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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위대한 우리역사 - 왜곡 된 우리역사 바로 세우기



한민족과 유대인의 비전과 역사적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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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영화처럼 인류의 역사를 풀이하면 인류역사의 주인공은 어느 민족이었을까? 영화의 주인공은 중간에 사라지거나 나중에 나타나거나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등장해서 영화 끝날 때까지 나오는 게 진짜 주인공이다. 물론 마지막에 죽는 수는 있지만, 그건 영화가 끝나는 순간이다. 주인공이 중간에 죽어버리는 영화는 아직 못 봤다. 그렇다면 희랍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로마도 잠시동안의 주역이었지 진정한 주인공은 아니었다. 시황제의 진도 그렇고 징기스칸의 몽고도 마찬가지다. 사라센도 대영제국도 미국도 모두 아니다. 세계사의 처음부터 등장하여 최후까지 남으면서 인류사라는 영화의 줄거리의 중심에 서 있는 두 주인공이 있다. 화면에는 석양의 노을 빛이 흐르고 두 주인공이 황야에 마주서 있다.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흐르고 두 주인공은 총을 뺀다. 둘 중에 하나가 말을 타고 황야 저 멀리 사라지면 영화는 끝이다. 인류사라는 서부극에서 이 두 주인공의 이름은 유대민족과 한민족이다. 엥! 무슨 황당한 소리? 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고, 정해진 신의 계획이다. 두 민족은 주인공만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을 완전히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두 민족은 지구상에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난 최초의 인류였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이 두 민족으로부터 뻗어나간 방계가족들이다. 물론 상고시대에 이 두 민족은 지구의 지배자였다. 한쪽은 아프리카와 남미와 대서양을 지배했고, 한쪽은 아시아 전체의 지배자였다. 두 민족은 거의 같은 시기에 방계민족의 강성함에 눌려 역사의 조연으로 밀려난다. 유대민족은 이집트와 로마에게. 배달민족은 황하유역의 지나인에게 일시 그 주인공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액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꼭 악당들에게 잡혀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두들겨 맞고 고문당하고 비참함에 빠진다. 그러나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로 해서 스토리가 이어져 가야 한다. 두 주인공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건 복수를 위해 주인공이 잠깐 도피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뒤, 세계사는 그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움직여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 이 세계는 그들 두 민족이 움직여 온 역사이다. 유대민족의 기독교가 지구의 절반의 역사를 결정지었고, 배달민족의 한사상이 나머지 절반을 유불선으로 움직였다.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을 앞세운 주인공들은 반짝 연기로 사라졌지만 이 두 주인공의 힘은 시종일관 세계를 움직였다. 두 주인공민족의 정신이 세계를 움직인 두개의 축이었던 것이다. 양대 민족은 종교적으로 "선민사상"이라는 공통의식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라는 사명의식은 이 두 민족만이 보이는 특질이다. 유대민족의 신은 아브라함의 신이고 모세의 신인데 반해 우리 한민족의 신은 환인이요, 환웅이며 단군으로 이어졌다. 이 두 민족만이 신이 지정해준 땅을 가지고 있는 시오니즘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들의 신이 지정해 준 땅은 가나안이요, 우리의 한인이 지정해 준 땅이 신시로부터 발원한 한반도였다. 이 두 민족만이 상고시대부터 바꾸지 않는 유일한 가치를 유지시켜 왔다. 바로 유대사상과 한사상이다. 이 두 민족만이 고등한 이념과 교리의 체제를 담고 있는 경전을 가지고 있다. 바이블과 우리의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에덴의 신화와 마고의 신화라는 창조신화를 가지고있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류사의 마지막에 대한 개념과 철학를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말세"라 하고 우리는 "개벽"이라 한다. 그들과 우리는 거의 비슷한 2000여년간의 고난의 시기를 견디어 왔다. 그들은 땅을 잃은 채 역사(바이블)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고, 우리는 역사를 잃은 채 땅(한반도)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다. 이 두 주인공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직전 최후의 위기도 똑같이 맞는다.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말살의 위기를 맞았고, 우리는 일제에게 말살의 위협에 직면했다. 두 민족은 똑 같이 최후의 시련을 견뎌냈으며 이제 빼앗겼던 그들의 무기를 찾고 있다. 유대인들은 잃었던 땅을 찾았고, 우리는 잃었던 역사를 찾아가고 있다. 땅을 잃고 영혼만으로 대지를 방랑하는 자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을 잃고 땅에 뿌리박혀 울던 자가 영혼을 찾으면 그것이 개벽의 시작이리라. 바야흐로 두 주인공이 역사의 무대에서 단 둘이 마주설 날이 다가오고 있다. 유대민족에서 발원된 기독교정신,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씨앗으로 해서 마침내 열매를 맺은 서양의 문화를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될까? 그것은 바로 <자유와 평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자유의 정신은 근세 이후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꽃피었다. 평등의 사상은 필연에 따라 사회주의를 잉태하여 공산주의를 낳고, 반세기 에 걸쳐 평등의 아들이 지구의 반을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초기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창시자들이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음과 공산주의를 만든 칼 맑스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부경으로 시작된 한사상이 모든 것의 뿌리가 되고 있는 동양 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화와 질서>였다. 아마겟돈이란 다름아닌 자유와 질서와의 전쟁이고, 평등과 조화와의 전쟁이다. <자유와 평등>이 승리하면 말세요, <조화와 질서>가 승리하면 개벽이 될 것이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와 남녀가 조화하는 사회간의 전쟁이요, 아버지와 아들이 자유로운 사회와 부자지간의 질서가 엄정한 사회간의 전쟁이다.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계와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간의 전쟁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자유로운 문명과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문명간의 충돌이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조화와 질서> 이 둘 중에 앞으로의 인류가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전환점이다. <조화와 질서>가 인류를 질곡에서 끌어내는 구원의 밧줄이 될 것이다. 다음 세기의 개벽은 인류를 <조화와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자유에 의한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와 평등에 따른 강제행복의 공산주의, 어느 쪽도 아닌 천부경의 원리와 신선도의 문화에 의한 <조화와 질서>에 바탕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있게 될 것이다. 타골이 말한 동양의 횃불이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밝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여러 예언서에서 말하고 있는 "개벽"의 요체이다. 우리가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21세기는 <조화와 질서>원리인 한민족의 한정신, 한사상의 세기이다. 그리하여 한민족은 인류사의 지도국으로 분명 찬란하게 복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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