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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 그 역사의 현장 "태백산"



사진자료 : 경남 밀양 대자연홍익문화촌-신불사


개천의 역사적 현장인 태백산의 사진을
경남 밀양 대자연홍익문화촌 "신불사" 한길 백공 종사님께서
제공하여 주셔서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백두산 사진과 함께 1995년 7월에 찍은 사진으로서
10년도 넘은 아주 귀중한 사진자료 입니다.
지금은 중국이 등반을 금지하고 있는 곳이라 찾아가도 가기가 힘든 곳입니다.
1995년에 찍은 이 몇장의 사진 자료는
배달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개천에 대한 귀중한 자료적 증거가 아닐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남길 수 있게 자료를 제공하여 주신
백공종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표지판의 왼쪽의 것은 예전의 것이고, 오른쪽의 것은 나중에 설치된 것이라 한다.
왼쪽의 표지판에 표기 된 내용 중에 "웅거천지 雄踞天地"라는 말이 눈에 들어 온다.
표기 된 글자중에 "雄"자는 한웅을 뜻하는 글자로
한웅께서 거하신 하늘의 연못이라는 말로 풀이 된다.
태백국가삼림공원 太白國家森林公園....이라는 말에서도
태백국가는 한웅께서 개천하시고 세우신 배달나라를 뜻하는 것으로
한민족의 일원이라면 모두다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표지판의 글 한자 한자가 내 부모를 찾은 듯 반가워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래 글은 천산태백 조홍근님의 연구한 자료를(2015.2월) 함께 공유합니다.

始源宏佛 시원굉불
太白春曉 태백춘효

시원인 큰 부처요
태백은 봄의 새벽이라
=> 한웅천왕이 곧 역사를 시작한 큰 부처님이요,
한웅천왕께서 여신 크게 밝은 나라, 태백은 봄날의 새벽과도 같네...

題太白國家森林公園 제목 : 태백국가삼림공원
雄踞天地 웅거천지
奇窮古今 기궁고금
徐山林 壬申 春日서산림 임신 춘일

=> 한웅께서 하늘과 땅에 머물어 계시니
그 기이함은 옛날과 오늘에 다 미치는 구나
쓴이 : 서산림 임신년 어느 봄날


태백산에 기거하며 도를 닦는 도인들의 거처와 내부에 모셔진 신들이다.

태백산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사진의 인물은 자료를 제공하여 주신 한길 백공 종사님이다.

태백산 천지와 소천지의 모습이다. 천지의 규모는 백두산 천지 보다는 작다고 한다.
민족의 거대한 사실이 담긴 사진을 접하면서 어찌 할 말을 잃어버린는 걸까?
비록 사진으로 첫 대면을 하지만, 어떠한 말로도 이 감격을 표현하지는 못 할 것이다.

배달전서에 의하면....

한인 천제의 한나라 말기에 제칠대 지위리 천제께서 삼위 태백을 굽어 보시고
그곳은 가히 홍익인간 할 곳이라 하여 누구를 보냄이 마땅할까 하시니,
오가는 아뢰기를 '천제의 자손 중에 한웅님이 계시온데 그는 어질고,
슬기로우며 용감하여 일찍이 홍익인간 이념으로 세상을 바꿔 놓을 뜻을 품고 있으니
태백산에 보내어 다스리게 함이 좋을 듯하옵니다.'하니,
지위리 천제께서 옳다 하시고 한웅을 불러 천부인 세 개를 내리시며 조칙하여 가로대
"사람과 물건과 일이 이미 갖추어졌으니 그대로 수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가서 개천하고 교를 세워 재세이화로써 홍익인간하여
만세자손의 홍범이 되게 하라.”하시었다.

