시된 작품들 모두 저마다 해학과 풍자하는
의미들이 단순하면서 참 재미나다...ㅎ
관광 온 관광객들이 먼저 구경을 하면서,
이 검은 남근조각을 보고 저마다 농염한
농담들을 쏟아내는데 이 또한 재미나다.
선을 벗어나지 않은 은근한 농담들이라
더더욱 웃음을 자아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이럴때 하나가 되는 것일까.
인간으로 가져야 할 공통된 관심사이고,
인간이면 누구나 부여받은 공통의 신체일부로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공통된 경험이라
그런것일까.
아무튼 생전처음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오랜 친구들 같다.
공통의 주제로 즐겁게 웃고 즐기니 말이다.

사실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몸의 고향은
아버지의 그 곳에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어찌보면 참으로 신성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을 시작하기
이전의 고향이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고향이라
서스럼없이 하나가 되는건 아닌가 싶다.





삼척 바다를 굳건히 지키고 서있는
남근 조각상

이 모든 것이 음양의 천지조화를 알고
그것을 조화와 상생으로서 삶을 지켜나간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생각하면 할 수록 우리 조상들의
천지이치에 대한 깨달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조화와 상생을 통한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족을 이루고 자식으로 미래를
이어가는 것은 소규모 단위의 조화와 상생을
통한 진화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궁극적인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애랑이의 한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최고의 한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으로 우리 선조들의 조화로움은
단연 세계 최고가 아닌가 싶다.
삶과 죽음까지도 조화와 상생의 차원에서
풀어낸 살아있는 증거가 바로 이 곳
해신당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차원 높은 문화가 한낱 저질문화로
퇴색되어 버리지 않고 이렇게 남아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 곳 해신당을 통해서 한가지
바램을 가져본다면 인간으로서 품은
본연의 것들을 어둡고 억압된
피해의식으로 발현된 것이 아닌
아름답고 품위있게 승화시켜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풍류와 해학을
우리 세대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참고로 해신당에 설치된 안내판의 내용을 기재합니다.


남근숭배 문화의 삼척
해신당의 전설

옛날 이 마을에는 장래를 약속한 처녀 애랑이와 총각 덕배가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애랑이가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섬으로 미역을 따러간다 하기에 총각 덕배가 떼배로 애랑이를 바위섬에 데려다주고 덕배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많이불어 해변으로 나와보니 이미 배를 뛰울수가 없을 만큼 강한 바람과 함께 집채같은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처녀 애랑은 살려달라고 덕배를 부르며 애원하다가 안타깝게도 파도에 쓸려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이 바다에서는 고기가 전혀 잡히질 않았으며, 해난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지금까지의 재앙 모두가 바위를 붙잡고 애쓰다죽은 애랑이의 원혼이라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의 뜻을 모아 애랑이가 죽은 동쪽 바위섬을 향해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하여 고사를 지냈으나 고기는 여전히 잡히지를 않고 갈수록 마을과 어부들의 생활은 점점 피폐해져 가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한 어부가 술에 취해 고기가 잡히지 않는데 대한 화풀이로 바다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다른배들은 여전히 빈배인데 그 어부만 만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주민들은 그 어부에게 까닭을 물었고, 어부가 지난 저녁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고 조업을 나갔고 기대한대로 모두들 만선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이 마을에서는 그동안의 재앙이 처녀 애랑이의 원한 때문이라 확실히 믿고 애바위가 보이는 산 끝 자락에 애랑신을 모시고 남근을 깍아 제물과 함께 바쳐서 혼인을 못한 원한을 풀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정월보름과 시월의 오(午)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정월보름에 지내는 제사는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고, 시월오(午)일에 지내는 제사는 동물(12지신)중에서 말의 남근이 가장 크기 때문이며 말(午)의 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1km앞의 저 바다에는 애랑이가 덕배를 애타게 부르다 죽었다는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마을사람들은 "애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도 애랑이는 애바위에서 덕배는 어촌민속관 앞 뜰에서 동상으로 승화되어 사랑을 나누고 있다.




해신당 가는 길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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