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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달나무숲 - 제주도



화북 포구 해신사海神祠



답사 : 단기4340(서기2007)년 7월


비행기에서 내려 제주 공항을 나서는 발걸음이 수학여행 온 10대들 마냥 통통 튄다.
차를 랜트하면서 얻어온 관광잡지를 뒤져기다 순간 눈에 번쩍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해신海神!!
"우리 답사코스에 해신사라는 곳을 넣었던가요?"
"해신사? 아니요."
"해신사라면 용왕신을 모신곳 아닙니까? 지금 바로 가 볼까요?"
"위치가 어디쯤입니까?"
"화북 포구라고 되어 있는데요?"
"OK!! 화북으로 첫 발걸음을 띄어 봅시다."


일행 모두가 제주도 지리를 잘 모르는 터라
우여곡절 끝에 해신사를 찾을 수 있었다.
잡지책에 실린 사진으로 보아서는
꽤 큰 포구로 보였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어촌 마을의 자그마한 포구에 불과하다.
여기 화북포구는 조선시대 때는
제주항 대신 제주시 동쪽 화북 포구와
조천 포구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나 면암 최익현도
이 포구를 통해 제주로 들어왔고,
세한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도
이 포구를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화북포구는 조선시대 제주 제1의
관문이었던 것이라 하는데,
그만큼 왕래가 빈번하였던 곳이고
제주의 요충지였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 보니 해신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비석이 해신사 바로 옆에 세워져 있다.
아마도 지금의 해신사가 있기까지 노력하신
분들의 것이든지, 아니면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한 분들의 것인지도...

해신사 입석

목적지를 다다를 때 마다 그 곳임을 알리는
입석을 보면 항상 기분이 좋다.
애타게 찾던 것을 찾게되었을 때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이러한 입석이기에
반갑기로 따지자면 제일 아니겠는가?

해신사

파란 대문에 태극문양이 엄청 강렬하게 다가온다.
작지만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
이 곳 분들의 정성이 엿보인다.

안내문에 의하면....

해신사(海神祠)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22호
소재지 : 제주시 화북1동
1820년(순조20) 목사 한상묵(韓象默)이
해상을 왕래할 때 안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화북포(禾北浦) 해안에 사당을 짓고
매년 정월 보름 해신제를 지내도록 한 곳이다.
1841년(헌종 7년) 방어사 이원조(李源祚)가
건물을 고쳤고, 1849년 방어사 장인석(張寅碩)이
돌에 "해신지위(海神之位)"라는 신위를 새겨
보존토록 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1975년 부지가 협소하고,
건물이 노후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다.
건물은 1칸이며 지붕은 한식 기와를 입혔다.
지금은 매년 정월 보름과 선박이 출항하기 전에
해신제를 지내어 해상 활동의 안전을 기원한다.






海神之位

해신 앞에서 일행 모두 예를 갖춘다.

매년 정월 보름과 선박이 출항 할 때면 언제나
해신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도 떠나면서 해신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유교를 숭앙하던 추사도 무사히 육지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선 모양이다.
"당연하다.
 9년 가까운 유배생활을 겨우 마쳤는데
 그만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두려울 땐
 공자님 보다 용왕님이 더 낫다."라고
잡지에 글을 쓴 이영권님은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도 위급할 때는 내부모를 본능적으로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공자왈 맹자왈 하던 유교학자라도
살고 죽는 문제 앞에서는 내 나라 내 강산에
뼈를 묻고 살다가신 내 조상을 찾을 수 밖에...



해신사(海神祠) 가는 길

제주시 화북동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 바로 우측
마을길을 따라 옛 포구 쪽으로 접근

※ 편의상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기준으로 가는 길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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