천제폐하의 명을 받은 한웅께서는 삼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해돋는 동방을 향하여
길을 떠난 지 여러 날 후에 태백산정 신단수 아래 도착하여 도읍을 정하시니
한웅님을 신불이라 하고 임금으로 받들었다.
상원갑자 상달 상날에 태백산정 신단수 아래 천단을 쌓고 하느님께 천제를 올리시니
하늘이 열리고 상서로운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였다.
한웅께서 하느님께 고천하시고 천황에 오르시니 온 백성이 기뻐하며 칭송하였다.
신불 천황께서 삼선 사령을 거느리고 무리 삼천을 한가족으로 삼아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이름을 ‘배달’이라 하시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신불의 나라' 혹은 '신불'이라 하였다.

출처 : 배달전서 우리의 먼 옛일 "배달 옛일" 중에서



태백산 정상의 성전이다.
한길 백공종사님께서 서계신 모습과 비교하여 보면
성전이 크지도 않고 튼튼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다 쓰러져가는 판자집 정도로 보이지만,
세계 어떠한 궁궐 보다 거대하고 귀한 성전이다.

민족의 성지로 관리되어지고 계승되어져야 할 신성한 곳이
시대적 현실의 풍파에 사진 속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더군다나 이제는 가볼수 조차 없다니 통탄 할 노릇이다.
얼빠진 민족의 얼빠진 백성들이여!!!
과연 그대들은 한의 민족인가?


아래 글은 위 사진자료를 천산태백 조홍근님께서 해석한(2015.2월) 부분을 공유합니다.

한단고기 삼성기에 있는 代天宣化...이 말이 서안 태백산 현판에 있다니!
代天宣化 한단고기 삼성기에 있는 代天宣化라는 글귀가 서안 태백산 현판에 있다. 어찌 된 일일까?

...昔有桓國 衆富且庶焉 初桓仁居于天山 得道長生 擧身無病 代天宣化 使人無兵 人皆作力 自無飢寒...
<삼성기, 원동중 찬>

代天宣化는 하늘을 대신하여 베풀어 교화하다라는 뜻이다.

원래는 한국시대 제1대 안파견 한인 천제께서, 하늘을 대신하여 홍익인간 이화세계 하신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서기전3897년 배달나라를 여신 거발한 한웅천왕 또한 지위리 한인 천제로부터 특명을 받아
한국 중앙조정에서 저 먼 天下의 太白의 땅, 박달로 내려오시어 웅족과 호족의 전쟁을 진압하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실현하셨으니, 그대로 代天宣化인 것이다.

개천시조 한웅천왕께서 저 서안의 태백산 아래 신시를 열고 홍익인간 이화세계 하신 역사적 사실은,
치우천왕께서 청구를 회복(恢復)하여 다시 개척하신 역사와 딱 맞물려 떨어진다.

즉, 배달나라 시대의 중심은 서안의 태백산으로 태백산 아래 신시를 열어 교화하고 치화하였으며,
약1,200년이 흐른 뒤에 동쪽 산동지역의 염제신농국이 쇠락하자 치우천왕께서 서기전2700년경
태백의 신시에서 산동의 청구로 수도를 옮기고 서기전2697년에 염제신농국을 먼저 평정한 후,
12제후국을 평정하였으며, 중원의 제후인 유웅국 왕 헌원의 반란을 10년이상 서기전2685년경까지
100여회의 전쟁으로 연패시키니 결국 헌원은 자부선인으로부터 삼황내문경의 가르침을 얻어
치우천왕에게 굴복하여 신하가 되어 천자 중의 천자인 중부의 황제(黃帝)로 봉함을 받았던 것이다.

삼황내문경의 요점은 바로 천지인 삼황(=천황,지황,인황)은 곧 삼신의 대리자이니 제후인 천자는
반역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분명하다.

...蚩尤天王 見炎農之衰 遂抱雄圖 屢起天兵於西 又自索度進兵
據有淮岱之間 及軒侯之立也 直赴탁鹿之野 擒軒轅而臣之...
<삼성기 원동중 찬>

...屢起天兵於西...여러 차례 천병(하늘의 병사:天國의 군대)를 서쪽에서 일으켰다...
...及軒侯之立也 直赴탁鹿之野 擒軒轅而臣之...헌후(헌원 제후:제후인 헌원)가 서자
곧바로 탁록의 들로 달려가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

이때 배달나라의 동쪽 지역은 창힐이 청제(靑帝)이며, 북쪽 지역은 대요가 흑제(黑帝)이며,
서쪽 지역은 소호가 백제(白帝)이며, 남쪽 지역은 축융이 적제(赤帝)로서 각 천자 중의 천자였던 것이다.

