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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달나무숲 - 제주도



제주의 수문장 "돌하르방"



답사 : 단기4340(서기2007)년 7월


제주도라 하면 뭐니뭐니 해도 돌하르방을 떠올리게 된다.
돌하르방은 육지의 장승과 같은 의미로 제주를 지켜왔다.

돌하르방의 원래 이름은 '두루머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돌하르방은 제주 시내의 어린이들이 붙인 이름이고
제주 어른들이 부른 이름이 '두루머리'라는 토속어 였다고 한다.
그 밖에 우석목, 수문장, 수호석 등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돌하르방이 돌로 된 것인데도 '우석목'이란 이름이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었다니,
본래 육지의 장승처럼 나무를 깎아서 만든 목장승의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제주민속박물관 돌하르방


영국 왕실 관광단이 제주도를 다녀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제주도를 다녀간 뒤로 신문 기사가 났는데 기사에 의하면
"제주시 한복판에 관덕정이 있는데 그 앞에 서 있는 돌하르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돌하르방의 눈이 유난히도 크다.
이것은 한국의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 특유의 눈이다.
그것은 제주도 사람들의 눈이 크기 때문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본토인 처럼 북방계 민족이 아니라
남방계 민족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게 눈이 큰 것이다."

돌하르방이 외국인의 눈길을 끈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하겠으나,
제주인의 눈이 돌하르방의 눈처럼 크다는 이유를 들어
제주인을 남방계 이민족으로 본 것은 큰 잘못이었다.
외국인 설을 그대로 따른다면 제주인은 일본 열도에 살던 소수 민족인
아이누의 후예이거나, 하와이의 원주민인 폴리네시안이 되고 마는 것이다.
독도 문제에 덧붙쳐 제주도 까지 일본땅이라는 억지소리를 들을 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해프닝이 어디 돌하르방에 만 속한 일이겠는가.
우리 역사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 일로 인하여 돌하르방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삼성혈 돌하르방

삼성혈에 들어서기 전 돌하르방들이 우리를 반긴다.
좌,우로 나뉘어 서있는 모습이 마치 바깥주인과 안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듯하다.
실제로 돌하르방의 손의 위치에 따라
하르방과 할망으로 구분되어 진다는 일행의 말씀....

그 옆에 안내문에 의하면....

제주도민속자료 제2호
소재지 : 제주도 일원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등으로도 불려지며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졌던 것이다. 현재는 제주대학, 시청, 삼성혈, 관덕정 등 제주시내 21기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12기, 대정읍의 인성, 안성, 보성 12기 등 도합 45기가 있다.
석상의 형태는 대체로 벌거지형 모자,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 큼지막한 주먹코,
꼭 다문 입, 배 위아래로 위엄있게 얹은 두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돌하르방의 크기는 평균 신장의 제주187cm, 성읍 141cm, 대정 134cm 이며,
제작연대는 1754년(영조30)경으로 추측된다.
이 석상은 성문 앞에 세워지며 수호신적(守護神的), 주술종교적(呪術宗敎的),
경계금표적(警戒禁標的) 가능을 지녔듯이,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육지의 장승에 대해 살펴보면
지금 외래 종교인 불사의 문지기 취급을 받고 있는 천하대장군은
본래 우리 단군 신사神祠를 지키고 우리 민족을 수호하는 장군이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을 수호하는 장군이 바로 중원을 석권했던
배달나라 14대 한웅천황 이신 치우蚩尤천황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그 옛날 단군시대를 생각하면 서럽고 분하고 원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군신軍神 치우를 그토록 화나게 만들었는가.
말해 무엇하리.
당연히 지금을 살고 있는 너와 내가 그 장본인 아닐까?


- 자료참조 : 단군문화기행 | 김성수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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