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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그림궁 - 고조선시대




30세 단군 내휴(奈休)

| 재위 35년 | 즉위년 BC 909 |

단군은 남쪽을 돌아보며 청구의 정치를 살펴보고 그 땅의 옛주인인 치우천왕의 공로를 새겨 후세에 전했다.
흉노족이 공물을 바쳤다.
돌궐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 이를 허락했다.

자료 : 천손한민족이야기


30세 단군 나휴

원년에 맏태자 등을을 황태자로 봉하다.
천황께서 남녘땅을 돌아보시며 청구의 정사를 살피시고 치우천황의 공덕을 돌에 새겼다.
서녁땅 엄독홀에 이르시어 분조의 제후를 모아 열병하시고 하느님께 제 올리다.
주나라 사람들과도 사이좋게 하시다.
재위 이년에 기자조선 사람 사십 명이 영고탑에 들어와 구경하고 가다.
재위 오년에 북녘땅의 흉노가 조공을 바쳐오다.

재위 이십년에 박달마가 아뢰기를
"백성의 문화향상은 오직 정치와 문학이 일치되는 점에 있사옵니다. 대개 정치는 개념이요, 문학은 구체이오며 정치의 위신은 백성으로 하여금 법을 따르도록 하려면 따르게 하고 가까이 하게 하려면 가깝게 해줄 수 있을 때 서는 것이옵니다. 정치는 승진경노가 있고 문학은 향상할 경향이 있는고로 인간의 실정을 결부시켜 구체적인 생활을 통하여 서로 형상화한 즉, 이것이 정치와 문학의 일치이오며, 곧 국가의 윤리가 그 실행하는 정치 여하에 따라서 구체적인 생활에 통하는 것이 마치 육체의 혈액순환과 같은지라. 대개 정치적 이념이 구체적인 생활 중에 용해되면 생활이 곧 이념이 되고 이념은 곧 생활화되는 것이오니, 요컨대 이념이 개인의 실사정에 용해되어야 문화로써 생활을 삼고 문화로써 행동을 삼는 것이 구체적인 작품화에 이를 것이옵니다. 그런 후에야 문학은 정치의 선구자가 되고 정치는 문학의 부식자가 되는 것이옵니다. 이런고로 정치와 문학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거늘 시인이 알지 못하고 정치의 권위에 유혹되어 정치에 흡수되면 문학의 사명을 잃고 주관없는 문학에 합하고자 하므로 은나라의 문학이 기회를 타서 전파되어 백성 생활에 피해가 될 것이오니, 천황폐하께오서는 쓸데없는 문학을 멀리 경계하시옵고 유용한 문학을 확립하시어 백성의 실생활을 향상시켜 주옵소서."
천황께서 들으시고 "옳다"하시며 쓸모없는 문학을 멀리 배척하시다.

재위 이십팔년에 주태보가 새로운 주역서 십삼권을 바치니 그 편집의 내용을 태양태음설과 현공설과 복서와 천문설과 지수설이었다.
천황께서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말씀하시기를 "후세에 이 글로써 혹세무민하는 자가 있으리라."하시고 태워 버리도록 명하시다.
재위 삼십년에 부분석이 정법원리론을 올리다.
재위 삼십오년에 나휴천황께서 돌아가시니 황태자 등을이 뒤를 이었다.

자료 : 배달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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