*(天, 天神 즉 三神의 대리) 천왕>五帝 : 동서남북중의 최고 천자>일반 제후국 천자

<현판 좌우 작은 글씨>

[岐山薛成兌敬題 代天宣化 岐山高鎭弟子 敬獻]
기산의 설성태가 공경히 제목을 붙이다 대천선화 기산의 고진 제자가 공경히 바치다

여기서 설성태와 고진이라는 제자는 기산에 사는 사람인 듯 한데, 과연 누구일까? 언제 적 글씨일까?
한웅천왕의 태백산 신시 개천 역사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다.
과연 누구? 중국 토박이일까? 아니면 태백산으로 찾아간
한배달조선, 부여삼한, 고신백가, 대진신라, 고려 요 금 원, 조선 청 아니면 현대인?

오래전부터 중국 토박이라면, 이들은 역사의 政亂에도 불구하고
진실의 역사를 지키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일단 기산에 사는 사람인 설성태와 고진이라는 제자이니, 아마도 현판제작 년도를 알면
현판을 쓴 사람들이 어느 시대 사람인지 알게 되는데, 최근은 절대 아닌 것 같고,
동북공정 시작전에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岐山은 주나라 문왕 무왕의 출신지이며, 주나라 시대에는 서융 또는 견융의 근거지이고,
그 이전은 한배달조선의 9족 중의 하나인 백족(白族) 의 근거지이다.
서융은 곧 서이로서 백이 즉 백족이며, 견융은 견이로서 견족! 견족은 황족(黃族)의 일파로서
서쪽의 삼위산을 중심으로 살던 족속이며 서기전3897년경 한웅천왕의 배달 개천시에
삼위산으로 가서 여러 견족의 천자가 된 사람은 반고(盤固)이다.


아래 글은 천산태백 조홍근님께서 위 사진자료를 보시고 해석한(2015.2월) 자료입니다.

雷霆卿師...풍백 우사 운사를 말함인가!!!
번개 천둥을 상징하는 좌우의 신하들이 곧 풍백 우사 운사!
바람 비 구름은 번개천둥을 동반한다!

산해경에 기록되고 있듯이...치우가 풍백과 우사에게 청하여 폭풍우로 황제헌원을 혼줄나게 하였다!!!
그 풍백과 우사는 곧 배달나라의 三師 중의 둘!
운사가 기록되지 않았으되 황제헌원이 곧 운사 출신이던가!!!
황제헌원은 그의 나라 유웅국의 벼슬이름에 雲자를 썼다하니 雲師와 직결된다!

그리하여 ...역사적 사실을 추론하건대...

헌원은 유웅국의 왕이던 공손(公孫:곰의 후손이란 글자)씨의 대를 이어 서기전2698년 계해년에
왕이 되었으며 배달나라의 운사로 직책을 수행하다가,
염제신농씨의 나라가 정치를 잘못하여 쇠약해지고 이에 따라 제후들이 군사를 일으킬 조짐을 보이자,
권력욕이 도져서 헌원은 배달나라 운사직을 뛰쳐나와 자신의 나라인 유웅국에서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 된다!

그러나 치우천왕이 서기전2697년 갑자년에 먼저 선수를 쳐서 염제신농국을 평정하여
유망제의 아들 괴를 다시 봉하니 단웅국(檀熊國:배달나라 치우천왕이 특히 봉한 웅씨국)이라
불리게 된다.

이후 황제헌원은 10여년간 73회를 도전하고 합100여회 전쟁을 하였으나 번번히 패하자 결국
자부선인의 가르침으로 치우천황에게 신복하였었던 것이 정식으로 황제(黃帝:동서남북중의 中部을
통할하는 帝:수많은 제후인 천자들 중의 최고 天子)로 봉함을 받은 것이다.
三神은 치우천왕이 대리하며, 五帝는 동서남북중의 천하의 天子들!

有熊國은 서기전3252년경에 소전(少典)이 강수지역에 봉해진 나라이다.
서기전3218년에 소전의 아들인 염제신농은 배달나라 우가(牛加)로서 서기전3528년경에 시작된
태호복희의 진제국(震帝國)을 접수하여 염제국(炎帝國) 시조가 되었다.

단웅국의 제5대 홍제(洪帝)는 배달나라 거불단 한웅의 천왕후인 웅씨녀의 親父로서,
단군왕검의 외조부인 바, 단군왕검이 14세이던 때에 섭정을 맡겼던 것이다...

요임금은 유웅국을 집어 삼키고 그것도 모자라 배달나라 질서를 어지럽히며 땅다먹기를 계속하다 결국
단웅국을 서기전2334년에 기습침략하여 점령하니, 이때 홍제가 붕하고 당시 왕성을 나가
순방정치를 하시던 단군왕검은 오갈 데 없어 하는 수 없이 수많은 백성들을 뒤로 하고 급히 서둘러
무리 800을 이끌고 동북의 아사달로 눈물의 여정을 시작한 후, 다음해 나라를 세우고 국력을 정비하였으며,
10년후인 서기전2323년경에 드디어 요임금을 토벌하러 유호씨와 환부 순과 그외 권사 등 100여명과
수천의 군사를 보내셨고...

이에 눈치빠른 요임금은 바로 유호씨에게 항복하여 나라를 보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순을 꾀어
자기사람으로 만들었으나, 결국 그도 권력욕이 앞선 순의 위협에 굴복하여 선양하였던 것...이하 생략...


성전 내부의 모습이다.
어떠한 시대에 어떠한 의미로 모셔진 신들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한웅님으로 추정되는 천진이다.
한길 백공종사님 말씀으로는 그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이 곳에 모셔진 천진이 아주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 밖에는 아는 사실이 없다고 한다.
"원시천... 元始天... "으로 표기된 위패를 보아
한웅천황님의 천진임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


아래 글은 천산태백 조홍근님께서 위 사진자료를 보시고 해석한(2015.2월) 자료입니다.

元始天尊 원시천존 => 첫 天尊!
태백의 나라, 배달나라를 여신 한웅천왕은
곧 하늘나라 한국(桓國)에서 지위리 한인 天帝로부터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특명을 받고 그 증거로
천부삼인을 하사받아 태백의 땅(박달)으로 파견되어 오신
하늘의 첫 존자로서 天王!

送之心眞有子者 子有眞心之送…
보내는 마음은 진실로 그대에게 있는 것이니, 그대가 진심으로 보내는 것이라!.......=>
모든 것은 마음에서....=> 부처님의 말씀!

子于禍福無爾矣…..
그대는 화복에 ...없을 뿐이라 (글자가 안 보이네요)...


개천관開天關이라 표기 된 마을 입구 표지판이다.
그런데 추후에 다시 이 마을을 찾았을 때는 이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왜 없앴을까?
이유야 미루어 짐작하고 남을 일 아닌가....
개천을 하여 나라를 세운 역사는 우리 한민족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이기 때문이고,
대대손손 개천절을 나라의 생일로 지켜오고 있는 나라 역시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천산태백 조홍근님께서 위 사진자료를 보시고 해석한 자료입니다.

開天關
개천관

개천을 통하는 관문
=>
태백산 천제단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관문!

한웅천왕께서 태백산 정상에 천단을 쌓고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開天을 하셨으니
개천으로 들어가는 관문, 開天關이라!!!




자료를 올리면서 한가지 소망이 생긴다.
지금은 찾는다고 하여도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한민족 배달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성지와 같은 곳을
중국이 그냥 놔두었을리는 만무하다.
그나마 사진으로라도 자료로 남길 수 있어서 무척이나 다행으로 여긴다.
이 곳의 자료를 보고 좀 더 세밀한 역사적 분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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